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학생들이 지난 10월 25일 고 백남기 농민의 사망진단서에 '병사'라고 기재한 서울대 의대 백선하 교수의 해임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종호
가장 황당한 것은 서울대병원이나 서울의대가 틀린 사망진단서를 수정할 수 없다면서 내세운 것이 '진정성'이라고 이름붙인 '전문가 자율성'이라는 점이다. 그런데 이 전문가 또는 지식인의 '자율성'은 굳이 사회학자 부르디외를 거론하지 않더라도, 지식인들이 국가권력으로부터 독립적이라는 것을 전제로 하는 '자율성'이다.
백선하씨의 '사망진단서'는 의사 국가시험에 나올 만큼 엉터리 진단서의 대표적 사례다. 한국의 의과대학들이 그리고 의사들이 정말 자율성을 주장하려면 그 진단서는 의사들의 자율적 자정작용을 통해 수정돼야 한다.
더욱이 이 엉터리 사망진단서야말로 현 정권이 사망원인에 대해 거짓 주장을 하는 근거가 되고 있다. 의사의 사망진단서가 정권의 도구가 된 사건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 진단서를 자율성이라는 이름으로 수정하지 못한다는 것인가? 자율성의 포기를 자율성이라는 이름으로 합리화하는 황당한 작태일 뿐이다. 또 백선하씨는 서울대학교 교수다. 서울대가 서울의대 뒤에 숨는다고 서울대의 체면이 지켜지지 않는다.
황우석 사태 때에는 전 국민이 배아줄기세포에 대해 공부해야 했다. 미국산 쇠고기 전면개방 때에는 전 국민이 광우병 프리온에 대해 공부해야 했다. 메르스 유행시기에는 바이러스의 전파양식에 대해 공부해야 했고 병원 이름을 스스로 알아내야 했다.
왜 그랬던가. 왜 아직도 우리는 사망진단서 작성지침까지 공부해야 하나. 한국의 의학, 나아가 과학 분야의 지식인들이 전 국민적 압력을 받지 않으면 자신들의 잘못을 스스로 수정하지 못하고 권력의 도구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시스템 바깥에서 그야말로 전 국민이 개입할 때 전문가들, 지식인들이 권력으로부터 해방돼 과학적 결정이 겨우 내려진다.
이화여자대학교 사태는 어떤가. 이대 정치외교학과 교수인 입학처장이 총장에게 "박정희 전 대통령, 박근혜 대통령, 정윤회·최순실 씨의 관계를 그리며 총장에게 직접 정유라 학생을 설명"했을 때 끝나야 했던 사태였다. 그러나 이대 학생들이 86일간 본부 건물을 점거하고, 학생처장이 그렸다던 그 그림을 전 국민이 그리게 돼서야 겨우 이대 총장이 사퇴했다.
우리 사회에서 정치·사회적으로 중요한 학문적·과학적인 결정들은 너무나 명백한 사안임에도 어김없이 학문이나 대학 내 시스템 안에서 해결되지 않았고, 전국민적이고 사회적 개입없이 해결된 적이 없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다.
그렇다면 사회적 개입이 없었던 그 밖의 수많은 경우에는 어땠을까. 한국의 대학과 학문은 권력의 순종적 도구로서 기능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자연스러운 결론이 아닐까. 한국에서의 지식인들이나 대학의 자율성은 민주주의 발전에 따라 확립돼가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야말로 순진한 착각이라는 것이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오히려 오늘날 대학은 자본과 권력에 '자율적으로' 봉사하는 곳이 되고 있다는 게 백남기 농민의 사망진단서 논란에서도 드러난다.
오늘 한국사회의 학문과 지식의 자율성과 진리는 고고한 상아탑 속에서 지켜지고 있지 않다. 대학의 자율성은 학생들이 본부를 점거해야만 지켜진다. 우리 사회의 진리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앞에서 노숙했던 시민지킴이들의 고단한 잠자리에서 지켜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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