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톱 긁는 용도이자 침대로 쓰기도 하는 고양이 스크래처. 택배 열자마자 뛰어가 올라간 걸 보니, 마음에 든 모양이다.
박은지
월급이 사라지는 마술, 고양이가 이렇게 위험합니다 결혼하면 자신을 위한 쇼핑을 덜 하게 된다더니, 정말 그랬다. 다만 의지로 그렇게 되는 건 아니고, 상황이 그랬다. 데이트 비용이 덜 나가는데도 두 사람이 살아가는 데 월세, 관리비, 보험료, 휴대전화 요금, 교통비까지 숨만 쉬어도 내야 하는 돈이 얼마나 많은지... 월급은 정말 통장을 스쳐 가는 게 맞았다.
그 탓에 결혼 전처럼 한 달에 20~30만 원씩 옷이나 화장품을 사는 데 돈을 쓸 엄두가 안 났다. 또 남편과 집에서 매일 보다 보니 매번 새 옷을 사거나 꾸미려는 노력 자체가 줄어들기도 했다. 새 옷을 사도 '짠' 하고 입고 나가 보여주는 게 아니라, 잠옷부터 갈아입는 모습을 라이브로 중계하는 셈이니 별로 신이 안 났다.
다행히(?) 꾸미는 데 관심이 많은 편은 아니라서 옷 쇼핑을 포기하는 게 그리 괴롭지는 않았지만, 옷 말고도 사야 하는 건 많았다. 결혼식부터 내 집 마련까지는 얼마나 긴 나날이 놓여 있는 걸까? 안정적인 주거지 마련이라는 최소한의 삶을 조건을 충족하기까지 얼마간의 인내가 필요하리라는 걸 우리는 조금씩 깨닫고 있었다. 마트의 3120원짜리 우유와 2950원짜리 우유 사이에서 고민하는 날들이 내게도 찾아왔다.
하지만, 결혼과 거의 동시에 키우게 된 두 마리 고양이들에게는 내 신혼살림 사정까지 이해해달라고 요구할 수가 없었다. 이번 달 생활비 다 썼는데, 내일 월급 들어오니까 하루만 굶자, 그렇게 설명해봤자 고양이는 밥이 없으면 간식이라도 달라며 끊임없이 야옹거릴 뿐이다. 차라리 사람이 굶고 말지.
한정된 수익 안에서 포기할 건 포기하고, 선택할 건 선택해야 했다. 그 안에서 고양이는 늘 우리 소비의 우선순위에 있었다. 내 것은 안 사더라도, 고양이에게 필요한 건 왠지 눈에 더 잘 들어오는 터라 미룰 수가 없었다. 게다가 내가 먹여 살리겠다고 데려왔으니, 최소한의 케어를 제공하는 것은 보호자로서의 의무가 아니겠는가. 문제는….
내 자식에게 최소한의 것이 아니라 이왕이면 좋은 것, 예쁜 것을 해주고 싶은 엄마의 마음이 바로 이런 것일까? 캣폴, 스크래처, 원목 식탁, 캣 터널(고양이가 들락거리면서 놀 수 있는 일종의 장난감), 해먹(고양이가 올라가 쉬거나 자는 용도) 등을 사들이기 시작하자 신랑은 우리 집이 신혼집인지 고양이 집인지 모르겠다며 혀를 내둘렀다.
추울 땐 포근한 방석이 필요하고 더울 땐 몸을 식힐 수 있는 쿨매트가 필요했다. 산책하지 않는 고양이들의 놀이 활동을 위한 장난감은 저렴한 건 개당 2000, 3000원밖에 하지 않지만 대신 빠르면 하루 만에도 망가졌다. 좀 비싸도 튼튼한 것을 쓰는 게 나았고, 좀 비싸도 좁은 집안에서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는 요소를 늘려주고 싶었다. 월세 집이라 벽에 (못 박아 설치해야 하는) 고양이용 구름다리를 달아주지 못하는 게 안타까울 따름이었다.
물론 고양이에게는 비닐봉투 하나, 고무줄 하나도 좋은 장난감이다. 굳이 예쁜 가구, 인기 좋은 장난감을 사고 싶은 건 집사의 욕심인 것도 사실이다. 아무리 이러니저러니 해도 고양이 집이나 화장실이 40만 원씩 하는 걸 보면 평범한 서민으로서 당황스럽다. 하지만 그 비싼 고양이 집에 들어가 귀여운 귀를 쫑긋거릴 모습을 상상하면 본전 생각이 싹 가시면서 나도 모르게 할부 개월을 계산하고 있는 것이다. 고양이가 이렇게 위험한 동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