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일은 전혀 사소하지 않습니다>
오월의봄
<그 일은 전혀 사소하지 않습니다>는 한국여성의전화에서 기획한 책이다. 한국여성의전화 쉼터에 머물렀던 분들 중 경험을 글로 쓰고 싶은 사람을 찾아 가정폭력의 실태를 정리한 책이다. 가정폭력의 실상을 알리고, 고정관념을 변화시키기 위해 만들어졌다.
이 책의 부제는 '아내폭력에서 탈출한 여성들의 이야기'다. 가명을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쓴 이야기들을 묶었다. 책에 담긴 여덟 개의 이야기에는 다양한 가정폭력 실태가 드러나 있다.
가정폭력 가해자의 모습은 다양하다. 어렵게 힘든 사업을 날리고 실의에 빠진 사람들도 있고, 남들이 부러워하는 좋은 직장에 다니는 사람도 있다. 아내에게 좋은 일이라면 다 해주는 우렁각시같았던 신랑도 있다. 하지만 이들은 모두 아내를 폭행했다.
'순간 내 두 눈에 불똥이 번쩍 튀더니 침대로 튕기듯 쓰러졌다. 남편은 쓰러진 내 가슴 위에 올라타서 사정없이 나의 뺨과 머리를 후려쳤다. 남편의 핏발선 눈빛을 보고 '나를 죽이려고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는지 나는 처음으로 내 성대가 찢어질 만큼 목청껏 "사람 살려, 사람 살려"라고 소리 질렀다.' -39p 폭력의 이유는 다양하다. 정신적인 문제로 폭력을 시작한 경우도 있었고, '전화를 안 받아서', '주식이 떨어져서', '상차림이 마음에 안 들어서' 등의 어처구니없는 이유도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 가정폭력이 시작되면 쉽게 끝나지 않았다. 별다른 이유가 없이 시작되었음에도 좀처럼 끝나지 않는 것이다.
당연히 폭행죄는 형법에 규정되어 있는 범죄다. 피해자는 경찰에 신고를 할 수도 있고, 이혼을 선택할 권리가 있다. 하지만 여성이 가족의 폭력으로부터 도망치는 일은 쉽지 않다. 실제로 이 책에는 폭력을 피해서 집을 떠났다가 다시 돌아가야만 했던 슬픈 사연도 있다. 여성이 경제적으로 자립하기 어려운 상황, 남편에게 오랜 시간 피해를 입어 꺾인 자존이 여성의 탈출을 막는다.
아이가 있는 가정은 아이 때문에 이혼을 못하는 경우도 있다. 심지어 피해자의 가족들조차도 아이를 봐서라도 돌아가야 하지 않겠냐고 권유하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가정폭력은 아이에게도 영향을 끼친다. 아이의 정서에 안 좋은 영향을 일으키는 것은 물론 최악의 경우에는 아이도 가정폭력의 피해자가 된다.
'"인사를 잘 안하는 너희는 개새끼보다 못하다"며 남편은 큰아이에게 안경을 벗으라고 말했다. 아이는 불안해하며 머뭇거렸다. 안 벗으면 더 맞는다는 협박에 큰아이가 안경을 벗었고, 남편은 아이의 머리와 뺨을 몇 차례 때렸다. 아이는 울면서 잘못했다고 빌었지만 소용없었다. 작은딸은 언니가 맞는 것을 보자 겁을 먹고 잘못했다고 빌었다. 그러나 남편은 그 큰 손으로 작은아이의 얼굴도 때리기 시작했다.' -109p.안락한 가정을 이룬 성공한 모습에 대한 '가정 성공신화'가 피해자를 옭아매기도 한다. 아이들에게 상처를 주고 싶지 않아서, 이혼은 인생의 실패라고 생각해서 등의 이유로 붕괴된 가정을 유지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 한 피해자는 자식을 위해서 폭력을 참아내는 것은 아이들에게도 폭력을 강요하는 일이 된다고 말한다.
Q. 지금도 '가정 성공신화', '이혼은 실패'라는 통념에 매여 폭력을 견뎌내고 있는 여성들이 있는데, 그들에게 어떤 말을 해주고 싶으신가요? 우리는 누구나 세상에 단 한 명밖에 없는 소중한 존재이고 존중받아야 할 존재라는 것을 알아야 해요. 남편의 폭력에 시달리고 있다면 하루라도 빨리 'NO'라고 말하고 뛰쳐나와야 합니다. 자식을 위해서 폭력을 참아내는 것은 아이들에게도 폭력을 강요하는 것과 마찬가지예요. -92P이렇게 가정폭력을 겪고, 그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사람들을 조력하는 곳이 한국여성의전화다. 이 책의 뒷부분에는 한국여성의전화의 지원 내용과 연락처가 적혀 있다. 이곳은 급박한 피해자를 위한 보호를 제공하는 긴급피난처, 가정폭력 피해자와 구성원이 들어갈 수 있는 단기보호시설, 10세 이상의 남아를 동반한 피해자를 보호하는 가족보호시설, 중·장기보호시설 등의 쉼터를 제공한다. 이외에도 법률 지원, 치유 캠프, 동반자녀 지원 및 심리상담과 놀이치료도 지원한다.
한국여성의전화는 창립 30년이 넘은 단체지만, 과거에는 상근자들이 경찰 조사를 받은 적도 있다고 한다. 어떤 가정폭력 가해자가 한국여성의전화가 아내들을 팔아먹는다며 경찰에 고발한 것이다. 여성을 가두고 새우잡이 통통배에 팔아넘겼다고(인신매매) 신고를 받은 경찰이 이를 조사하러 나와 상근자들이 조사를 받아야 했다.
지금은 경찰도 가정폭력에 관한 연구 용역을 시도하고 대책을 마련한다. 방송에서 가정폭력을 중대 범죄로 묘사하는 프로그램도 있다. 과거에 비하면 가정 폭력에 대한 사회의 인식이 더 엄중해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폭력상황에서 신고조차 하지 못하고 있고, 어디에 도움을 요청해야 하는지도 모른다고 한다. 한 부모 가정에 대한 세상의 편견 역시 어렵게 첫 발을 내딛은 사람들을 힘들게 하고 있다. 이 책이 더 널리 알려져서 많은 피해자들이 도움을 받는 세상이 오길 바란다.
그 일은 전혀 사소하지 않습니다 - 아내폭력에서 탈출한 여성들의 이야기
한국여성의전화 지음,
오월의봄,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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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이런 제목 어때요?>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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