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범알살진상규명차 도미 당시 미국 워싱턴 덜레스 공항 입국장에서 환영 나온 재미동포들과 함께 기념촬영(가운데 왼쪽 권중희 선생, 오른쪽 필자. 2004. 1. 31.).
박도
나는 교단에서 꼭 32년 8개월을 근무하고 정년을 5년 남긴 채 서울을 떠나 강원도 산골마을로 내려왔다. 그동안 38권의 책을 펴냈다. 올해도 한 권을 더 펴낼 생각이다. 지난해에는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장편소설 <약속>을 혼신의 힘을 다해 펴냈다. 이 작품은 한 가정의 분단을 극복하고 통일을 이룬 작품으로 장차 통일대상을 목표로 쓴 작품이었다.
누군가 나에게 '성공한 인생'이라고 과찬을 하는데, 사실 나는 못난이로 실력도 없고, 모난 교사로 여러 학교를 전전했고, 계속 실패만 했다. 나는 실력이 부족하여 고교도, 대학도 모두 전기에 떨어져 후기를 다녔고, 작가가 되고자 신춘문예 공모에도 아마 스무 번 정도는 떨어진 것 같다.
하지만 나는 훌륭한 스승님을 만났다. 고교시절 박철규, 김영배, 홍준수 선생님, 대학시절 조지훈, 정한숙 선생님 그리고 뒤늦게 만난 이오덕 선생님…. 그 어른 덕분에 교사로, 늦깎이 작가로, 기자로 살아왔다. 나는 숱한 실패를 통하여 겸손을 배웠으며, 세상사와 사물을 가장 낮은 곳에서 바라보게 되었다.
저승사자가 지금 당장 불러도흔히들 세대에 따라 세월이 빠르다고 한다. 30대는 시속 30킬로미터, 40대는 시속 40킬로미터, 60대는 시속 60킬로미터로 나이가 들수록 그에 비례한단다. 정말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10대 때는 빨리 어른이 되어 담배도 마음대로 피우고, 청소년 출입금지 극장도 마음대로 가고, 머리도 마음껏 기르고, 와이셔츠에 넥타이도 매고…. 그래서 아버지의 옷을 몰래 입고 어른 흉내를 내보기도 했다.
그러다가 그 언제부터인가 나이를 세기도, 누군가 나이를 물으면 대답하기 싫게 되었다. 하지만 흐르는 세월을 그 누가 막으랴. 나는 이제 어쩔 수 없이 70대로 들어섰다. 일찍이 두보는 그의 시 '곡강(曲江)'에서 "사람은 예로부터 70세를 살기가 드물다(人生七十古來稀)"고 읊었다.
하지만 이즈음에는 생활수준 향상과 의료기술의 발달로 인생은 60부터니, 70은 아직 청춘이네, 심지어는 '9988234' 로 99세까지 팔팔하게 살다가 2, 3일 앓다가 죽는 게 바람직하다는 말까지 유행어로 돌고 있는 세태다. 하지만 이건 과욕이다.
사람의 수명 연장은 그 사회조차 노화시키고, 활력을 잃게 할뿐더러 지구 환경에도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그 적당한 나이가 언제인가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이즈음 세태로 보면 나는 70 전후를 적정기로 생각한다. 그렇다면 내 나이가 그 데드라인에 이르렀다. 나는 저승사자가 지금 당장 불러도 조금도 억울해 하지 않고 얼른 대답하고 따라갈 마음의 준비를 갖추고 있다.
"야, 박도! 저승 행 열차에 승차!""잘 알겠습니다. 그동안 불러주지 않은 걸 감사하게 생각합니다."나는 후딱 저승 행 열차 승강대로 오를 것이다. 사실 나는 지금까지 큰 병이나 큰 수술 한 번 받지 않고 이 세상에서 이나마 건강하게 살아온 것만 해도 부모님에게, 하늘에 감사할 일이다.
나는 평생 평교사로, 별 볼 일이 없는 작가로, 시민기자로 살아왔지만, 그래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오늘까지 살아왔음에 하늘과 조상님과 세상 사람들에게 감사드린다. 이제 나는 남은 인생은 덤으로 생각하면서 건강하게 살아 있는 한 이제까지 내가 체험하고 깨달은 모든 진리와 진실과 지혜들을 다음 세대에 남기고자 계속 붓을 들 것이다.
고사목(枯死木)이 되고 싶다몇 해 전 일본 여행길에서 제 명을 다한 고사목(枯死木)을 보았다. 그 수명을 다한 나무는 시내를 가로질러 쓰러져 뭇 생명들의 다리 역할을 하고 있었다. 이제 나도 그런 고사목으로 내 마지막 임무를 다하고 싶다. 세대와 세대를, 계층과 계층 간을 잇고, 지역과 지역을 이어주고, 남과 북을 이어주는, 나라와 나라 사이의 우의까지 이어주는 그런 다리로.
내 이야기를 이즈음에서 마무리해야겠다. 미리 다 얘기하면 다음 회에 쓸거리도 없거니와 독자들이 읽어주지 않을 테니까.
나는 아직도 이야기 속 소년처럼 '9회 말 굿바이 홈런'을 치고 싶지만, 아내는 이제 그만 꿈에서 깨어나 저 세상 갈 공덕이나 쌓으라고 잔소리를 늘어놓는다. 늙은 남자가 어찌 아내의 말을 소홀히 할 수 있으랴. 나는 그때마다 아내에게 그러겠다고 대답하지만 어찌 사람이 살아있는 한 꿈을 버리고 살 수 있겠는가.
나는 아직도 나의 꿈을 지우지 못하고 있다. 그 첫째는 내가 쓴 장편소설 <약속>을 비롯한 작품들이 언젠가 이 땅에 제정될 '조국 통일 문학상'을 수상하는 날을 꿈꾸고 있다.
그 둘째는 내가 가르친 제자 가운데 분단된 조국의 평화통일을 이끄는 지도자가 되는 꿈이다. 그가 고도의 정치력을 발휘하여 8천만 겨레의 소망인 조국의 통일을 마침내 이룬다면, 그때 나는 꿈을 이룬 감격에 둥실둥실 춤을 출 것이다.
그 셋째는 내가 공들여 쓴 기사가 젊은이들의 영혼을 깨우치는 보양식으로, 이 나라가 더 도덕적이고 건강한 나라로 나아가는데 이바지하고 싶다. 그리하여 <오마이뉴스> 50주년 또는 100주년 기념식장에서 역대 가장 영향력 있는 시민기자의 한 사람으로 특별상을 받고픈 꿈을 지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