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 문제도 인권위는 '뒷북'

[주장] 비정규직 문제 해결에 정부보다 소극적인 인권위 '유감'

등록 2017.08.30 16:59수정 2017.08.30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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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중앙행정기관 기간제 노동자간의 임금 격차에 대한 기사를 본 적이 있다. 기사의 주된 내용은 이러했다. 2016년을 기준으로 임금 수준이 가장 높은 기관과 가장 낮은 기관의 격차가 103만원에 달하며, 복지포인트 및 상여금을 합산할 경우 이러한 격차는 더욱 커진다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일괄적으로 '정규직 전환' 절차를 추진하고 있어, 자칫 청년층의 공공부문 선호 현상을 더욱 부추길 수 있다는 주장이었다.

기사의 내용 중 나를 '씁쓸'하게 만든 것은 다음과 같은 부분이었다.

"...국가인권위원회 기간제는 상여금이 아예 없었고, 조달청 통계청 등은 연간 40만~45만원 수준의 상여금을 받았다."

숫자로 설명되는 기관들과 달리 '아예 없었고'라는 표현을 받은 기관의 이름이. 그렇다. '국가인권위원회'. 물론 인권위가 비정규직 관련 사항에 대하여 '이중잣대'를 들이밀어온 것이 마냥 놀라운 것은 아니다. 몇 년 전만 해도 인권위는 여성인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모성 보호 시간, 육아휴직 등을 보장하지 않았고, 상담을 주 업무로 하는 비정규직 노동자에게는 작업중지권을 보장하지 않는 기관이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앞서 열거한 내용을 보장받고 있지만 이는 결코 인권위의 시혜나 동정 덕분이 아니다. 당사자의 노동조합 결성과 단체협약에 따른 투쟁의 결과물일 뿐이다.

 '공공운수노조 서경지부 국가인권위분회'가 작성한 '국가인권위 임금차별 사례로 본 무기계약직의 문제점(2017)'
'공공운수노조 서경지부 국가인권위분회'가 작성한 '국가인권위 임금차별 사례로 본 무기계약직의 문제점(2017)'장주성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권위 내부의 '비정규직 차별'은 아직도 견고한 모양이다. 인권위 기간제·무기계약직 노동자로 구성된 '공공운수노조 서경지부 국가인권위분회'가 작성한 '국가인권위 임금차별 사례로 본 무기계약직의 문제점(2017)'에 따르면, 인권위는 특수업무수당을 고용 형태에 따라 차별적으로 지급하고 있으며(정규직 5만원, 무기계약직 2만 8천원), 상담센터 정규직 노동자에게 지급되는 18만원의 조사수당과 같은 경우 비정규직 노동자에게는 일체 지급하지 않고 있다.

또한 정규직 노동자가 기본급 120%에 해당하는 금액을 상여금으로 받을 때(연 기준), 비정규직 노동자는 기본급 115%에 해당하는 금액을 상여금으로 받고 있으며, 1년 미만의 기간제 노동자의 상여금은 알려진 바와 같이 '0원'이다.


뿐만 아니라 가족수당, 자녀학비보조수당, 정근수당 등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단 한 푼도 지급되지 않고 있다. 올해 5월 인권위가 "동일한 업무를 수행하는 무기계약직 근로자에게 특수업무수당과 정애급식비 등을 지급하지 않은 것은 차별"이라며 해당 기관에 시정을 권고한 것에 비추어볼 때, 현재 인권위가 내부의 비정규직 노동자를 대하는 모습은 '부끄럽다'는 말로 밖에는 형용할 수 없을 것이다.

'쪼개기 근로계약'에 대한 인권위의 입장을 묻는 질문에 당시 운영지원과 담당자가 "권고와 내부 현실은 다르다. 기획재정부와 행정자치부 등 관계부처의 영향 아래 놓인 위원회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라고 답한 것이 기억난다. 순간 인권위가 아닌 '피진정기관'의 입장을 듣는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물론 인권위의 항변이 무조건 틀렸다고는 할 수 없다.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인권위의 주장은 '위법'이 아니다. 그러나 인권위가 사법기구던가. 법을 기준으로 옳고 그름의 여부를 판단하자면 인권위의 구제 대상이 되는 사람 중 절반 이상은 한 마디도 꺼내놓지 못할 것이다.

잘못된 법으로 인해 노동조합조차 결성 못하고, 부당하게 해고당하고, 내쫓기고, 차별당하고, 희롱당한 자들에게 합/불법을 논하는 것은 인권위가 취해야 할 자세가 아니다. 문제는 차별이고, 인권기구로서 인권위가 취해야 할 자세는 그 무엇도 아닌 '평등'이다.

'연 5%', '월 2만 2천원'의 차이. 누군가는 이것이 작다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인권위가 지속적으로 시정을 권고해야 하는 대상은 바로 이처럼 일상 속에 내재된 차별이다. 지난 9년간 인권위가 '뒷북치는 인권위'라는 오명을 쓰게 된 이유는 이러한 내재된 차별을 제대로, 선제적으로 건드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내부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처한 차별은 단지 '비정규직이라서'라는 점을 인권위는 분명히 알고 이를 시정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해야만 한다. 시민들로부터 인권위가 인권위에 '차별 진정'을 당하고 싶지 않다면 말이다.
#인권위 #비정규직 #차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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