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트가 우리에게서 빼앗은 것들대담
김지하
- 이번에는 깊이 있는 얘기를 나눠볼까 합니다. 선생님은 우리나라 유일의 펠릭스 가타리(Felix Guattari) 전공자잖아요. 왜 마트라는 일상에 관심을 갖게 되었나요? 마트를 살펴보면서 철학적 관심사는 무엇이었습니까?"고백하자면, 저도 마트를 이용하고 사랑하는 사람 가운데 하나였어요. 마트라는 화두를 제게 던진 사람은 출판사 편집자였습니다. 편집자가 마트에 대한 책이 없으니까 저보고 조사해 보라는 거예요. 조사해 보면 쓸 수 있을 거라면서요.(사람들 웃음) 이렇게 무작정 시작하게 되었죠.
어쨌거나 연구를 하면서 저는 펠릭스 가타리의 '통합된 세계 자본주의'라는 개념을 마트에 접목하게 되었습니다. 통합된 세계 자본주의는 '외부 소멸'의 상황으로 드러납니다. 즉 탐험하고 모험하고 약탈하고 식민지로 만들고 이랬던 외부가 통합되면서 사라진 거예요. 안토니오 네그리(Antonio Negri)는 이것을 '제국'이라고 말하죠.
외부가 소멸된 세상의 특징은 창작의 동력이 뚝 떨어져 버리는 거예요. 즉 저성장 사회가 외부가 소멸된 사회의 특징입니다. 그래서 이제 자본은 내부로 눈을 돌립니다. 특히 공동체와 골목으로 눈을 돌립니다. 예전에는 다른 나라에 진출했던 대기업이 이제는 골목 상권에 진출해요. 이런 내적 착취의 상황이 전면화됩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우리가 공동체 전략을 혁신해야 해요. '지역 순환 경제' 또는 '내포적 발전 전략'을 추구할 필요가 있어요. 자본이 공동체를 착취하는 방향성이 있다면, 공동체가 자본을 형성하고 자본을 착취하는 새로운 국면도 등장하게 됩니다. 이것을 '사회적 경제'라고 부를 수 있겠죠.
골목 상권에서는 목욕탕 주인이 미장원에서 천 원을 쓰고, 미장원 주인이 동네 슈퍼에서 천 원 쓰고, 동네 슈퍼 주인이 철물점에서 천 원 쓰고, 철물점 주인이 목욕탕에서 천 원 쓰고... 이렇게 천 원이 계속 돌면서 시너지 효과가 반복해서 일어나죠. 모두에게 이익을 가져다주며 지역 경제가 활성화됩니다.
그러나 마트에서 천 원을 쓰면 그냥 밖으로 나가버려 그것으로 끝입니다. 지역 사회와는 무관한 거래로, 거대 자본만 배를 불릴 뿐이죠. 가타리는 지역 순환 경제에서 거래를 활성화시키면서 공동체가 자본을 형성할 수 있는 계기를 확장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알려줍니다. 제가 이 책에서 가타리를 언급한 이유죠."
도시 생태계는 다양성과 차이를 품고 있어야 풍요로워진다- 이렇게 들어 보니, 책 내용의 전모를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되네요. 오늘 이 자리에서 어려운 철학 담론을 많이 얘기하지는 않으려고 하지만, '이질 생성'이 무엇인지 알면 우리가 지금보다 더 풍성한 삶을 상상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그래서 살펴보려고 해요. 이 책에서는 도시라는 장소가 원래 '다양성'과 '차이'를 품고 있는 곳이었고, 그로 인해 '이질 생성'이 이루어지는 곳이었다고 말해요. 선생님, 펠릭스 가타리가 말한 '이질 생성'이 무엇인가요?"이질 생성은 다양성과 차이가 생태계를 조성했을 때 특이성을 만들어 내는 것을 말합니다. 다양성 생산, 차이 생산, 특이성 생산이라고도 부를 수 있죠. 도시에서는 시설물, 가게, 관공서, 금융 등이 밀집되면서 생태계를 이루고 시너지를 발휘합니다. 서로 다른 것들이 섞이면서 특이한 것들이 이루어지며 각기 다른 개성이 발휘되죠. 그래서 도시를 인류의 집합적 발명품의 대표적인 예로 얘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렇게 도시는 그 안에 다양성을 품고 있었는데, 통합된 세계 자본주의가 되어가면서 도시가 다 똑같이 닮아갑니다. 같은 환경과 생활양식이 이루어지는 '동질 생산'의 모습이 나타납니다. 마트, 백화점, 레스토랑, 모텔, 편의점... 어디를 가나 비슷해요. 자본주의가 강력한 힘으로 도시라는 생태계를 획일화한 것이죠. 도시마다 있던 다양한 개성과 차이가 이제는 동질 생산으로 획일화되는 상황이 되었죠.
이것이 큰 문제인 이유는 도시 생태계의 장점이었던 탄력성과 다양성을 훼손시키면서 문명 자체의 지속 가능성을 흔들어 버리기 때문입니다. 도시에서 이질 생성이 이루어질 때, 자본주의의 획일화를 넘어서 활력 있는 장소가 되며 그 안에 사는 우리도 소모적인 건전지가 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 도시가 다양성과 차이를 품는 것이 왜 중요한지, 그리고 획일화에 맞서 도시 생태계를 복원하는 것이 왜 중요한지 알 수 있겠네요. 실제로 거대 자본이 삶의 양식을 아파트와 마트로 획일화한 곳은 다양성이 사라지고 무기력해서 재미가 없거든요. 그럼, 도시 생태계의 다양성을 다시 찾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앞서 차를 끌고 마트에 가기보다, 걸어서 동네 골목 가게를 이용하는 것이 좋다는 얘기가 있었죠. 그것 외에 또 무엇이 있을까요? 생활협동조합(아래 생협)도 대안으로 곧잘 얘기되죠. 선생님, 생협이 대안이 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생협은 윤리적 소비를 실현하고 안전한 먹거리를 확보하고자 하죠. 우리나라에서 2000년대 초반에 폭발적으로 성장했고요. 아이들에게 어떤 것을 줘야 하는지 가늠이 안 될 정도로 불확실한 현실이잖아요. 그래서 생협은 안전한 먹거리를 확보하고 착한 소비라는 새로운 소비를 하고자 한 여성들의 결사로 시작되었죠. 한살림이 그런 경우였죠.
그리고 이것은 농민을 살리고 농업을 살리는 측면도 있죠. 노동자들도 연대를 하여 아이쿱을 만들었고요. 한편 두레는 공동체를 살리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지요. 이렇게 세 곳이 크게 성장했죠. 결국, 생협은 생산자 측면에서 농민을 살리고 소비자 측면에서 착한 소비를 하는 새로운 소비 형태를 만들어냈다는 데 의미가 크다고 봅니다.
전에는 꽤 사는 사람들이 유기농 농산물을 구매한다고 했는데, 이제는 가격 경쟁력까지 갖추고 있습니다. 그러니 안전한 먹거리를 잘사는 사람들이 구매한다고, 지금은 그렇게 얘기할 수 없죠. 동물 복지 축산을 하는 한살림의 경우 축산물이 공장식 축산물보다 싼 경우까지 생기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