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2015년 미국의 총 고용 중 제조업 고용 규모
미국 세인트루스 연방준비은행
아래 그림에서 보는 것처럼 현재 미국의 총 고용 중 제조업 고용 규모는 1990년대 신경제의 절반 정도에 해당하며 이미 2008년 금융위기의 최악 상황은 넘어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고용의 질적 악화 때문에 전반적인 경제 상황이 나아졌다고 할 수는 없다.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단기적으로는 럭비공처럼 어디로 튈지 모르는 트럼프의 정치적 태도 때문에 금융 시장 불안과 경제 심리 악화가 우려된다. 인과적으로 세계 경제 전반에도 부정적인 영향이 우세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상황을 트럼프 당선에 결정적으로 기여한 백인 노동자 계급과 저소득층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아직은 미지수다.
일례로 레이건은 당선 후 자신에게 절대적으로 조력했던 항공 노조를 탄압하고 정리해고 시켜 대대적인 반발을 불러일으켰던 바 있다. 과거의 현상을 통해 유추해 볼 때 트럼프의 인기 역시 지속될 것이라고 단언하기는 어렵다.
기존 지지층의 민심은 트럼프 경제 정책 공약 중 대규모 인프라 투자의 향방에 따라 결정될 확률이 높다. 만약 대규모 인프라 투자가 단행된다 하더라도 강력한 지지층인 백인 노동자 계급에게 혜택이 돌아갈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간단히 말해 지지층을 만족 시킬 수 있는 거시 경제 순환 구조를 만들 수 있느냐 없느냐가 관건인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트럼프의 공약들은 괜한 헛소동(much ado about nothing)으로 끝날 가능성도 농후하다. 최악의 경우 임기 시작 후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상당한 정치적 역풍에 직면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 경제 외에 세계 경제에 미치는 여파는 중기에도 부정적일 것으로 보인다. 가뜩이나 축소된 세계 무역 흐름이 미국 예외주의 때문에 더욱 위축되어 급랭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물론 미국이 그동안 세계 경제에 대해 호혜적인 역할만 해온 것은 아니지만 그나마 해왔던 역할마저도 약화될 가능성이 높다고 볼 수 있다.
과거 '골드만삭스에게 좋은 것이 미국에게 좋은 것이다'라는 말이 상당한 호응을 얻어 금융 산업 부분에 대한 막대한 지원이 실행된 바 있다. 특히 금융위기 때 이런 주장이 주류에서 받아들여졌다. 벤 버냉키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 의장은 "금융 가속기 이론"을 내세웠다. 버냉키는 금융 부분에 대한 막대한 지원은 실물 부분으로 위기가 번지지 않게 하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는 점을 거듭 강조하였고, 결국 실행에 옮겼다. 이 때문인지 확실치는 않지만, 이후 미국 경제는 더 이상의 침체로 빠지지 않고 회복세를 보이기도 하였다.
이런 측면에서 기존 기득권 세력의 불완전한 처방이 트럼프 성공의 커다란 조력자였음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미국 경제는 현재 고용 없는 성장에 몸살을 앓고 있다. 따라서 트럼프 행정부의 주된 과제는 자신의 승리에 큰 도움이 되었던 벤 버냉키의 불충분한 처방을 어떻게 채워나갈 것인지, 그 방법을 찾는 것이라 본다.
트럼프, 공화당 경제수렁의 전철을 밟을 것인가시각을 바꿔 트럼프가 정치 경력이 없는 유일한 미국 대통령이라는 점을 제외하고, 그가 공화당 소속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경제에 어떤 파급 효과가 미칠지에 대해 예상해 볼 수 있다.
트럼프의 당선으로 인해 공화당으로서는 민주당의 3기 연속 집권을 막고 8년 만에 집권하게 되었으며, 상하원 모두 다수파를 유지하는데 성공하였다. 공화당은 조지 부시 행정부 4년(2003년~07년) 이후 처음으로 행정부와 입법부 모두에서 다수파를 구축하였다. 과거 역사를 통해 볼 때, 앞으로 공화당에서 펼쳐나갈 정책들은 일정 부분 부적절하며, 한계 또한 분명하다. 흥미로운 사실은 민주당 집권과 공화당 집권의 역사를 돌이켜 보면 민주당에 비해 공화당 집권 시기 경제성과가 좋지 않다는 것이다.
1953년 이후 공화당 집권기와 민주당 집권기의 경제성과를 비교하면 공화당 집권기에 경제성장률(-0.7%p)과 주가상승률(-2.5%p)이 더 낮은 반면 물가상승률은 +0.3%p 정도 더 높다는 것을 확인 할 수 있다. 이와 더불어 정권교체기(민주당→공화당)와 민주당의 재집권기(민주당→민주당)를 비교하면 성장률(-0.8%p), 주가상승률(-6.2%p), 물가상승률(+0.5%p)의 격차는 더 확대된다.
이는 민주당이 초대 재무 장관이었던 알렉산더 해밀턴 류의 경기 부양을 선호하고 반대로 공화당이 2대 재무장관이었던 갤러틴 식의 보수적인 재정정책 기조 전통을 계승하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해밀턴과 갤러틴의 동상은 각각 재무부 건물 앞편과 뒤편에 세워져 있으며 각각 확장적 재정정책과 보수적 재정정책 기조를 상징한다.
트럼프의 집권, 경기침체를 넘어 사회정치적 혼란 야기할 것2008년 서브프라임 위기를 정확히 예측하여 국내에서도 유명해진 로버트 실러 교수의 주장에 따르면, 7~8년 이상 지속된 경기침체는 경제문제에 국한되지 않고 정치적 갈등으로 확산된다. 실러 교수는 이와 관련한 두 가지 역사적 사건을 예로 들었다. 1929년 시작된 세계대공황이 결국 2차 세계대전을 불러일으켰던 사건과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 지속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전쟁으로 비화된 사건이 그에 해당한다.
즉 경기침체는 단순히 경제문제가 아니라 사회정치적 갈등의 격화로 이어질 수 있으니 서둘러 경제문제를 해소해야 한다는 것이 실러 교수의 주장이었다(Robert Schiller, "Parallel to 1937", Project Syndicate, 2014.9.11). 물론 트럼프 때문에 세계전쟁이 발발할지는 모르는 일이지만, 적어도 심각한 사회문제와 갈등의 야기는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의 승리로 인해 미국과 미국인들 그리고 전 세계 시민들은 역사의 나쁜 방향(mauvais côte de l'histoire)과 마주치게 되었다. 비극으로 끝날 실험보다 더 나쁜 것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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