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수가 나서 '결혼팀' 만드는, 이곳은 '결혼제국'

[결혼 없이도 괜찮아 ④] 혼인·혈연 중심 사회서 비혼 가구가 겪는 제도적 차별을 넘어

등록 2016.10.18 17:30수정 2016.10.18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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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인구 1000명당 혼인 건수는 5.9건. 1970년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습니다. 결혼은 더 이상 '의무'가 아닙니다. 비혼을 택하는 사회·개인적 이유는 무엇일까요. '결혼 없는 삶'은 어떤 모습일까요. 오마이뉴스는 '결혼 없이도 괜찮아' 기획을 통해 삶의 다양한 가능성을 엿보려합니다. [편집자말]
한적한 2층 카페, 3명의 남자가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있다. 조금 뒤 4명의 여자가 들어온다. 한 명은 주선자, 3명은 소개팅 상대 여성. 앉아 있던 남자들 얼굴엔 미소가 번지고, 이 장면을 영상으로 보고 있는 남자의 어머니도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어머니는 아들의 소개팅을 보며 천당과 지옥을 오간다. 결국, 엄마는 아들이 소개팅 상대 여성을 마음에 안 들어 하는 눈치라며 시무룩한 표정을 숨기지 못한다.

이 장면은 지난 7일 SBS에서 방영된 <미운우리새끼>의 한 장면이다. <미운우리새끼>는 미혼 남성 연예인의 일상을 보여주는 예능 프로그램이다. 어머니가 결혼 '못한' 아들인 '미운 우리 새끼'의 일상을 보면서 자식 걱정하는 육아(?)프로그램이다. 최근 이처럼 미혼 남녀의 삶을 소재로 한 예능프로그램들이 늘어나고 있다. <나 혼자 산다>, <님과 함께 시즌 2 - 최고의 사랑>이 대표적이다.

 SBS에서 방영중인 미운우리새끼의 한 장면
SBS에서 방영중인 미운우리새끼의 한 장면SBS

이와 같은 방송 트렌드의 변화는 1인 가구가 급증하는 현실과 연관되어 있다. 통계청이 실시한 '2015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1인 가구 비율은 27.2%로 전체 가구의 1/4을 넘었다. 이는 25년 새 3배 증가한 수치다. 소위 '정상가족'이라 부르는 4인 가구보다 많을 뿐 아니라 모든 가구 형태 중 가장 많다. 이처럼 비혼 1인 가구 수는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1인 가구나 비혼은 더 이상 예외적 삶의 형태가 아니다. 하지만 제도는 그 변화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10년째 비혼 외쳤는데... 차별은 여전하다

2007년 언니네트워크 액션나우팀은 "비혼 차별적제도, 이건 아니잖습니까!"라는 모임을 통해 바뀌어야 할 제도를 선정했다. 이들은 가족별 신분등록, 재산 상속 및 증여, 가족복지정책, 대출 및 주택 청약, 입양 제도, 가족에 대한 세금혜택, 자동차 보험, 의료보험 등에 비혼에 대한 차별이 존재한다고 밝혔다. 그로부터 9년이 지난 2016년 오늘날에도 비혼에 대한 차별은 큰 틀에서 바뀐 것이 없다.

비혼은 여전히 저금리 전세자금 대출을 상상하기 어렵다. 보통 신혼부부나 결혼 예정자가 아니라면 1인 가구는 금리가 높은 상품을 이용할 수밖에 없다. 또한, 청약 임대 주택을 분양받으려 해도 어려움이 많다. 대부분의 청약 임대 주택은 3자녀 이상 다자녀가구나 신혼부부를 우선 공급 대상으로 두며 부양가족 수를 하나의 기준으로 삼는 경우가 많다. 이렇다 보니 비혼 1인 가구의 당첨 확률은 뚝뚝 떨어질 수밖에 없다.

책 <혼자 살아가기>에서 한 연구 참여자는 "제2금융권에서도 35세 이상 비혼 여성을 '비정상' 가정으로 간주해 대출해주지 않는다"고 고백했다. 예전보다야 1인 가구 주거 정책이 나아졌다곤 하지만 여전히 부족한 실정이다.


비혼 커플은 재산 상속 및 증여에 관해서도 차별받는다. 2014년 헌법재판소는 사실혼 관계의 동거 비혼 커플 중 한쪽이 사망한 경우 남은 이에게 상속권을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일부 재판관이 이에 대해 '불균형적'이라는 의견을 내기도 했지만, 헌재는 '상속권을 침해한다고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 뿐만 아니다. 일부 지자체에서는 저출산을 해결하겠다며 '비혼 가구 결혼시키기'에 나서고 있다. 경기 양평군에서는 '결혼팀' 신설을 추진해 미혼 남녀 만남 주선 등에 적극 나선다고 한다. 명절 때마다 듣는 친척들 잔소리도 모자라 비혼들은 이제 정부의 '잔소리'까지 들어야 할 판이다. 이는 비혼이 저출산의 주범이라는 편견이 여전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물론 약간 바뀐 부분도 있다. 2006년 보건복지부는 비혼 1인 가구도 입양이 가능하도록 제도를 개선했다. 과거 어떠한 이유로도 1인 가구는 입양이 불가능했던 것과 비교되지만, 여전히 조건은 까다롭다. 혼인했을 경우는 25세 이상이면 입양이 가능하지만, 비혼의 경우 35세 이상이어야 한다. 입양 조건 고려사항 중 경제력 항목이 별도로 존재한다는 점을 볼 때 이는 근거 없는 차별이다.

이처럼 비혼 차별에 대한 문제 제기가 있은 지 1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났지만, 비혼에 대한 차별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다. 그 이유는 대부분의 사회 시스템이 혼인을 전제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혈연과 혼인으로 구성된 '결혼 제국'

 비혼 차별에 대한 문제 제기가 있은 지 1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났지만, 비혼에 대한 제도적 차별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다.
비혼 차별에 대한 문제 제기가 있은 지 1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났지만, 비혼에 대한 제도적 차별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다.pixabay

우리나라 헌법 제36조 1항에는 결혼에 대한 국가의 지원을 규정하고 있으며 민법에는 혼인이라는 단어가 100번 이상 나온다. 그만큼 우리나라는 혼인을 중요한 제도로 여기고 있다.

보다 중요한 문제는 민법에서 가족의 범위를 혈연과 혼인 관계로 제한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민법 제779조는 가족의 범위를 ①배우자 직계혈족 및 형제자매, ②직계혈족의 배우자, 배우자의 직계혈족 및 배우자의 형제자매로 규정하고 있다. 즉 현행법상 가족에 속하지 않는 다양한 공동체는 법적으로 보호받지 못하며 현행법을 기반으로 시행되는 수많은 복지제도의 수혜로부터 배제된다. 혈연과 혼인으로 구성된 가족을 사회 기본 단위로 여기면서 비혼, 동거커플, 성소수자 부부 등 다양한 '가족들'에 대한 차별이 계속되는 것이다.

지난 5월 25일, 서울서부지방법원은 동성결혼 부부인 김조광수 부부의 혼인 신고를 불허 결정했다. 가족관계등록법 등 현행법상 혼인은 '남녀 간의 결합'이라는 근거를 달았다. 많은 시민단체들이 이와 같은 현행법의 한계를 지적하며 성소수자의 가족구성권을 보장하라고 요구해왔지만 '정상가족'을 근거로 한 현행법은 흔들림이 없다.

일본의 사회학자 우에노 치즈코는 자신의 저서 <결혼 제국>에서 현재의 '결혼 제국'을 넘어 '혈연과 가족을 초월한 새로운 관계'의 가능성을 상상해보자고 제안한다.

우에노 치즈코는 "여성은 독신이라는 이유 때문에 지나칠 정도로 제재를 받고 있습니다. 경제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정체성 면에서도. 결혼제도에 들어가든 들어가지 않든, 특정한 남자를 만나든 만나지 않든 간에, 결국은 가부장제의 지배 아래 놓이게 됩니다"라고 말하며 지금 세상은 결혼하고 있는 쪽이 모든 면에서 유리하다고 지적한다.

이어 "세대 간의 상부상조가 아니라, '세대 내의 상부상조 시스템'을 만들어가는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다시 말해 '혈연과 가족을 초월한 새로운 관계'에 대한 기대를 이어가는 것입니다"라고 제안한다.

비혼, 동거, 성소수자 커플... 답은 다양한 가족'들'에 대한 상상

 전체 가구의 1/4이 비혼 1인 가구인 현실이다. 이들의 삶이 법적으로 배제된다면 우리는 결혼이라는 단 하나의 선택지만을 강요받을 수밖에 없다. 다양한 가족구성권이 인정받는 사회가 비혼뿐 아니라 모두에게 좋지 않을까?
전체 가구의 1/4이 비혼 1인 가구인 현실이다. 이들의 삶이 법적으로 배제된다면 우리는 결혼이라는 단 하나의 선택지만을 강요받을 수밖에 없다. 다양한 가족구성권이 인정받는 사회가 비혼뿐 아니라 모두에게 좋지 않을까?pixabay

프랑스에서는 2006년 혼인 가정 출산과 혼외출산을 구별하는 규정을 폐지했다. 프랑스 민법 제515조 18은 사실혼을 이성 또는 동성 2인 커플 사이에 안정성과 계속성을 보이는 공동생활에 의한 사실상의 결합으로 규정하고 있다. 동성 커플의 가족구성권도 법적으로 보장해주는 것이다.

호주도 학교에서 비혼 가정을 위해 육아와 교육 등을 지원해준다. 이외 많은 국가에서는 우리나라처럼 사실혼을 법률상 혼인으로만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당사자의 합의에 따라 개별적으로 판단하는 구조로 되어 있다. 민법으로 포함되지 않는 다양한 공동체의 권리를 특별법과 사회보장법 등을 통해 보장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많은 나라에서는 파트너십 등록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덴마크의 경우 법적 혼인과 거의 유사한 동반자등록법으로 동성 커플의 권리를 보장하고 있다. 네덜란드에서는 동성과 이성 모두 등록할 수 있는 동반자 등록법을 시행하고 있어 동성혼뿐 아니라 다양한 이유로 결혼을 거부하는 이성의 권리도 보장한다. 이처럼 많은 나라에서는 이미 다양한 가족구성권을 보장하는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우리나라 헌법 10조는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행복추구권은 성적자기결정권, 가족형성의 권리 등을 포함한다. 동성동본결혼금지가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근거도 이 행복추구권이다. 자신이 원하는 생활공동체를 구성하며 살 권리를 헌법에서 보장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현행 민법상의 혼인 규정은 다양한 생활공동체의 권리를 포함하지 못하고 있다.

전체 가구의 1/4이 비혼 1인 가구인 현실이다. 이들의 삶이 법적으로 배제된다면 우리는 결혼이라는 단 하나의 선택지만을 강요받을 수밖에 없다. 다양한 가족구성권이 인정받는 사회가 비혼뿐 아니라 모두에게 좋지 않을까? 비혼이 행복해야 모두가 행복하다. 이제, 비혼의 유리천장을 깨자.

['결혼 없이도 괜찮아' 기획 살펴보기]
1편 입만 열면 기승전 '결혼', 거절합니다
2편 다짜고짜 '한 달에 얼마 버냐'... 그냥 혼자 살래요
3편 가난과 육아의 고통, 내겐 비혼이 '개이득'

#비혼 #유리천장 #가족구성권 #결혼제국 #우에노치즈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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