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방 <그림책 식당>의 작은 간판문래동 공장 골목에서 요란스럽지 않게 자리를 지키고 있는 <그림책 식당>
우상숙
바람처럼 사라져가는 자전거 바퀴 아래로 쇳조각 부딪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원형톱날 금속절단기에서는 깨알 같은 불꽃들이 공중으로 흩어지는 중이었다. 마치 이 거리에 다시 온 것을 축복이라도 하듯이. 유년의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던 골목과 중년이 되어 거니는 문래동 골목은 크게 다른 점이 없어 보였다.
여전히 그곳은 쓸쓸해보였다. 자기 몸보다 몇 배나 되는 철강을 손수레로 운반하거나, 입을 다물고 쇳조각을 주무르는 고된 노동의 시간들이 회색빛 거리에 화석처럼 켜켜이 쌓여 있었다. 이런 곳에 그림책 책방이 있다니. 이상야릇했다. 큼지막한 책방 간판이라도 내걸었으려니 하는 예상은 빗나갔다. <그림책식당>이라는 간판은 보통 그림책 크기보다도 작았다.
1층 철공소 사이로 난 계단을 올라가니 2층에 거짓말처럼 작은 그림책 책방이 있었다. 이곳은 지난 봄 그림책 관련 기사를 쓰기 위해 자료를 찾다 우연히 발견한 책방이었다. <그림책식당>이라는 책방 이름에 저절로 웃음이 났다. 더욱 놀라웠던 점은 이 식당 주인이 그림책 작가 박정섭씨라는 사실이었다.
철공소가 즐비한 바깥 골목 사정과는 달리 책방 안은 의외로 고즈넉했다. <그림책식당>은 그림책만 파는 전문서점이자 함께 차와 음료를 즐기는 카페로 문을 연 지 벌써 5개월째다. 맨 처음 작업실을 구하려고 이곳저곳을 수소문 하다 우연히 이곳을 알게 됐다고 한다. 카페였던 이 공간의 장점을 살려 작업실과 서점의 역할까지 더해 복합적인 공간으로 재탄생된 것. 왜 <그림책식당>일까. 이 물음에 박정섭씨의 유쾌한 답변이 이어졌다.
"밥을 해먹듯이 일상적으로 그림책을 생각하고 사람들과 함께 공감하고 싶었어요. 요리사만이 음식을 하지 않는 것처럼 누구나 그림책을 만들 수 있어요. 그래서 여기에서는 그림책 작가를 '그림책 셰프'라고 불러요. 작가라는 무거운 중압감에서 벗어나서 개인적으로 저도 좋더라구요."
누구나 그림책을 요리하자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곳, <그림책식당>이었다. 마침 그날 들른 서점에서는 박근용 그림책 셰프가 노트북으로 그림 작업을 하고 있었다. <그림책식당>은 그림책 작가들과 모여 편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사랑방이자, 작업실이 필요한 작가에게는 개인적인 공간까지 제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