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속노조 갑을오토텍지회 이대희 조합원은 "직장폐쇄 해지까지 약 1년간의 시간은 가족들이 없었으면 못 견뎠을 것이다"고 말했다.
이희훈
윤숙자씨는 어린이집 교사로 수 년을 일했다. 하지만 남편의 회사가 직장폐쇄를 선언하자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뒀다. 윤씨는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고 했다.
갑을오토텍 사측은 2015년 특전사와 경찰 출신 노동자들을 고용하며 '금속노조 노동조합에 가입하지 않는다'는 조건을 걸었다. 별도의 수당까지 주면서 제2노조를 만들어 활동하게 했다. 새롭게 고용된 이들은 지게차를 이용해 기존 노동자들을 협박했다. 심지어 갈고리 같은 흉기를 사용해 폭행까지 했다. 당시 대표이사였던 박효상씨가 부당노동행위를 한 혐의로 법정구속된 이유다.
윤씨는 당시 갑을오토텍 노동자들이 얻어 맞는 모습을 생생하게 기억했다. 그게 다니던 직장까지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남편을 도운 이유라고 했다. 윤씨 뿐 아니라 갑을오토텍 노동자의 많은 아내들이, 지난 1년 거리에 서서 함께 싸웠다.
2016년 여름은 끔찍했다. 일당 17만 원을 받는 150여 명의 용역들이 밤낮으로 갑을오토텍 정문으로 몰려와 공장 진입을 시도했다. 경찰은 '폭력사태가 일어나지 않았다'며 노조와 용역들간의 충돌을 방관했다.
"용역들이 밀고 들어오는데. 다들 밀리고 깔려서 넘어지고... 정말로 이대로 압사당해서 죽을 수도 있구나 생각했어요. 무서웠죠. 한 마디로 끔찍했고요."갑을오토텍 노동자들은 버텨냈다. 전국에서 모인 시민과 학생들이, 다른 사업장의 노동자들이 자발적으로 충남 아산 갑을오토텍을 찾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용역들에 맞서 함께 공장을 지키며 밤새 대치했다. 아내들 역시 전국을 돌며 갑을 사태의 심각성을 알렸다. 일촉즉발의 상황들을 아슬아슬하게 버텨냈다.
노동자 김종중의 죽음, 갑작스런 직장폐쇄 해제윤숙자씨도 처음엔 '7월이면 사태가 해결될 것'이라 믿었다. 한 달이 지났을 땐, '여름이 지나면 종료될 것'이라 기대했다고 한다. 하지만 여름이 지나 가을과 겨울이 돼도 나아지지 않았다. 시국까지 요동쳐 앞날을 예측하기 더욱 어려웠다. 공장을 지키며 버티던 남편들이 집으로 돌아오기 시작한 것도 그 무렵이다. 투쟁을 이어갔지만 특별히 상황을 타개할 만 한 동력이 없었다.
지난 4월, 갑을오토텍에서 23년을 일한 노동자 김종중씨가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김씨는 생활고를 이기지 못하고 "미안하다, 죄송하다, 사랑한다"는 마지막 말만 남긴 채 세상을 등졌다.
이 얘길 하던 윤씨는 숨을 한 번 고른 뒤 "추락하는 느낌"이라고 그때를 돌이켰다. 그러면서 "분명 금방 끝낼 거라 생각했는데, 갑자기 가슴에 커다란 바위가 얹혀진 기분이 들었다"고 말했다. 윤씨 뿐 아니라 버티고 버티며 투쟁을 이어오던 갑을오토텍 400여명의 노동자와 1600여명의 가족들도 실질적인 동력을 잃어버렸다.
지난 16일 갑자기 업무복귀 소식이 들려왔다. 정확한 이유는 확인되지 않았다. 새롭게 바뀐 회사 대표가 노조와 교섭을 열고 21일부터 직장폐쇄를 해제하고 업무에 정식 복귀하기로 합의한 것이다.
윤씨는 '축하한다'는 말을 많이 들었지만 기쁘지는 않았다. 그녀뿐 아니라 갑을오토텍 노동자와 아내들 모두 환하게 웃지 못했다. 그간 갑을오토텍 사측이 보여준 행동 때문에 쉽게 신뢰하기가 어려웠던 탓이다.
"지금까지 (회사가) 손바닥 뒤집듯 했어요. 상식 이하의 행동도 너무 많았고요. 어찌 이끌어갈지는 모르겠지만. 소식을 들었을 때 기쁘다기 보다는 '이제 끝났구나'라는 생각만 들었습니다. 딱 그 정도였어요."직장폐쇄 해제, 사측 결정 배경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