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6일 광화문 광장 앞 행진150만 시민 들이 촛불을 들고 11,26일 광화문 광장 앞 행진
강명구
26일, 첫눈이 내렸다. 작년에도 첫눈은 내렸고, 그 전 해에도 눈을 내렸고, 옛날에도 눈은 내렸지만 사람들은 그 해 겨울에 처음으로 내리는 눈을 첫눈이라고 한다. 사랑을 안 해본 것은 아니지만 지금 사랑을 하면 그것이 내게 첫사랑이 될 것 같다. 첫사랑은 생각만 해도 가슴이 설레는 무엇이 있다.
첫눈 내리는 날 광화문 광장에 150만 촛불이 켜졌다. 촛불은 어둠을 밝히기 위해 켜기도 하지만, 간절한 소망이 있을 때 켠다. 주최 측은 8시가 되자 '저항의 1분 소등' 퍼포먼스를 벌였다.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 오늘 우리 대한민국은 암흑의 세상과 다르지 않다."1분 동안 촛불을 끄고 있다가 다시 모두가 촛불을 켜서 파도타기를 했다. 촛불은 어둠을 밝혔다. 하나의 촛불이 다른 촛불을 붙여주며 들불처럼 번져갔다. 모든 촛불은 커다란 소망을 꿈꾸었다. 첫사랑과 같이 생각만 해도 가슴 설레는 나라에서 살고 싶다.
우리가 살고 싶은 나라는 군사력이 막강한 나라도 아니요, 흥청망청 잘 사는 나라는 더욱 아니다. 그저 기회가 균등하고 차별 없는 세상, 약자에 대해 공감하는 나라이다. 남과 북이 외세의 도움 없이 통일을 이루어 자유왕래를 하고, 누구나 원하는 사람은 부모의 재산에 관계없이 공부를 할 수 있는 나라, 모든 노인들이 최소한의 품위를 유지하면서 최소한의 의료혜택을 받으며 노후를 보낼 수 있는 사회, 삶이 국가에 의해 규격화 되지 않고, 나와 '다름'이 존중되어 저마다의 타고난 독창적인 능력을 개발하여 문화가 융성하고 자유로운 나라이다. 이런 나라를 생각하면 난 첫사랑을 생각할 때처럼 가슴이 두근거린다.
광장에서는 구호와 함께 공연도 이어졌다. 뮤지컬 배우들이 <레미제라블>의 수록곡, <민중의 노래>를 불렀다. 안치환은 <자유>와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를 개사한 <하야가 꽃보다 아름다워>를 불렀다. 사람들은 감동으로 노래를 따라했다. 양희은이 말없이 무대에 올라 <아침이슬>과 <행복의 나라로>,<상록수>를 부를 댄 눈물을 흘리면서 함께 입을 모아 노래를 따라불렀다.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 대부분은 중년의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30년 전 6.10항쟁 때도 이 노래를 부르며 이 거리를 행진했던 사람들일 것이다. 아침이슬처럼 맑고 상록수처럼 푸르른 나이에 저 노래를 부르며 이 광장을 행진 했는데, 이제 30년이 흐른 후 머리가 희끗희끗해서 다시 저 노래를 따라 부르니 어떤 감정이 울컥 넘어왔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