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준영 변호사
이희훈
나의 사무실은 302호. 사무실이 집 가까이 있다 보니 가끔 퇴근 이후 잠시 들를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옆방 301호 박준영 변호사의 사무실에는 불이 켜져 있다. 토요일 오후에도, 심지어 일요일에도 301호에 불이 켜져 있는 것을 본다. 이런 일이 반복되다 보니 "아니 이 친구 너무 무리하는 거 아니냐"는 생각이 들어 잔소리를 시작하게 되었다. "일찍 퇴근해라", "주말은 가족과 함께 보내라".
그런데 어느 날 그 사무실에 변화가 시작됐다. 직원들이 사라지고 월급 안 주는 박준영의 아내가 사무실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급기야 텅 빈 사무실이 되었다. 주인이 있는 듯 없는 듯. 그러다 가끔 301호에 인기척이 느껴지면 반가운 마음에 문을 열고 들어가게 된다. 문을 열고 들어간 301호엔 여기저기 서류가 산더미처럼 쌓여있고, 청소를 안 해 쓰레기장이 따로 없다.
직원이 없어, 함께 이야기할 상대가 없어 외로운 걸까. 나에게 진행하고 있는 사건 기록을 보여주며 내용을 설명하는데 갑자기 언성이 높아진다. 검사실에서 만든 이 서류가 허위로 작성되어 있다고. 서류를 읽어 보면 모든 범죄 사실을 자백하는 답변이 기재되어 있지만 그 조사 과정을 녹화한 실제 영상을 조사했더니 서류 내용이 모두 엉터리라고. 범죄를 자백하는 것으로 취급해서는 안 되는데 잘못되었다고. 재판을 진행하는 법원에는 왜곡된 증거가 접수되고 유죄가 선고되었으나 실제로는 강압 수사를 통해 억지로 만들어 낸 억울한 죄라고.
"선임료는 제대로 받고 하느냐" 물었더니 그냥 웃고 만다. 결국 박준영 변호사의 치열한 법정 투쟁 끝에 억울하게 옥살이했던 사람은 그 이후의 재판에서 무죄를 받았고 국가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청구사건도 계속 진행하고 있다고 했다. 그를 세상에 알린 수원노숙소녀살인사건 이야기다. 이 사건을 계기로, 그는 무기수 김신혜 사건 등을 맡으며 진짜 파산 변호사의 길로 들어선다.
이때만 하더라도 그는 유명세를 타기 전이었기에 나를 비롯한 주변 동료 변호사 몇 명이 형식적이지만 공동 변호인으로 함께 이름을 올리고 마음으로나마 응원했다. 그 이후 그의 입에서 나오는 첫마디는 "인권"이니, "국가의 존재 이유"는 무엇인지 하는 말이었다. 사건을 파고들면서, 억울한 피해자들을 만나면서 박준영 변호사는 끊임없이 이 나라 사법 체계와 국가 권력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굳게 닫힌 301호의 남자를 기다리는 고단한 사연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