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에어컨 없으면 못살면서 환경보호라니

자가용족들은 잘 못 보는 인간 삶의 풍경

등록 2016.08.21 11:56수정 2016.08.21 1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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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가용과 에어컨


성묘, 가족 여행, 외식, 노친네 병원행....등의 집안일로 움직일 때 동생이 운전하는, 동생의 차를 타고 가는 건 '몸'은 편해도 '마음'은 미안한 노릇이다. 그러면서도 '면허증'을 따겠다거나 '자가용'을 사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다.

밤 12시에 마치는 직장을 다닐 때 택시비가 많이 나오고, 무거운 짐을 싣고 집과 회사를 들락날락해야 하고, 피곤한 몸을 싣고 돌아돌아 오만 동네 다 돌아 가는 셔틀을 타야 되는 불편함 속에서도 미련하게 그랬다.

오래 전 이사 중에 운송 사고로 에어컨이 고장 난 뒤로 새로 사지 않은 지 십수 년이 넘었다. 그리 지내다 올해 집에 '개 노인, 사람 노인'해서 두 명의 '노인 환자' 땜에 더 이상 지켜볼 수 없다는 동생의 '연민 선물'로 드디어 기계 문명의 혜택에 재동참하게 됐다. 바람이 시-이-원하게 나올 때마다 그 바람보다 더 시원하게 돈 나가는 소리를 듣는 내가 좀 부끄럽기도 하다.

가난한 축에 속해도 작은 자동차와 벽걸이 에어컨 정도는 사고 쓸 형편은 되지만 사람의 몸을 기계에 순응시키기 싫은 것, 남이 다 가진 물품의 리스트가 내게도 '필수품'이라는 보편성을 거부하고 싶었다. '자가용'과 '에어컨' 없인 잠시도 못 살면서 '지구 온난화'니 '환경보호'니 떠드는 것보다는 버스 타고 선풍기로 담담히 사는 게 오히려 친환경 아닌가 하는 회의도 있었다.

승용차, 트럭, 트랙터를 다 갖고 있으면서 지구온난화를 이야기하는 것은 자가당착이었다.
육식을 안 한다고 해서 지구 생태계에 크나큰 보탬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채식하면서 줄창 자동차를 타고 다니는 사람하고 육식은 하면서도 버스, 택시는 1년에 한두 번 탈까 말까 한 사람하고 누가 더 생택계에 이로울까. <김담, 숲의 인문학>


내가 대부분의 필수품인 자가용과 에어컨 없이도 오래 살아온 것은 대단히 의식 있는 환경론자여서가 아니고 그것들은 그냥 '있으면 좋은' 정도지 필수품이 아니어서다. 아직까지도 쓰레기 분리수거시 이게 음식물인지, 일반 쓰레기인지 헷갈리는 게 있을 만큼 오히려 환경 둔감 주의자라 비난해도 조용히 고개 숙일 정도다. 그저 '꼭 필요하지 않으면', '계속 돈 들어가고', '남한테는 필수품이지만 나한테는 아니면' 굳이 사지 않는다는 생각에서였다.

'생활필수품'이란 인간이 자기 노력으로 얻는 모든 것 중에서 처음부터 또는 오랜 사용으로 인하여 인간 생활에 너무나도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된 나머지, 어떤 사람도 빈곤이나 야만성 또는 인생관 등의 이유에서라도 그것 없이는 살아가려고 생각조차 하지 않는 것들을 통틀어 가리킨다. 이런 의미에서 많은 동물들에게 단 한 가지의 생활필수품, 즉 먹을 것이 있을 따름이다.<월든, 헨리 데이빗 소로우>


내가 그렇게 한다고 모두가 그렇게 해야 한다거나 어떤 기구, 기계의 어쩔 수 없는 사용을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건 아니다. 병원, 상점, 공공기관 등에서는 환자의 건강과 대다수의 쾌적을 위해서 꼭 필요하기도 하다. 특히 38도가 뉘 집 개 이름 같은 (대구) 여름 날씨에서는 불쾌지수형 싸움이나 살인 방지를 위해서도 필요할 것이다. 다만 '필수품'에 대해 고민과 반성의 시간을 가져 보는 것도 좋지 않나 생각해 볼 뿐이다.

최근 '미니멀리즘'이니 '버리기'니 하는 게 한때의 '힐링' 처럼 우스운 유행이 될 조짐이 보인다. 버리려면 버리면 되고, 안 사고 덜 사고 나눠 주면 될 것을 '버리는 법'에 대한 책을 또 사 모으는 방식으로 무소유를 실천한다.

두세 식구의 핵가족이 35평 이상의 아파트에서 대형 벽걸이형 TV, 얼음 나오는 대형 양문형 냉장고 아니면 못 쓴다 하면서 '미니멀리즘'의 책을 사 보는 것은 무슨 블랙코미디 같다. 기왕 크고 좋은 거 샀으면 오래 잘 쓰면 되는데 이번엔 '북유럽식' 미니멀리즘 가구, 인테리어가 유행이란다.

'무소유, 버리기'에 대한 글 한 줄 안 읽고 그냥 스무 평 안팎의 작은 아파트에서 적당한 크기의 한 쪽 문 냉장고와 TV로 사는 게 미니멀리즘 아닌가? '버리는 건' 핑계고 그냥 또 다른 유행에 발 한 번 담가 보고, 속 마음은 '다 버리고 새로 사는 거다' 어느 개그맨의 말마따나 '히트다 히트-'

오랜 세월 대중교통을 이용하면서 그것의 장점과 단점에도 나름대로 익숙하고 즐길 줄 알게까지 되었다. 앞 차가 밀리든 뒤차가 끼어들든 내가 열받을 필요 없이 욕 솜씨, 운전 솜씨 좋은 전문 기사한테 다 맡겨 놓고 나는 그저 멍 때리며 졸거나 바깥 풍경을 보면 된다.
은행보다 대형 마트보다 더 빵빵하게 틀어 놓은 냉방에 긴팔 생각나는 피부의 소-오름을 느끼며 체험적 이해가 생기는 건 덤이다.

'아! 이렇게 싸고 시원하니 노인들이 별 약속도, 일도 없이 지하철이나 버스 타고 종점까지 왔다 갔다 하는구나-'

어떤 지인의 아버님은 '노령연금'과 자식들이 준 '용돈'은 딱 걸어 잠그고 밥과 냉온방비 해결은 경로당과 급식소같은 준 공공시설과 대중교통에서 해결했단다. 아침에 나가면 거의 해질 무렵 집에 오거나 중간에 잠깐 들렀다 다시 나가는 식으로 집에서의 생활비를 없애는데 전심전력을 다했단다. 해서 수년간 모은 돈 몇 천만 원을 이혼한 자녀의 자립 지원금으로 턱 하니 내놓았단 '전설'같은 이야기도 들었다. '서민갑부'의 노인 버전이다! 역시 부자는 하늘이 내고 '작은 돈'을 아껴야 부자가 된다.

그 할배보다 몇 배는 가난한 우리 할망과 그 할배의 자식보다 몇몇 배는 더 가난한 우리는 절대로 그렇게 독하게 살지는 못한다. 무료 급식은 그 할배보다 훨씬 가난한 노인들이 줄 덜 서서 먹을 수 있게 놔 두면 안 될까?

   공연안내, 원룸월세, 빌라분양, 금이빨 산다는 광고물들

공연안내, 원룸월세, 빌라분양, 금이빨 산다는 광고물들 ⓒ 이종미


자가용을 타고 휙 하니 다니면 못 보는 거리의 표정들이 버스 타는 사람에겐 보인다. 정류장 부근의 벽보들, 버스 차창 밖에서 펄럭이는 현수막들 같은 광고물이다. 크기, 내용, 설치 위치를 불문한 불법광고물도 있고, 가로수와 가로수 사이에 설치된 것, 특정 건물과 구나 시에서 마련한 지정 거치대에 설치된 것도 있다.

내용도 다양하다. 각종 공연의 안내부터 쇼핑센터 정기 세일 안내, 신축 건물의 광고, 고금리 대출과 빌라와 아파트 분양 광고 등까지 다채롭다. 저 많은 현수막의 광고 중 내가 가진 것과 가질 수 없는 것들의 희비를 느끼고 인간들이 무엇을 사고팔며 어떻게 사기 치고 당하는지에 대한 전시를 '무료 관람' 한다.

오늘 출근길에 버스 창밖을 문득 보니 며칠 전까지 큰 사거리 현수막 지정 거치대에 있던 한참 된 홍보물 하나가 내려졌다. 시(혹은 구)에서 건 '공공근로 구인 모집' 광고였다. 특별할 거 없는 그 홍보물에 눈길이 간 건 '18세~28세 지원자 우선적 채용'이라는 내용 때문이었다.

공공근로가 처음 생겼을 때는 경제적 자립이 안되는 저소득층 노인들을 위한 일자리였다.
아! 이제 그 노인 전용이던 공공근로가 젊은이들 우선 채용의 밥벌이도 됐구나! 가난한 노인들과 가난한 청년들이 월 80만 원 남짓을 놓고 밥벌이 경쟁을 해야 하는구나. 한창 일할 청년들은 일자리가 없어서 노인들 일자리를 넘봐야 되고, 이제 그만 쉬어야 될 노인들은 꼬부라진 허리와 시린 무릎으로 손주들과 경쟁해야 하는구나. 나도 한 이십 년 뒤쯤에는 가로수 꽃씨 심고 동네 공원 잡초 뽑는 일을 두고 내 손주뻘들과 경쟁해야 될지 모르겠구나.

가난이 준 인간에 대한 '연민'과 '분노'는 우리 가족 최대의 장점이자 약점이고 제법 냉정, 냉혈한인 나도 불특정 다수에 대한 그 연민에서 자유롭지는 못 했다. 저 현수막 광고의 '18세~28세' 무렵의 나는 '고아','소년소녀 가장'같은 법적 미성년자들에 대한 연민이 더 컸었다. 흙수저의 자식으로 태어나 살고 있는 데 대한 패배감이 컸을 게고 자신과 비슷한 연배에게 느끼고 보내는 동류감도 있었을 게다.

그랬던 것이 언젠가부터 '무의탁 노인, 독거 노인, 고독사' 같은 기사에 더 눈길이 간다. 내 심신이 노년에 더 가깝다는 반증이다. 18세~28살을 한참 넘긴 어느 날, 어느 정류장 버스 표지판에 붙은 A4 크기의 광고를 봤다.

"직원 모집. xx 고추장 판매원. 38세 미만의 여성"

그때는 '사장'이라는 명함을 달고 있었을 때였는데도 그 광고를 보며 좀 헛헛하게 웃었던 건 '38세 미만'이란 광고의 키워드 때문이었다. 당시 아마도 서른 중반쯤 됐을 때지 싶은데 '38세'를 얼마 안 남겨 놓은 때라 예사롭지가 않았을 게다.

다음날 직장에서 어제 본 광고 이야기를 하면서 '뭔 놈의 나라가 고추장 파는 데도 38살 넘으면 안 되는겨? 이제 한 몇 년 있음 고추장도 못 판다'라며 38세가 다 돼 가거나 넘은 직원들과 냉소적이고 자학적 웃음을 나누었던 기억이 난다.

서른 초반에 청상과부가 되어 자식들에게 '흙수저' 쥐어 주기도 힘들었던 우리집 할망은 '38세' 무렵 뭘 했던가? 코 찔찔이 두 자식 데리고 강산이 두, 세 번 바뀔 만큼 이 집, 저 집 남의 집 세 살이 하느라 길거리 '전봇대' 무지하게 보고 다녔다. '사글세/ 전세/ 방 두 칸/ 부엌 따로/ 2층 독채/ 주인집 따로' 등등의 글자를 샅샅이 훑고 다니며 좀 더 싼 집, 좀 더 깨끗한 집을 헤매고 다녔으리라.

그러고 보면 우리 가족의 불특정 인간들에 대한 연민과 분노의 시발점은 전봇대의 '방 있슴'(옛날에는 '있음'아니고 '있슴'이었다.)인지도 모른다. 흙수저 자식 둘이 자라서 천신만고 끝에 은행의 큰 도움으로 작은 아파트라도 하나 가지게 되어 이제 전봇대 훑고 다닐 일 없음을 감사해한다.

자가용만 타고 다니는 당신들은 잘 못 보리라. 현수막에 새겨진 글자 속의, 연민과 사기로 가득한 인간의 모습들.

인력을 다 구했는지, 광고 시효가 다 됐는지 내려간 '18세~28세 우선 채용'의 비애를 찾다가 밥터 정거장에 내리는데 귀에 꼽히는 음악이 슬프구나.  신날새 '해금'연주의 <쉘부르의 우산>이다.
#필수품, 현수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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