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m 광고탑 꼭대기, 그래도 감옥보다 낫다는 이 사람

[그들은 왜 올라갔나①] 동양시멘트 해고노동자 김경래씨 이야기

등록 2017.05.03 17:22수정 2017.05.04 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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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연휴다. 방송에서는 온통 해외여행이다 가족여행이다 오랜만의 연휴를 어떻게 보내는지 알리는 보도 일색이다. 사실 한국의 노동시간은 2113시간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OECD 평균인 1766시간(2015년 기준)보다 한참 많다. 두 달 더 일하는 셈이다. 우리의 노동현실이 이렇다 보니 오랜만의 황금연휴를 즐기려는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할 만하다.

하지만 황금연휴가 서러운 사람들이 있다. 연휴 중에도 일해야 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 외에도 투쟁을 멈출 수 없는 노동자들이다. 휴가라고 투쟁을 멈출 순 없지 않나? 특히 빨라진 더위와 추위에 내던져진 고공농성자들은 더 그렇다. 서울 광화문 광장 근처 40M 높이의 광고판에 오른 사람들이 그중 하나다.

그들은 단식으로 더위와 추위, 위험을 몸뚱이 하나로 견뎌내야 한다. 아니 몸뚱이가 아니라 정신력으로 버텨내야 한다. 기력이 빠져 한 걸음 한걸음이 무겁다. 왜 저렇게까지 하냐고 묻는다면 그렇게까지 하지 않으면 그들의 싸움을, 그들의 삶을 사람들은 금방 잊어버리기 때문이다. 그렇게 잊어버리기를 기다린 기업주들은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 부당한 노동현실에 저항하는 사람들을 괴롭히고 해고한다. 고공농성자 여섯 명 중 한 명인 동양시멘트해고노동자 김경래씨도 그렇다. 지난 4월 30일, 노동절 전날 그와 이야기를 나눴다.

서울 지리를 아는 '삼척노동자'

 서울 광화문광장 인근 40m 광고탑에서 고공농성 중인 동양시멘트 해고노동자 김경래씨.
서울 광화문광장 인근 40m 광고탑에서 고공농성 중인 동양시멘트 해고노동자 김경래씨. 김경래

그는 동양시멘트에서 일하기 전에 강원여객에서 일했다. 고속터미널 지리에 빠삭한 덕분에 상경투쟁을 하게 된 후 전철 타는 곳이나 밥 먹는 곳을 알려주는데 앞장서곤 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상경투쟁을 많이 한다. 원청인 본사가 대부분 서울에 있기 때문이다. 작은 지방도시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이 지하철을 처음 타보기도 하고, 많은 사람들 속을 헤치고 다니면 마주하게 되는 낯선 시선을 견디며 싸우는 게 상경투쟁이다.

삼척 조그만 도시에서 나와 마주한 서울은 삭막함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연대자들을 만나고 장애인, 세월호 유가족들을 비롯한 싸우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세상을 배우는 시간이기도 했다. 그렇게 800일을 넘게 싸웠다.

동양시멘트, 이제는 SAMPYO(삼표)로 이름을 바꾼 본사는 서울 광화문 미대사관 뒤쪽에 있다. 거기에 천막을 치고 싸웠다. 동양시멘트노동자들은 노조를 결성하기 전까지 자신들이 위장도급업체에서 일한 건 줄 몰랐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들은 자신들이 정규직인줄 알았다. 동양시멘트는 동일과 두성이란 두 업체를 통해 위장도급을 하고 있었다.


김경래씨는 동일에서 근무했다. 혼자 하는 일이었다. 그러다 2010년 신광산을 개발한다고 근덕으로 옮기면서 노동자들의 월급 중 인상액 6개월 분을 안주고 상여금도 까는 것을 보면서 이건 아니다 싶었다고 한다. 그러다 49광구에서 일하는데 2011년 퇴직한 동양시멘트 정규직 노동자들의 월급이 자신들보다 더 많다는 걸 알게 됐다. 반장들은 물량이 많다는 이유로 점심 때도 제때 밥도 주지 않고 밥만 주고 쉬는 시간없이 일을 시켰다. 한번은 하청노동자가 산재를 당했는데 제대로 처리해주지도 않았다. 노조가 있으면 이러지는 않을 텐데….

마침 현재 지부장인 이재형씨의 친구가 노조를 만들자고 제안했다. 한 달 정도 해보자며 노조가입서를 들고 왔다. 11명으로 시작한 노조는 2014년 5월 17일  동양시멘트 사내하청업체 동일노조 결성 때 83명이었고 같은 해 6월 27일  민주노총 강원영동지역노동조합 동양시멘트두성지부 결성은 80명이 가입했다. 그만큼 사람들의 노동조건은 열악했고 불만은 컸다는 뜻이다.


고민하다 민주노총에 가입했다. 이후 노동자들은 동양시멘트 본사의 직접고용을 외치며 투쟁을 했다. 처음하는 싸움이라 공무원노조 강원지부 사람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아침마다 출근투쟁도 같이 했다. 고공농성 중에도 서울까지 와서 연대해주는 강원영동지역 사람들이 그는 정말 고맙다.

그는 버스노동자로 일하며 비록 민주노총보다는 '온건'한 한국노총 사업장에서 노조활동을 조금 경험하기는 했지만 그때와는 달랐다. 진짜 노조였다. 그런데 회사는 비정규직이 노조를 만드는 것을 싫어했다. 민주노총에서 고용노동부에 정규직인지 아닌지 질의해보자고 해서 질의했다. 헌법과 노동법에는 노동조합원 결성할 권리가 있고, 단체교섭과 단체행동을 할 권리, 이른바 노동3권이 있는데도 말이다.

2015년 2월 13일 고용노동부는 위장도급(묵시적 근로관계)이라고 판정했다. 동일(주)와 (유)두성기업 소속 노동자들은 입사 때부터 동양시멘트(주)의 정규직이라는 것이었다. 그러자 회사는 도급계약 해지 통보에 따른 동일(주) 노동자 101명에 대해 해고 통지서를 가정으로 발송하거나 자정 무렵 출근하는 조합원들에게 구두로 해고를 통보했다. 기업은 국가기관인 노동부가 하는 말도 무시하고 해고할 정도였다.

지역대책위도 만들고 도지사도 만나고 국회를 찾아가고 농성투쟁도 시작했다. 49광구에서 현장투쟁도 하며 몸싸움을 벌였다. 그러면서 업무방해로 7명이 감옥살이를 해야 했다. 그도 3개월을 감옥에서 보내야 했다. 본사의 태도가 바뀌어야 하기에 동료들과 상경투쟁을 시작했다. 서울에 있는 사회단체, 인권단체, 종교인들에게 불법과 폭력에 대해서 알리고 변호사들의 도움을 받아 법적 투쟁도 했다.

"왜 아직까지 복직이 안 되는지 저도 알고 싶어요"

박근혜 퇴진투쟁이 한창이던 지난해 12월 20일 서울중앙지법은 해고된 49명은 정규직이라고 판결했다. 행정부도 사법부도 해고된 동양시멘트 노동자들은 정규직이며 부당해고라고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그와 그의 동료들은 아직 복직하지 못했다. 친구들이 지난해 법원 판결 소식을 듣고 물었다. 이제 복직되는 거냐고. 아니라고 했더니 그 친구가 왜 법적으로도 이겼고, 고용노동부도 위장도급이라고 했는데 왜 일하지 못하냐고 물었다. 그는 자기도 답해주고 싶었는데 할 말이 없었다. 그는 되묻는다.

"왜 아직까지 복직이 안 되는지 저도 알고 싶어요."

법도 무시하는 기업들을 국가는 왜 그대로 두냐고 묻는 거다. 그가 40M 높이의 광고탑 위에 올라간 이유다. 법적으로 이겨도 기업주 마음대로의 세상이 지금의 한국 사회다. 그는 말한다.

"일만 열심히 하면 잘 살줄 알았어요. 그게 아니었어요. 지노위 판정도 무시하고, 1심 판결도 무시하는 게 기업이죠. 불법파견, 위장도급을 양산하는 비정규직 제도를 바꾸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법에 의존하는 건 한계가 있구나, 노동자가 싸워야겠구나. 그래서 올라왔어요."

고공농성 벌이는 노동자들 지난달 4월 15일 오전 금속노조 콜텍지회, 아사히비정규직지회 등 '노동자·민중 생존권 쟁취를 위한 투쟁사업장 공동투쟁위원회' 소속 노동자 6명이 서울 세종로네거리 부근 세광빌딩 옥상 광고탑에서 고공농성을 벌이는 모습.
고공농성 벌이는 노동자들지난달 4월 15일 오전 금속노조 콜텍지회, 아사히비정규직지회 등 '노동자·민중 생존권 쟁취를 위한 투쟁사업장 공동투쟁위원회' 소속 노동자 6명이 서울 세종로네거리 부근 세광빌딩 옥상 광고탑에서 고공농성을 벌이는 모습.권우성

그는 가족들에게 미안하다. 해고되고 감옥에 가면서 경제적 사회적 부담을 아내에게 지우게 돼 더 가슴이 아프다. 얼마 전에는 고공단식농성한다는 소식을 듣고 아내가 찾아왔다. 그날 밤은 더 서러워서 잠을 청하기 어려웠다. 아들 둘에게도 광고탑 위에 올라왔다고 말하지 못했다. 감옥에 갔을 때도 미안했는데, 학비도 주지도 못하는데, 군대에 면회도 못 가는데 하는 마음에 '아빠가 고공단식투쟁한다'는 말을 전하는 건 엄두를 못 낼 일이었다.

어머니는 고공단식농성하는 줄은 모르지만 또 감옥에 갔을까 봐 종종 전화를 하신다. 어머니께는 걱정하지 말라고, 감옥 아니라고 안심시켜드렸지만 차마 광고판 위에서 단식투쟁하고 있다고 입을 뗄 수가 없다. 사실 그가 있는 곳은 '하늘 감옥'이니까.

"감옥보다 나은 거요? 마음 맞는 여섯 명이 함께하는 거죠"

 서울 광화문 광장 인근 40m 높이의 광고탑에서 고공 농성 중인 동양시멘트 해고노동자 김경래씨.
서울 광화문 광장 인근 40m 높이의 광고탑에서 고공 농성 중인 동양시멘트 해고노동자 김경래씨. 김경래

'하늘 감옥'에서 단식투쟁하는 그와 인터뷰를 한다는 건 내게도 고역이다. 벌써 곡기를 끊은 지 19일째(2일 기준). 기력이 쇠한 그에게 질문을 하는 건 가슴이 쓰린 일이다. 그래도 노동자 김경래가 어떻게 살았고 왜 극한의 투쟁을 하는지 세상 사람들이 알았으면 좋겠어서 용기를 냈다.

얼마 전에는 고공농성을 하기 전 수술한 눈에 이상이 생겼다. 그러나 인공눈물을 넣는 것 외에 더 이상의 조치를 취할 수는 없다. 1M가 채 되지 않는 공간에서 여섯 명이 생활해야 한다. 물도 먹고 움직여야 한다. 단식농성을 하면 마지막에 근육까지 소모해 걷기도 힘들다. 최소한 움직이며 신체조직의 손상을 최소한 해야 하기에 가끔은 움직여줘야 하지만 그러기엔 너무 좁은 공간이다.

또한 단식이라 안정을 취해야 하지만 고공의 소음은 심하다. 광장이라 빨리 달리는 자동차 소음과 저녁에는 땅에서 조용하게 말하는 내용까지 크게 들릴 정도다. 65데시벨을 넘을 때가 많다. 화장실도 가야 해서 기어다니다 보니 온몸에 멍이 들었다. 이제는 조금만 움직여도 머리가 어지럽다. 배고파서 힘들다는 그에게 감옥 생활보다 나은 게 뭐냐고 물었다.

"처음에 올라왔을 때는 못 먹으니까 너무 배고파서 감옥이 낫다고 생각했지요. 게다가 씻지도 못하잖아요. 그래도 나은 게 있더라고요. 감옥에서는 혼자 외롭게 있어야 하지만 여기는 아니잖아요. 동양시멘트 싸움이 3년이에요. 그런데 그게 동양시멘트만의 문제는 아니잖아요. 6개 사업장만의 문제도 아니고요. 노동자의 권리를 생각하는 사람, 잘못된 자본의 세상을 바꾸자는 사람, 마음 맞는 노동자 여섯 명이 함께여서 좋아요. 혼자가 아니니까요."  

대한민국에서 노동자가 헌법적 권리를 지키기란 너무 힘들다. 우리는 안다. 권리를 포기하지 않고 싸우는 사람들에 의해 우리의 인권을 지킬 수 있었다는 것을. 그들처럼 투쟁하는 사람이 있었기에 우리는 박근혜 대통령을 탄핵시킬 수 있었던 게 아닌가. 벚꽃대선에 노동자의 권리가 묻히지 않도록, 필요한 건 투표가 아닌 투쟁을 몸소 보여준 그들에게 고맙다.

그럼에도 혼자가 아니라는 그의 말이 아리다. 우리는 서로가 혼자되지 않도록 그렇게 서로의 손을 붙들고 연대하는 게 아닐까. 아리지만 아프게 맞잡은 손. 그렇게 맞잡은 손이 우리의 미래를 만들 것이라 믿는다.
#고공농성 #동양시멘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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