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서울시내 한 대형서점에 송민순 전 외교통상부 장관이 최근 발간한 회고록 <빙하는 움직인다-비핵화와 통일외교의 현장>이 진열되어 있다.
지난 2007년 유엔의 북한인권결의안 표결에서 노무현 정부가 북한에 사전의견을 구한 뒤 기권했다는 내용이 포함된 이 회고록을 두고 정치권 등을 중심으로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연합뉴스
송민순 전 외교통상부 장관의 회고록 내용 중 새누리당이 문제 삼고 있는 부분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2007년 유엔의 북한인권결의안 표결 당시 참여정부의 입장이 기권으로 결정되기까지의 절차와 과정이고, 둘째는 북한에 기권 결정을 통보한 시점이다. 여기에 당시 비서실장이었던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역할과 책임도 집중 추궁 대상이다.
새누리당은 참여정부가 인권 문제를 다루는 유엔 북한인권결의안 기권을 표명한 것 자체가 문제라고 지적하고 있다. 그동안 인권 문제를 중요한 인류 보편적 가치라고 주장해 온 진보진영이 정작 북한인권결의안 표결에 기권했다는 사실이 말이 안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새누리당은 이것이 참여정부와 문 전 대표의 친북 성향 때문이라고 규정한다. 새누리당의 주장은 타당한 것일까?
유엔은 2004년부터 해마다 북한인권결의안을 채택하고 있다. 2004년(불참)을 제외하고 참여정부는 매해 표결에 참석해 기권(2005년), 찬성(2006년), 기권(2007년) 의사를 표명했다. 매해 다른 의견을 냈다는 것은 당시의 남북 상황에 따라 국가적 이익의 관점에서 유연하게 정책 결정이 이루어졌다는 방증이다. 논란이 된 2007년 역시 남북정상회담의 후속 조치로 다양한 분야에서 당국자 간 남북 대화가 진행되고 있었고, 이것이 기권을 결정하게 된 주된 이유였다. 그러나 새누리당은 당시의 남북관계와 외교안보 상황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이를 색깔론으로만 몰아가고 있다.
기권이 결정되기까지의 절차와 과정도 살펴보자. 당시 청와대는 세 차례(2007년 11월 15일 청와대 정책조정회의, 11월 16일 노무현 전 대통령 주재 관저회의, 11월 18일 청와대 서별관회의)에 걸쳐 관련 회의를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해 백종천 전 청와대 안보실장은 논란이 되고 있는 18일 회의가 정식 안보조정회의가 아니라 송 전 장관을 설득하기 위한 자리였다고 술회했다.
당시 결정에 참여한 대다수 관계자의 말을 종합해 보면 16일 노 전 대통령이 주재한 관저회의에서 표결에 의해 기권이 결정되었고, 송 전 장관과의 이견 조율을 위해 18일 한 차례 더 회의가 열렸던 것으로 보인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이재정 전 통일부 장관, 김만복 전 국정원장, 천호선 전 청와대 대변인, 김경수 전 청와대 연설기획 비서관, 백 전 실장 등의 진술이 정확히 일치하고 있다.
북한에 통보한 시점 역시 논란이다. 그런데 당시 회의에 참석했던 이들 가운데 북한에 물어보고 기권을 결정했다고 주장하는 인사는 송 전 장관 한 사람뿐이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말한 김장수 전 국방부장관을 제외하고 나머지 관계자들은 모두 기권 결정이 내려진 뒤에 통보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새누리당은 통보 시점에 대한 관련자 진술이 '결정 후 통보'로 일치하자 북한에 통보한 것 자체가 '주권 포기'라며 말을 바꿨다. 그러나 새누리당의 주장은 남북 현안에 대한 의견 교환과 전달이 정부 차원의 통상적인 행위였다는 점에 비춰 자가당착에 지나지 않는다. 이를 문제 삼는다면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추진된 모든 비공식적인 남북 접촉 역시 '내통'이며, '주권 포기' 행위가 되고 만다.
문 전 대표를 향한 새누리당의 공세 역시 잘못된 내용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백 전 실장이 논란이 되고 있는 18일 회의를 소집한 주체는 문 전 대표가 아니라 자신이라고 밝혔기 때문이다. 이는 "노무현 대통령은 주무기관인 외교장관이 그토록 찬성하자고 하니 비서실장이 다시 회의를 열어 의논해보라고 지시했다"는 송 전 장관의 회의록 내용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으로 새누리당의 주장이 억지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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