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하면 입천장이 벗겨지지 않고 국밥을 빨리 먹을 수 있을까?
심혜진
선배들과 함께 들어간 곳은 학교 앞 국밥집이었다. 식사가 나온 후 나는 기겁을 하고 말았다. 그들은 마치 국밥과 전쟁을 치르는 이들 같았다. 말 한마디 하지 않은 채, 순식간에 국밥 그릇을 바닥까지 싹 비운 것이다. 그 뜨거운 국밥을 말이다.
깜짝 놀라서 쳐다보자 선배들도 겸연쩍은 듯 그제야 웃으며 말문을 열었다.
"우리 교수님 먹는 거에 비하면 우린 빨리 먹는 것도 아니야. 교수님이 국밥을 좋아해서 만날 국밥만 먹어. 그런데 먹는 속도가 엄청 빠른 거야. 다 먹으면 그냥 일어나서 나가버려. 그러면 우리도 중간에 숟가락을 놓고 따라 나가야 돼. 교수님 먹는 속도에 맞추려고 막 먹기도 해봤는데, 입천장이 다 벗겨지더라고." 밥은 먹어야겠고, 국밥은 뜨겁고... 그런데 교수님은 어떻게 뜨거운 국밥을 그렇게 빨리 먹을 수 있는지, 선배들은 궁금해졌다. 그때부터 교수를 관찰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교수에게서 국밥을 빨리 식게 만드는 특별한 행동이나 뜨거움을 참을 수 있는 비법은 발견할 수 없었다. 단, 한 가지 의심 가는 행동이 있었다.
"밥 먹으러 가면 반찬이 먼저 나오잖아. 그러면 교수님은 늘 배추김치를 먼저 드시는데 거기에 비결이 있는 게 아닐까 생각했지."
선배들이 생각해 낸 비결이란, 입에 넣은 배추김치 한 조각을 입천장에 붙이는 것이었다. 그러면 입천장이 벗겨지지 않고 뜨거운 국물을 얼마든지 떠넘길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어떻게 입천장에 배추김치를 붙인 채로 국밥을 먹을 수 있는지, 그 방법은 아직 알아내지 못했다고 했다. 일단, 교수님의 입천장은 배추김치를 장착할 수 있는 특별한 구조로 되어 있을 거란 가설을 세울 수밖에 없었다고. 역시 공학도다운 해석이다.
국밥 한 그릇 마음 편히 먹을 수 있는 사회우울한 표정의 선배들이 모처럼 신나는 얼굴로 해 준 이야기는 내게 웃음과 충격과 씁쓸함과 비애를 남겼다. 교수와 제자 사이에 '식사' 문제는 논문이나 프로젝트 연구에 비해 너무 사소해서 이야기 나누기 민망한 주제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누구도 먹지 않고는 살 수 없다. 누구든, 자신이 좋아하는 음식을 자신의 속도대로 먹고, 원하는 시간에 식사를 마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선배들이 교수가 좋아하는 국밥을, 교수의 식사시간에 맞춰 입 안에 욱여넣을 때, 벗겨진 입천장을 혀로 훑으며 혹여 비참한 기분이 들지는 않을까 걱정스러웠다. 하지만 그땐 몰랐다. 너무나 이상해 보였던 선배들의 행동을 머지않아 나 자신도 절실히 이해하게 될 줄은. 나 역시 어느샌가 '눈치 9단'의 사회인이 되어 버린 것이다.
요즘처럼 추운 날, 얼어붙은 몸을 녹이고 든든하게 배를 채우는 데 국밥만 한 게 없다. 배를 채우는 일은 내 존재를 채우는 일이다. 존재의 존엄을 억누르지 않고도, 그까짓 국밥 한 그릇 맘 편히 비워낼 수 있는 세상이 언젠가는 와야 하지 않을까. 그 누구와 함께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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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밥 '흡입'하는 교수님, 선배들이 생각해낸 묘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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