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에 등 돌린 교육, '엄친딸'은 어쩌다가...

이언주 의원 같은 '엘리트'가 나오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서 들여다본 학생부

등록 2017.07.15 19:43수정 2017.07.15 1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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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저 사람도 '학교를 빛낸 인물'이라며 교문 위 현수막에 이름 세 글자가 자랑스럽게 내걸렸겠지."

이언주 국민의당 원내수석부대표의 막말 논란을 접하며 맨 먼저 들었던 생각이다. 그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전교 1등을 도맡다시피 했고, 서울대에 입학해서는 '캠퍼스 퀸'으로 불릴 만큼 사람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았다고 한다. 20대 중반에 이미 사법시험에 합격해 변호사로 나선 뒤 나이 마흔에 국회의원 배지까지 달았으니, 자타공인 대한민국 최고의 엘리트다.

우연히 들여다본 그의 경력은 동년배로서 '그동안 난 뭐 했나' 자괴감이 들 정도로 화려하다. 채 5년도 안 되는 국회의원 기간 동안 각종 기관들로부터 받은 상만 스무 개가 넘고, 사법시험에 합격한 뒤 얻은 직함은 마우스로 스크롤 해야 다 읽어낼 수 있을 만큼 차고도 넘친다. 만약 그간의 그의 경력을 모두 명함에 담는다면 웬만한 공책 한 권 분량은 족히 될 듯싶다.

모르긴 해도, 그의 학창시절 학교생활기록부(아래 학생부)도 아마 그처럼 화려했을 것이다. 죄다 '수'로 도배된 성적표에다, 근면성과 협동성, 준법성 등을 등급화해서 보여주었던 행동발달상황도 전부 '가'였을 게 틀림없다. 으레 우등생들에게 따라붙는, '성적이 우수하고 품행이 방정했다'는 식의 담임교사 종합의견은 그 최상급 학생부의 화룡점정이었을 테고.

'노동 가르치지 않는 교과서', 한국 교육이 만든 참상

'밥하는 동네 아줌마' 발언 사과한 이언주 이언주 국민의당 의원이 지난 1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학교급식 노동자에 ‘밥하는 동네 아줌마’라고 발언한 것에 대해 사과했다.
'밥하는 동네 아줌마' 발언 사과한 이언주이언주 국민의당 의원이 지난 1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학교급식 노동자에 ‘밥하는 동네 아줌마’라고 발언한 것에 대해 사과했다.유성호

학생부에 담긴 그는 '미래를 이끌어갈 인재'였겠지만, 승승장구하여 어느새 헌법기관이 되어 권력을 움켜쥔 그는 지금 안하무인 같은 이미지가 돼버렸다. 그의 지역구인 경기도 광명에도 급식소에서 힘겹게 일하는 조리사들과 차별받는 학교 내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숱하다. 그들 중 다수는 야당 소속이었던 그를 믿고 투표했을 텐데, 그는 그들의 간절한 요구에 망언으로 답한 꼴이 되어버렸다.

황급히 '학부모로서 급식의 질이 낮다는 의미였다'는 등의 어이없는 해명을 늘어놓았지만, 오히려 들끓는 여론에 기름을 끼얹은 꼴이 됐다. '동네 아줌마'들의 학교 급식이 못마땅하면 매일 아침 자녀 도시락은 스스로 챙기면 된다는 조롱은 차라리 애교다. 그의 해명을 '왜 내 귀한 자녀가 아랫것들과 똑같은 음식을 먹어야 하느냐'는 뜻이라면서 자상하게 '번역'해주는 사람도 있다.


순간 자문해보게 된다. 비정규직 노동자 등 사회적 약자들에게 입에 담기조차 민망한 욕설을 해댄 그의 천박한 노동관은 대체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명문대 졸업과 변호사, 국회의원으로 이어지는 이 땅의 주류로 살아가다 보니 의식이 시나브로 퇴행한 것일까. 아니면 그보다 훨씬 전 그가 어릴 적부터 노동에 대한 그릇된 가치관을 지속적으로 주입받아온 결과일까.

교사로서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엄친딸'인 그를 이렇게 만든 건 팔 할이 노동을 백안시해온 일그러진 교육 탓일지도 모른다. 스스럼없이 '노동자는 덜 배운 자'라거나, 심지어 '노동자는 거지'라고 답하는 초등학생들이 태반이고, 중고등학생들도 사정은 별반 다르지 않다. 노동자라는 호칭을 시위할 때나 쓰는 용어인 양 꺼리고, 5월 1일 노동절을 의미조차 모호한 '근로자의 날'로 부르는 이들이 대부분인 현실이다.


'노동 없는' 교과서에다, 여전히 자신이 노동자로 규정되는 걸 못마땅해 하는 교사도 적지 않다. 땀 흘리며 밥벌이를 하는 이 땅의 장삼이사들은 자녀들 앞에서 자신의 일을 스스로 비하하기 일쑤고, 그렇게 자라난 아이들은 장래 희망직업난에다 '회사원'이라고 쓸지언정 결코 '노동자'라고 적진 않는다. 학교에서 노동자는 차라리 '금기어'다. 하물며 '엄친딸'임에랴.

도서관·운동장·급식소에서도 교육은 일어난다

 13일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열린 학교비정규직 및 공공부문 비정규직에 대한 이언주 의원 망언 규탄 및 사퇴 촉구 기자회견에서 도을순 서울일반노조 학교급식지부장이 발언을 마친 뒤 눈물을 흘리고 있다.
13일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열린 학교비정규직 및 공공부문 비정규직에 대한 이언주 의원 망언 규탄 및 사퇴 촉구 기자회견에서 도을순 서울일반노조 학교급식지부장이 발언을 마친 뒤 눈물을 흘리고 있다.연합뉴스

그가 명문대에 진학해 배운 프랑스 문학과 사법시험을 준비하며 익힌 법 지식은 그저 수많은 '동네 아줌마들', '미친 ×들'과 자신을 구분 짓는 기준일 뿐이다. 그것이 국회의원 당선이라는 자신의 핑크빛 미래를 보장해 준 수단이었을지는 몰라도, 정작 공동체를 위해선 쓰이지 못하는 껍데기에 불과했던 셈이다. 하긴 살면서 단 한 번도 그들이 처한 위치에 서본 적이 없는 이에게 과한 기대인지도 모르겠다.

지난겨울, 명색이 야당의 젊은 국회의원으로서 차가운 아스팔트 광장에서 촛불을 함께 들고 적폐 청산을 부르짖었던 그가 비뚤어진 특권의식에 절어있었음이 백일하에 드러났다. 스스로가 청산되어야 할 '적폐'인데, 그 입으로 뻔뻔하게 '적폐 청산'을 외친 셈이다. 지금껏 그가 누구를 변호해왔으며, 누구의 이익을 위해 입법 활동을 해왔는가를 짐작해볼 수 있는 대목이다.

무엇보다도 그는 교육을 잘못 이해하고 있다. 그저 학교에서 교과수업을 받고 시험을 쳐서 높은 점수를 얻는 것을 교육의 전부인 양 받아들이고 있는 듯하다. 공부가 학생의 가장 중요한 본분이라는 점에 누가 토를 달까마는, 교과 성적이 학교교육의 전부일 리는 없다. 교육은 교실에서만 일어나는 게 아니다. 도서관에서도, 운동장에서도, 나아가 급식소에서도 교육은 일어난다.

참고로, 내가 근무하고 있는 학교에서는 교사뿐만 아니라 학교에서 일하고 있는 모든 분들을 선생님으로 호칭을 통일하고 있다. 다른 학년, 교과 교사는 말할 것도 없고, 교무실무사와 행정실 직원, 심지어 급식소와 매점에서 일하시는 분들까지도 모두 아이들의 선생님이다. 이따금 부러 이모와 어머니로 부르는 아이가 있긴 하지만, 그처럼 '아줌마'라는 호칭을 쓰는 경우는 없다.

그것은 학교라는 공간 안에서 아이들과 부대끼며 살아가는 어른들 모두가 '교육자'라는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담당하고 있는 노동의 종류만 다를 뿐, 학교교육에서 누구 하나 중요하지 않은 사람이 없다는 의미다. 설령 수업시간 교과서를 통해서 배울 수 없다고 해도, 학교의 일상생활 속에서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체득할 수 있다면 그 또한 소중한 교육 아니겠는가.

구성원의 자존감 훼손된 곳에서 교육은 이루어질 수 없으므로

머지않은 미래 이곳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아이들 중에는 교사가 되는 경우도 있을 테지만, 더러는 행정실 직원이 되고, 다시 급식소나 매점에서 자식 같은 아이들을 만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과거 아이들로부터 선생님이라 불리며 교사들과 더불어 학교교육의 한 축을 담당했던 그들이 아이들을 함부로 대할 수 없는 건 당연한 이치다. 구성원의 자존감이 훼손된 곳에서는 결코 교육이 이루어질 수 없다.

진정한 사과 대신 변명으로 일관하는 그의 추한 뒷모습을 보면서 '교육이 바로 서야 한다'는 사명감이 드는 이유다. 그를 향해 손가락질하기 전에, 1년 365일 하루 열네다섯 시간을 죽어라 공부시킨 끝에 그와 같은 이들을 길러낸 고등학교부터 반성해야 하는지도 모른다. 지성의 요람이요 학문의 전당이라는 대학은 또 무엇을 가르치고 있는 것인지 이번 기회에 성찰해봐야 하지 않을까.

지금도 전국의 고등학교에는 미래의 '이언주'들이 엘리트라는 찬사와 주목을 받으며 바늘구멍 명문대를 향해 무한경쟁을 펼치고 있다. 현재의 이언주 의원이 거쳐 간 꽃길을 꿈꾸며 오늘도 밤늦도록 책과 씨름하고 있는 것이다. 누구는 '한 명의 엘리트가 만 명을 먹여 살린다'고 설파했다지만, 그 말을 좌우명 삼은 이 땅의 수많은 '이언주'들은 시나브로 특권의식을 당연시하게 됐다.

애먼 아이들의 학생부를 들여다보았다. 예전 같으면 아이들의 과목별 성적표가 맨 먼저 눈에 띄었을 텐데, 이젠 자꾸만 다른 영역으로 눈길이 간다. 재능이 무엇인지보다 과연 사회적 약자에게 공감할 줄 아는 아이인지 먼저 떠올려보게 되는 것이다. 아니 그보다는, 혹시 학생부가 아이들의 '진면목'과는 거리가 먼 낯 뜨거운 기록은 아닌지 조심스럽게 살펴보게 된다. 더 이상 이언주 의원 같은 '엘리트'가 나오지 않길 바라는 간절한 마음에서다.
#이언주 #동네아줌마 #학교비정규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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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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