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6일 유치원생 둘째 아들과 광화문 광장에서눈발이 가늘게 날리던 추운 날씨임에도 많은 사람들이 광화문으로 모여 들었다.
이정혁
물론,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오히려 지금부터가 시작이다. 대통령 하나 바뀐다고 세상이 바뀔 리 없다. 어차피 꼭두각시 대통령이 아니었던가? 권력의 시녀로 전락한 검찰, 수구세력의 나팔수 언론들, 상상력을 말살시키는 교육 등 사회 구조 전체의 틀이 바뀌지 않으면 또다시 반복될 일들이다. 언론의 표현처럼 일단 숨고르기에 들어간 거다. 특검의 수사과정과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예의 주시하면서 항상 엔진을 켜고 기다리는 거다.
그러면서 지난 시간을 복기해 본다. 나는 왜 촛불집회에 참가했는가? 독립군처럼 나라를 되찾겠다는 비장한 각오도 없었고, 썩어빠진 나라를 위해 이 한 목숨 바칠 용기도 없다. 나 같이 평범한 시민에게 분노와 절망을 표출할 수 있는 방법이 촛불 말고는 달리 없었기 때문이다. 촛불이라도 안 켜면 주변의 발암인종들 때문에 명대로 못살 것 같아서.
나와 비슷한 감정과 생각을 가진 다른 이들과 함께 있다 보면 그나마 위로를 받을 것도 같았다. 촛불을 켜고 한 곳을 바라본다는 사실만으로도 위안과 희망을 얻을 수 있으리라 믿었다. 함께 난관을 헤쳐 나갈 수 있겠다 싶었다. 그렇게 힘없는 이들의 작은 촛불이 하나씩 모이기 시작한 것이다. 모이고 또 모이면서 촛불은 점차 힘을 얻기 시작했다.
전국적으로 수백만에 이르는 촛불이 타오르며 국민들은 변화의 기운을 감지했다. 머릿수라도 채우려고 들고 있던 촛불이 거대한 힘을 발휘하기 시작했음을 피부로 느끼게 됐다. "가만히 있으라"는 말만 듣다가, 별이 돼 하늘에 오른 착한 아이들. 그 아이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세상을 만들어줄 기회를 촛불 속에서 발견했다.
촛불은 계속해서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다. 전 세계를 놀라게 하고 감동시키며 비폭력 집회의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이번 주말(12월 31일)에는 천만 촛불 돌파(누적 수치, 주최 측 추산 기준)를 눈앞에 두고 있다고 한다. 촛불은 시민들의 정치적 무관심을 지대한 관심으로 돌려놨고, 주권자인 국민들을 변방에서 핵심으로 옮겨놨다. 이제 촛불의 주인들은 정당한 자신의 권리를 되찾고 행사하고자 한다. 나 또한 그 천만분의 하나이고.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자리 지킨 시민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