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의 한 장면. 주인공 다니엘은 심장병 때문에 일을 할 수 없게 되자 실업급여를 받기 위해 관공서에 찾아간다. 그리고 복잡하고 관료적인 절차를 마주하며 좌절한다.
영화사 진진
저는 부끄러워하지 않으려 애썼습니다. 그동안 제 자신이 가진 능력 이상으로 '국민의 의무'를 다했기 때문입니다. 평생 돈을 버는 일은 못할 거라던 의사의 말이 무색하게 사무실에서 두 번째로 오래 일한 사원이 됐고, 승진도 했습니다. 노동의 의무를 다하니 당연히 납세의 의무도 자동으로 실천했고 일하면서 주경야독해 의무교육 이상의 교육의 의무를 완성했습니다. 비록 현역은 아니지만 민방위 훈련에 누락 없이 참석해 국방의 의무도 다했습니다.
그렇게 제 의무를 다한 제가, 잠시 증상이 나빠진 시기 동안 국민의 권리인 '사회권'을 행사하겠다고 주민센터 복지 창구에 앉은 겁니다. 부끄러울 게 뭐가 있어? 라고, 생각하려 애를 썼습니다.
하지만 일을 할 수 없고,부모님도 저를 도울 수 없으며,재산도 없다는 '확인 절차'를 거치며 저는 위축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주민센터의 담당 공무원이 정중하고 친절했음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더 현실적인 문제도 있었습니다. 국민기초생활보장 신청을 위한 절차와 비용 등이 너무나 부담스러웠던 것이죠. 서류만 열 한 가지. 그중 최근 1년간 은행거래내역서와 근로능력평가서, 혼인관계증명서와 가족관계증명서는 유료였습니다. 통합 14,800원이 들었습니다. 당장 오늘의 식사를 걱정해야 하는 제게 한 달 후에 들어올 수도, 들어오지 않을 수도 있는 얼마를 위해 3일 치 식료품값을 포기하라니, 너무 가혹하단 생각이 들더군요.
특히 그 중 혼인관계증명과 가족관계증명은 주민센터 내부에서도 바로 확인이 가능하고 굳이 수급 요청자가 서류를 따로 내지 않더라도 정부 전산으로 충분히 확인이 가능한 것인데 각 1천 원씩을 부담해야한다는 점이 매우 불합리하게 느껴졌습니다. 2천 원은 제가 우유 두 팩을 사서 3일 동안 먹을 수 있는 돈이었습니다.
절차 또한 매우 복잡해서, 직장생활 하면서 매일 수십장의 A4용지를 만졌던 저임에도 굉장히 헤매게 되더군요. 대출 서류보다도 더 복잡했습니다. 특히 부양의무자 란의 경우 저에 대한 부양의무가 있는 부모님께 직접 찾아뵙고 서명을 받아와야만 했습니다.
어처구니가 없었습니다. 애초에 부모 도움을 받을 형편이었으면 왜 주민센터에 왔겠습니까. 다시는 부모 자식 하지 말자며 헤어진 게 3년 전인데 정부 보조금 때문에 그러니 좀 만나달라 소리가 쉬웠겠냐고요.
저는 제 몫의 노동을 하고 제가 내야 할 세금을 냈으며 저 혼자 먹고살 수 있을 만큼의 지원금을 요구했습니다. 절 돌봐줄 다른 사람과의 법적인 관계와 이들의 소득 수준을 증빙할 이유가 없었죠. 결국 하기는 했습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