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4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 대브리핑실에서 '최순실 국정개입' 의혹 파문과 관련해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박근혜 대통령이 버티기 카드를 꺼내 들었다. <조선일보> 17일자 보도 중 일부를 인용한다.
"청와대는 '최순실 사태' 이후 지난주까지는 '낮은 자세'였다. 박 대통령은 지난 8일 국회를 방문해 정세균 국회의장에게 국회에서 총리를 추천해 주면 '김병준 총리 카드'를 포기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중략) 하지만 이번 주 들어 '하야는 헌정이 중단되고 국가적 혼란을 부른다'는 논리 등을 들며 퇴진 요구에 선을 그었다. 16일에는 외교부 2차관 인사도 하고, 법무부에 부산 엘시티 관련 수사 지시도 했다. 거의 평소와 같은 업무를 재개한 것이다. 다음 주에는 국무회의를 주재하는 방안도 신중히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박 대통령은 정국 주도권을 놓으려 하지 않는 모양새다. 민중총궐기 바로 다음 날인 13일 청와대 정연국 대변인은 "대통령으로서 책임을 다하고 국정을 정상화하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고 했다. 박 대통령은 대변인 발언을 지키기라도 하듯 이번 주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체결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이 협정은 자위대의 한국 진출을 터주고 미국의 글로벌미사일 방어체계를 가속화할 우려가 있어 시민사회가 줄곧 반대해왔다. 그러나 정부는 14일 일본측과 가서명을 했고, 법제처 심사를 완료해 17일 열리는 차관회의에 상정했다. 이와 관련 일본 요미우리 신문은 14일 "한국 측이 군사보호협정 체결을 서두르는 데에는 박 대통령의 의지가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뿐만 아니라 박 대통령은 16일 부산 엘시티 사건과 관련 김현웅 법무부 장관에게 "가능한 역량을 총동원해 신속·철저하게 수사하고, 연루자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엄단하라"고 지시했다고 정연국 청와대 대변인이 밝혔다. 현재 박 대통령은 검찰 조사를 앞둔 상황이다. 이 와중에 나온 박 대통령의 엄정 수사 지시 운운은 여론을 술렁이게 만들었다. 다시 <조선일보> 보도로 돌아가보자. 이 신문은 친박 의원과 청와대 관계자의 언급을 인용, 박 대통령이 버티기로 나오는 이유를 이렇게 적었다.
"이 같은 청와대와 친박의 기류에는 우선 박 대통령의 불법 혐의가 하야나 퇴진을 할 정도로 중하지 않다는 판단이 작용했다고 한다. (중략) 결국 박 대통령의 범죄 혐의가 퇴진할 정도로 무겁지 않다는 게 여권 주류의 생각이라는 얘기다. 또 지지층이 다시 결집하는 것을 기대하는 분위기도 있다. 한 친박계 관계자는 '지금 촛불 집회가 거세 보이지만, 미국 대선에서처럼 이른바 샤이 트럼프(Shy Trump·공개적으로 트럼프를 지지하지 못했지만 트럼프를 뽑은 사람들)'들도 많다고 보고 있다'고 했다. 말하자면 드러나지 않은 '샤이 박근혜' 층이 있다는 뜻이다."대통령의 일그러진 상황인식 이 보도는 박 대통령과 주변 세력들이 현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지 의문을 품게 만든다. 먼저 대통령의 행위에 대한 인식이다. 최고 권력자 주변 친인척 비리는 한국인에겐 익숙하다. 1980년대 이후 집권한 역대 대통령들은 거의 예외 없이 재임 중이나 퇴임 후 친인척 비리로 곤욕을 치렀다.
집권 초기만 해도 박 대통령은 이 같은 권력형 비리에서 자유로워 보였다. 일단 가족이 없는데다, 근령·지만 등 친동생들과도 관계가 소원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지면서 그가 친인척은 아니었지만 박 대통령의 위세를 등에 업고 온갖 비리를 저질렀고, 박 대통령이 가족보다 최순실을 더 가까이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이런 이유로 여론은 급냉각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현 사태의 본질은 대통령이 국민이 위임한 권력을 무자격자에게 떠넘긴 것이다. 이는 대의 민주주의를 규정한 대한민국 헌법에 대한 모독이자 국기문란이다. JTBC 토크쇼 <썰전> 패널인 보수 성향의 전원책 변호사는 '국기파괴'라는 낱말까지 쓰며 격앙된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거리로 쏟아져 나온 시민들이 '이게 나라냐'는 손팻말을 들고 하야를 외치는 이유도 대통령의 국기파괴에서 찾을 수 있다.
침묵하는 다수? 실체는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