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의 적은 여자? 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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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사장님에게 흥미로운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하나. 며칠 전 사장님의 친언니가 아는 지인 남성분들이 가게를 찾아오셨다. 지인의 동생이 운영하는 곳이라 그랬는지 수입 맥주와 비싼 안주를 시켜 먹던 그들. 잠시 후 그 일행분 중 한 분의 아내가 오셨고 이런저런 이야길 나누다 기분 좋게 돌아가셨다.
그런데 어제 사장님 왈,
"있잖아. 저번에 오셨던 OO분. 기억나? 그분 와이프가 그 가게 사장도 젊고, 알바도 젊은데... 왜 그 가게를 갑자기 가냐며 그분에게 따지셨대. 그래서 아는 분 동생이 하는 곳이라고 핑계 아닌 핑계를 댔다나." 둘. 사장님이 알려준 노하우가 있다. 여성, 남성분이 함께 온 테이블에 서빙할 때는 되도록이면 여성분과 눈을 맞추며 서빙할 것! 괜히 남성에게 친절한 태도를 보이면 함께 오신 여성 분이 기분 나빠하실 수 있다는 거였다. 그 노하우라는 것도 사장님이 가게를 운영하기 전 일했던 서울의 유명 맛집 매니저가 했던 서비스 교육 중 하나였다고 한다.
"그 가게를 왜 가냐"고 따졌다던 아내분과 유명 맛집에서 알려주는 서빙 노하우에서 발견되는 공통점이 있다. '평화로운 가정을 파괴할 것 같은' 여성에 대한 두려움, 그 실체없는 두려움이다. 이 이야길 들으며 여성단체로 이직할 때 나의 경험도 함께 떠올랐다.
당시 활동하던 당이 헌법재판소를 통해 해산 결정이 났다. 나는 갑자기 실업자 신세가 됐다. 약간의 막막함과 앞으로의 삶에 대한 두려움을 갖고 있던 때, 아는 언니로부터 우리 지역 여성단체에서 활동가를 구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대학 시절부터 여성주의는 내 토대였고, 여성주의에 대해 더 알고 싶다는 목마름이 있던 터라 그 소식이 무척 반가웠다. 다시 여성운동을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마음이 부풀어 올랐다. 그런데 기대와 부푼 나와는 달리 나를 걱정하는 이들이 있었다. 그들은 비아냥거리는 게 아니라 진심으로 나를 걱정하는 마음이었다.
"네가 여성들만 모여 있는 곳에서 적응할 수 있겠어? 힘들지 않겠어?"대놓고 말하진 않았지만, 그 말에 감춰진 의도를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여성들이 모인 곳엔 질투와 경쟁이 난무할 거라는 상상. 그래서 그들은 그렇게 간곡한 목소리로 이야기했겠지. "미리내, 너를 걱정한다"고.
'여적여' 프레임을 반박해준 나의 '그녀들'어렸을 때부터 줄기차게 '여성의 적은 여성'이라는 말을 들었다. 여/남 사이의 신뢰 관계가 깨진 상황에서도 여성은 남성을 탓할 게 아니라, 다른 여성을 탓해야 한다고 배웠다. 직장 안의 '파릇파릇한' 여성 직원은 나이 많고 결혼 안 한 '히스테릭한 노처녀'를 위협하는 존재로 그려진다. 그래서 그녀들은 끊임없이 서로를 질투하고 구박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겨왔다.
그렇다면 이 견고한 전제는 정말 여성들의 경험이 축적되고 축적되어 만들어진 것일까?2016년 7월, <뉴욕타임스>에 흥미로운 기고문이 하나 올라온다.
페이스북 최고경영자인 셰릴 센드버그와 펜실베니아대 와튼 스쿨의 애덤 그랜트 교수가 공동으로 기고한 이 글은 '여성은 다른 여성의 조력자가 되지 않는다'라는 지긋지긋한 명제를 시원하게 반박하는 내용이다. 저자들은 노르웨이의 크로스컨트리 스키 선수인 테레세 요헤우(28)와 마리트 비에르옌(36)의 사례를 기고문 초반에 소개하고 있다.
세계 최고의 여성 크로스컨트리 스키 선수인 두 사람은 경쟁자이자 친구다. 비에르옌이 최정상에 있을 때 혜성처럼 나타난 요헤우는 위협적인 존재였지만, 비에르옌은 8살 어린 요헤우를 지지해주고,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요헤우는 "(비에르옌이) 믿기 힘들만큼 커다란 신뢰를 줬기 때문에 현재의 내가 될 수 있었다"고 설명했고, 지난해 비에르옌이 임신했다고 발표했을 때는 이모가 될 준비를 하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어떤가. 흔히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아온 내용과는 너무나 다르지 않은가. 10여 년간 정상을 차지했던 여성과 그녀를 위협하며 등장한 젊고 매력적인 여성. 정상에 있던 여성이 질투에 눈이 멀어 어떻게든 후배를 밀어내기 위해 온갖 악행을 저지르는 게 우리가 흔히 상상하는 시나리오 아닌가. 하지만 현실에서 그녀들은 신뢰에 기반한 우정을 나누고 서로를 감싸 안는다.
이 기고문에서는 연구(스탠더드앤드푸어스의 1500개 기업을 20년간 연구한 결과)와 통계를 바탕으로 여성이 고위직으로 올라가는 데 있어 그 승진을 가로막는 것은 먼저 승진한 여성이 아니라 남성 최고 지위자라고 설명한다. 또 남성이 기업의 최고 지위자일 때보다 여성이 기업의 최고 지위자일 때 여성이 관리직이 될 가능성이 더 컸다고 분석한다. 뿐만 아니라 직장에서 동일한 갈등이 발생했을 때 남성들끼리의 논쟁은 건강한 토론으로, 여성들끼리의 논쟁은 '여자들끼리의 싸움(catfight)'으로 치부했다는 실험 결과도 이야기한다.
흔히 다른 여성 후배나 동료를 배제하고 소위 '명예 남성'으로 군림하는 여성을 '여왕벌'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이 기고문은 남성 지배적인 구조 안에서 유일한 여성인 그 '여왕벌'은 어쩌면 불평등의 '이유'가 아니라 불평등의 '결과'일 수 있다고 지적한다.
물론 다른 사람을 짓밟지 않고서는 자신의 자리를 확보할 수 없는 무한 경쟁의 시대에서 여성들도 자유로울 수는 없다. 그 안에서 여성들 또한 질투하고 경쟁하고 갈등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우리는 같은 행동을 하더라도 남성보다 여성에게 더 가혹한 잣대를 들이미는 듯하다. 그들이 '여성'이라서 그런 것이라고 '퉁'치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는 소리다.
나는 노르웨이 크로스컨트리 스키 선수인 테레세 요헤우와 마리트 비에르옌의 이야기를 흐뭇하게 보며 내가 만나고 있는 수많은 '그녀'들을 떠올렸다.
매번 가게를 찾아올 때마다 "참 친절하고 예뻐서 올 때마다 기분이 좋아요"라며 기분 좋은 칭찬을 아끼지 않는 그녀와 종종거리며 서빙하는 나를 위해 "잠깐만 쉬었다 가라"며 자신의 옆자리를 양보해주던 그녀. "안녕히 가세요" 인사하고 테이블로 가보면, 내가 쉽게 정리할 수 있도록 그릇을 모아둔 이름 모를 '그녀들'.
그리고, 몸이 아파 활동하는 단체에서 일찍 퇴근하고 곧바로 아르바이트를 갔을 때, 일하고 있는 가게에 찾아와 '괜찮은지 얼굴이라도 보러 왔다'고 말하며 우는 나의 고마운 동료, 그녀들... 내가 살아가는 데 있어 가장 큰 힘이 되고, 든든한 뒷배경이 되어주는 나의 그녀들 말이다.
여성의 적은 여성이라고? 에라이, 콩 볶아먹을 소리! '여적여' 프레임은 여성의 연대를 가로막고, 끊임없이 경쟁을 부추기는 통념이다. '여적여'를 유지시키려는 건 여자들이 아니다. 남성 지배적인 구조와 가부장제를 천년만년 이어가려는 바로 '너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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