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TV토론 참석한 문재인 후보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19일 오후 서울 여의도 KBS본관에서 열린 KBS 주최 대선후보 토론회에서 토론 준비를 하고 있다.
국회사진취재단
토론회에 주도권은 질문하는 사람에게 있다. 질문자는 상대방의 답변을 예상하고 그 다음, 또 그 다음 질문을 준비할 수 있다. 그러다보면 결국 토론은 질문자의 의도대로 흘러가기 십상이다. 답변자가 이를 타개하기 위해서는 질문자의 예상에서 벗어난 답변을 하거나, 역공을 펼쳐야 한다. 한 사람은 질문만 하고 한 사람은 답변만 한다면 토론회가 아니라 청문회다.
지난 19일 KBS가 주최한 대선후보토론회가 그랬다. 후보자들의 질문은 가장 유력한 후보인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에게 집중될 수밖에 없다. 주도권 토론 방식으로 진행된 앞선 1차 토론에서도 그랬지만, 5명의 후보들에게 질문과 답변시간을 합해 9분씩 주는 시간총량제 방식에서는 그 강도가 더욱 심해졌다. 그런 면에서 룰은 문 후보에게 절대적으로 불리하게 작용했다.
하지만 이 방식 역시 각 후보자 캠프에서 룰 합의를 통해 정해졌고, 문 후보 측도 질문이 쏟아질 것이라는 걸 예측할 수 있었다. 이 지점에서 문 후보의 전략이 무척 아쉬웠다. 1차 토론처럼 '안정감'에 초점을 맞춘 답변을 준비한 것으로 보였지만, 질문자 순서가 없는 형식에서는 힘을 잃었다. 같은 사안으로 정반대 관점에 협공을 받는 일이 잦았고, 결국 답변만 하다가 시간을 다 보냈다.
어차피 질문이 집중될 것이라는 판단을 했다면, 문 후보가 준비해야 할 것은 질문자를 당황시킬 수 있는 '예상외 답변'과 질문을 받아 칠 수 있는 '역공'이었다. 실제로 문 후보에게 쏟아진 질문 중에는 구시대적인 '색깔론' 공세가 많았고, 어떤 지점에서는 상대 후보의 약점을 파고 들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토론회를 보면서 문 후보의 아쉬웠던 답변에 몇 가지 의견을 말하고자 한다.
북한이 우리의 주적? 전쟁하자고?토론회 이후 가장 논란이 되고 있는 사안은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가 문 후보에게 던진 '주적 공세'다. 2016년 국방백서에 '북 정권과 북한군'을 '주적'이 아니라 '적'으로만 명시 한 것으로 확인되면서 후보 캠프 사이에 공방이 이어지고 있다. 이런 사실을 문 후보가 토론회에서 이미 알았다면 좋았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충분히 역공이 가능한 지점이었다.
문 후보는 "북한이 우리의 주적입니까"라는 유 후보의 질문에 "그런 규정은 대통령으로서 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라고 답했다. 유 후보가 국방백서를 거론하자 "국방부로서는 할 일이지만 대통령의 일은 아니"라며 같은 답변을 반복했다. 이에 유 후보는 "(벌써) 대통령이 되셨나"라고 공격했고, 문 후보는 "대통령이 될 사람"이라고 대응했다. 결국 문 후보가 수세에 몰리는 상황이 연출됐다.
하지만 유 후보의 질문은 그동안 수구보수 세력들이 해왔던 '색깔론' 공세에 불과했다. '보수의 새희망'이라고 외치는 유 후보가 결코 새롭지 않음을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했다. 그래서 문 후보의 답변에 더 아쉬움이 남는다. "대통령이 할 일이 아니"라는 문 후보의 주장이 힘을 받을 만한 '무엇'이 없었다. 문 후보가 여기서 이렇게 답변했다면 어땠을까?
"북한 정권과 북한군이 주적입니다. 하지만 대통령이 될 사람은 그렇게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주적이라고 하면 타도하고 물리쳐야 하는 대상이라는 건데, 그럼 전쟁하자는 얘기입니까? 그러면 유 후보는 북한과의 전쟁을 공약으로 내거십시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은 어떻게 책임 질 겁니까? 대통령은 주적을 대화의 상대로 만드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전술핵 재배치에 관한 질문에도 같은 반론이 가능했다. 대통령이 북한을 주적으로 몰아가고, 전술핵을 재배치하는 것은 한반도의 전쟁 가능성을 높이는 행위라는 것을 명확히 하고,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포격, 개성공단 폐쇄 등 지난 10년 동안의 남북관계 후퇴를 지적하며 공세로 전환할 필요가 있었다. "전술핵 재배치는 불필요 하다"는 미국의 태도도 보다 분명히 전달했어야 했다.
유승민이 '군복무 단축' 물고 늘어진 이유는?유 후보가 '군복무 단축' 공약을 공격한 것도 문 후보에게 기회가 될 수 있었다. 문 후보는 "원래 국방개혁 계획에 18개월로 단축하게 돼 있다"라며 "부사관을 늘려 군을 전문화 하고 첨단무기를 도입해 기술 집약 군 체제로 가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나쁘지 않은 반격이었다. 하지만 이 역시 질문자의 예상 범위에 있었고, 유 후보는 "지금의 안보상황에서 굉장히 위험하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이러한 질의 응답은 문 후보의 안보관을 '굉장히 위험한 것'으로 몰아가기 위해 유 후보가 사전에 준비한 것으로 보인다. 문 후보의 답변은 원론적인 수준에 그쳤고, 유 후보는 보수층에 어필하겠다는 의도를 어느 정도 실현했다. 하지만 군복무 단축은 단지 안보나 국방만의 문제가 아니다. 대한민국의 20대 청년들이 짊어진 무거운 짐이다. 문 후보가 이 지점에 착안해 이렇게 말했으면 어땠을까?
"유 후보님. 군 복무단축은 우리 모두가 힘써야 할 일입니다. 우리 청년들이 지금 얼마나 어려운 상황인지 모르십니까? 가뜩이나 취업이 어려운데 군복무로 인해 청년들의 사회진출이 늦어지고 있습니다. 사회진출이 늦어지니 결혼도 늦고 출산도 늦습니다. 외국과 지표를 비교해 보십시오. 언제까지 국가의 책임을 청년들에게 전가할 생각입니까? 책임 있는 정치인이라면 군복무 기간은 계속 줄이고 그걸 대체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안보 분야의 질문뿐 아니라 이어지 교육·경제 분야의 토론에서도 마찬가지다. 문 후보는 복지 정책의 후퇴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심상정 정의당 후보의 '복지공약 후퇴' 공세에 밀렸고,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인상 공약에 재원방안을 요구하는 유승민 후보를 제대로 반격하지 못했다. 특히 유 후보가 공무원연금 개혁 합의 과정을 놓고 "민주당이 떼써서 했다"라고 말한 부분을 질타하지 못한 것은 두고두고 후회가 남을 지점이다.
물론 밖에서 보는 사람이 이렇게 말하기는 쉽다. 문제는 남은 토론회도 같은 방식으로 진행된다는 점이다. 방식이 바뀌지 않는다면, 지지율 순위가 바뀌지 않는다면 남은 토론회에서 똑같은 장면이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 반대로 이것은 문 후보가 '더 준비된 대통령'의 모습을 보여줄 기회가 세 번 더 남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부디 다음 토론에서는 후보들의 멋진 공방을 볼 수 있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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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주적 공세'에 이렇게 답변 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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