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톤 터치한 시어머니육아에 최선을 다해 동참해주신 어머니, 아이와 함께 쪽잠을 주무셨다
박진희
시어머니가 집으로 오셔야 먹고 싸는 일이 정상화되었다. 처음엔 그걸 인정하기 싫어서 무던히 헤맸다. 혼자 여행하는 걸 좋아하고, 회사 다닐 때도 늘 혼자 진행하던 프로젝트들이 많아서 누군가의 도움을 받는 것은 곧 내가 무능하다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그래서 어머니가 집에 오시기 전에 집이라도 청소해야지, 빨래라도 널어야지, 조급해질 때가 많았다. 그런 마음 때문에 오히려 더 아이를 울리고, 실수하기도 했다.
남편아, 너의 일상은 왜 그토록 견고한 거니신생아를 키울 때 힘든 일 중 하나는 밤중 수유와 트림시키기이다. (지금도 나는 밤수를 끊지 못했다) 아기는 위장이 작아 한 번에 많이 먹지 못한다. 초반엔 2시간에 한 번꼴로 맘마를 먹여야 했다. 빠는 힘도 세질 못해서 오래 먹여야 했고, 행여 토해서 기도가 막힐 위험이 있기 때문에 트림은 반드시 시켜야 했다.
이토록 사소한 트림이 나오질 않아서 정말 죽을 맛일 때가 있었다. 어느 날 나는 아침밥을 먹다 남편에게 트림의 고충을 토로했다. 남편은 휴대폰으로 검색해보더니 말했다.
"한 30분 정도 세워 안고 있으면 트림 안 해도 괜찮대.""응, 그럼 다음엔 그래봐야겠다."아침에 좋은 조언으로 받았던 이 말은, 한밤중에 엄청난 화를 불러왔다. 새벽 두 시고, 네 시고, 대중없이 깨서 젖 달라 우는 아이를 안고 또 가부좌를 틀고 무릎 마비 상태로 있는데, 갑자기 오늘 아침 남편의 이 말이 생각난 것이다.
'뭐 30분? 나는 지금 한밤중에도 두 시간에 한 번씩 일어나는데, 아이에게 한 시간 젖 주고 30분 또 안고 있으면 나더러 지금 아예 자지 말라는 거야? 안 되겠다. 의중을 확실히 알아야겠어. 지금 당장 깨워 물어봐야겠어.'미친 호르몬은 특히 한밤중에 발동했다. 아무리 아이의 등을 쓸고 두드려도 나오지 않는 이 죽일놈의 트림은 결국 '내가 이러려고 (아이를 위해 생략) ...' 하는 자괴감마저 들게 했다. 세수도 못하고 윗도리는 대체 언제 입었나 기억도 안 나는데, 나는 이렇게 일상이 와르르 무너졌는데, 남편은 피곤해 보여도 그 일상이 너무나 견고한 것이다. 회사를 가고, 담배를 피고, 뉴스도 보고... 나는 그런 모습이 너무나 부럽고 화가 났다. 또 머리로는 안 그래야지 해놓곤 이미 눈엔 눈물이 차올라 자고 있는 남편을 깨웠다.
"나는 요즘 화장실도 제때 못 가고, 잠도 못 자는데, 엉엉, 왜 자기는 담배 피울 시간도 있고, 똥 마려우면 바로 화장실도 가는 거야? 자기 지난 주 일요일에 때목욕하러 사우나 갔지? 엉엉엉."사실 연애 시절부터 지금까지 우리는 싸워본 적이 없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까진 싸울 일이 없었고, 아이가 태어나고나선 이런 나의 말에도 남편이 짜증을 내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남편은 작게 한숨을 쉬고선 아이를 안고 나를 달랬다. 그렇게 전쟁 같은 밤을 보내고 잠깐이라도 잠들었다 일어나면, 남편에게 미안했다. 82년생 김지영도 너무나 힘들듯, 대부분의 우리네 남편들도 참 안쓰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