"상도 못 받았는데" 14억원에 팔린 할머니 그림

[내 마음의 서재 2] <모지스 할머니, 평범한 삶의 행복을 그리다 >

등록 2016.07.07 08:08수정 2016.07.07 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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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히 어떤 책을 사야겠다, 마음을 정하지 않고 들른 서점. 영화 <해리포터>에 나오는 도서관 같이 잘 전시돼 있는 책장 사이를 오고가다 문득 시선이 가는 책 한 권을 발견했다. 표지에 그려진 동화 같은 그림 때문이다.

언덕배기에 자리한 예쁜 시골 마을 한가운데 공터에 마차를 끄는 검은 색 흰색의 말들 여러 마리와 사람들이 모여 있다. 여러 개의 풍선을 손에 들고 걸어가는 남자도 보이고, 울타리 뒤에서 공터 안의 풍경을 구경하고 서 있는 사람들도 보인다. 그림 톤이 너무 밝고 환해서 마치 축제라도 벌이는 듯하다. 약간 들뜨고 소란스런 소리들이 들려올 듯 정겹다. 이런 그림을 그린 사람은 누구일까.




책을 펼치자 이 그림을 그린 화가의 반전 드라마가 펼쳐진다. 집이 가난해 12살부터 부유한 집안의 가정부로 들어가 일해야 했던 '시시'라는 소녀. 소녀는 이른 아침부터 해가 질 때까지 하루 종일 일을 하는 고단한 생활을 반복하다 27살에 같은 농장에서 일하는 농부에게 시집을 갔다.

 <모지스 할머니, 평범한 삶의 행복을 그리다>
<모지스 할머니, 평범한 삶의 행복을 그리다>홍익출판사
평생 농부의 아내로 농사를 짓고 단풍나무 수액을 받아 시럽을 만들고 치즈를 만들며 10명의 아이들을 낳은 소녀는 모지스 할머니가 된다.

더 이상 몸을 움직여 일을 할 수 없게 된 할머니는 우연히 손자의 방에서 그림물감을 발견하곤 어린 시절 그림을 좋아했지만 물감이 없어 그릴 수 없었던 시절이 생각나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할머니가 처음 그린 그림은 벽난로 덮개로 쓰였고, 할머니는 자신이 그린 그림을 엽서로 만들어 사람들에게 나눠주기도 하고 동네 곳곳에 붙이기도 한다.


그렇게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지 10여 년이 지났을 무렵, 미술 수집가 루이스 칼더가 우연히 시골 약국에 걸린 모지스 할머니의 그림을 발견하면서 처음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여든 살이 되어서야 <어느 농부의 아내가 그린 그림들>이라는 이름으로 첫 전시회를 열게 된다. 모지스 할머니는 돌아가시기 전인 101세까지 무려 1600여 점의 그림을 그린다. 더 놀라운 것은 그녀가 그린 그림 중 250점은 100세 이후에 그린 그림이라는 것이다.


"저는 과일과 잼으로는 상을 받았지만 그림으로는 상을 못 받았어요."

씩씩한 농부였던 그녀는 이런 고백을 했지만 그녀가 세상을 떠난 지 한참 뒤인 2006년 단풍나무 수액을 받아 시럽을 만드는 과정을 그린 그의 그림 '슈거링 오프'는 120만달러(한화 14억 원)에 팔리기에 이른다. 사람들이 할머니에게 좀 더 일찍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더라면 더 좋지 않았겠느냐고 묻자 할머니는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사람들은 늘 내게 늦었다고 말했어요. 하지만 사실 지금이야말로 가장 고마워해야 할 시간이에요. 진정으로 무언가를 추구하는 사람에겐 바로 지금이 인생에서 가장 젊은 때입니다. 무언가를 시작하기에 딱 좋은 때이죠."

삶만으로도 충분히 매력적인 그녀의 그림은 나같이 그림에 문외한인 사람에게도 너무나 매력적이다. 이런 작가를 만나게 해 준 이소영 저자에게도 참 고맙다는 생각이 든다. 스스로를 아트메신저라고 말하는 저자는 20대 때 우연히 대학도서관에서 모지스 할머니의 책 한 권을 발견하면서 그녀의 그림에 매료되었단다. 이후 컴퓨터에 모지스 할머니 폴더를 따로 만들고 그에 관한 모든 자료를 모으기 시작했다고 한다.

전남 구례에서 태어나 지리산 언저리에서 자랐다는 저자는 자신의 어린 시절 풍경과 모지스 할머니의 그림을 엮어 마치 '그림 읽어주는 여자'처럼 세세하게 설명을 곁들여 책을 읽는 재미를 더해준다.

주로 마을 풍경과 마을 사람들의 일상, 가사노동을 그림의 소재로 삼아 그려낸 모지스 할머니. 책 속에 삽입된 할머니의 그림을 들여다보고 있을수록 놀라운 생각이 든다. 어쩌면 이렇게 세세하게 모든 것을 관찰하고 기억해 냈을까?

일흔 다섯에 그림을 시작해 여든이 되고 아흔이 되고 백살이 됐을 때는 눈도 침침하고, 기억도 흐릿해지고 팔에 붓을 들 힘도 없었을텐데... 그림 한 장 안에 어쩌면 이렇게 많은 인물들을 그려내고 세세한 삶의 모습들을 그려낼 수 있었을까?

"시간이 나면 창밖의 풍경을 관찰합니다. 하지만 그림을 그릴 때면 눈을 감고 추억들을 떠올리죠."

아마 세월에 흐려지지 않는 '마음의 눈'에 의지해 그림을 그린 덕분에 가능한 것인지도 모른다. 다들 '백세시대'를 외치며 남은 인생시간표를 어떻게 짜야 할지 걱정들을 하는 요즘, 모지스 할머니의 책은 인생의 시간표를 한결 여유있게 그려보게 하면서 아직 우리에게 무언인가를 시도할 날이 많이 남았음을 토닥여주는 책이다.

"이제라도 그림을 그릴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나의 경우에 일흔 살이 넘어 선택한 새로운 삶이 그 후 30년간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 줬습니다."

백살이 되어서도 매일 아침 붓을 들고 그림을 그리는 모지스의 할머니의 씩씩하고 매력적인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내 나이가 어때서~."

모지스 할머니, 평범한 삶의 행복을 그리다

이소영 지음,
홍익출판사, 2016


#모지스 할머니 #슈거링 오프 #마을 축제 #국민 할머니 #모지스의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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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방송작가협회 회원, 방송작가, (주) 바오밥 대표, 바오밥 스토리 아카데미 원장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이런 제목 어때요?>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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