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시험장에 등장한 최순실 비판 문구'2017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치러진 17일 오전 전북 전주시 완산구 기전여자고등학교에서 한 학생이 국정농단 사태 중심에 있는 비선실세 최순실씨를 비판하는 피켓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나라가 이 모양인데, 수능이 다 무슨 소용일까요?"한 아이가 혼잣말처럼 내게 던진 '냉소'다. '수능이 대수냐'는 식의 이런 표현은, 20년 가까운 교직생활 동안 단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다. 학생부 종합전형의 확대로 비중이 크게 낮아졌다고는 하나, 수능은 아이들에겐 대학입시의 상징으로 여전히 굳건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는 수능을 대하는 아이들의 태도마저 '삐딱하게' 만들어버렸다.
요즘 들어서는 수능을 치르는 아이들보다 오히려 어른들이 더 수능에 주눅이 들어있는 듯하다. 지난 12일 100만 촛불의 혁명이 시작됐는데도, 수능을 앞둔 고3 교실은 별천지인 양 평온하기 그지없다. 정확히 말하자면, 아이들은 눈과 귀를 열고 교실 밖을 보려고 안달인데, 교사들은 두꺼운 가림막을 치고 관심을 수능 뒤로 미루라며 다그치고 있다.
아이들의 '나라 걱정'을 어른들이 입막음하는 꼴이다. '나라 걱정은 어른들이 할 테니, 너희들은 수능 준비만 열심히 하라'는 투다. 대한민국 고3에게는 수능 외에 어떠한 곁눈질도 허락되지 않는다. 속으로야 백 번 공감하고 있을 테지만, "이게 나라냐"는 아이들의 반문에 어른들은 전가의 보도처럼 "수능 대박"만 되뇌며 동문서답하고 있다.
언제부터 쓰이기 시작한 말인지는 알 길 없으나, '수능'과 '대박'은 마치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의 관계처럼 떼려야 뗄 수 없는 '고유명사'로 자리 잡았다. 국어사전에도 없는 '대박'이란, 모르긴 해도, 제비가 물고 온 박씨로 인해 부자가 됐다는 흥부전에서 따온 말일 것이다. 곧, 큰돈을 버는 것을 뜻하는 비유적 표현일 테다.
번역이 필요한 박근혜 대통령의 여러 말들 중에도 '통일 대박'이라는 게 있었다. 최순실의 '첨삭지도'가 있었다는 의혹을 받는 이 표현도, 듣는 이에게 '통일이 돈을 가져다준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이를 두고 대통령의 언사로는 부적절하고 경박하다는 비판도 나왔다. 통일이라는 민족의 염원을 고작 '돈'으로 비유하는 천박한 인식에 대한 질타였다.
대통령과 최순실 일당의 국정농단이 백일하에 드러난 마당에, 지금 '통일 대박'이라는 말을 쓰는 국민은 아무도 없다. 당시 물 만난 고기 마냥 호들갑 떨던 언론도 더 이상 거론조차 하지 않는다. 그 때문인지 '대박'이라는 말에는 '천박하다'는 의미가 내포돼 있다며, 마구 끌어다 쓰는 걸 꺼리는 분위기도 있다. 딱 하나, '수능 대박'만 빼고.
'인생 한 방' 가르치는 것, 교육도 사랑도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