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들은 자꾸 같은 질문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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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이 자꾸 받는 질문'은 그 나름대로 변천사가 있었다.
"왜 화장 안 했어?"(feat. "웬일로 화장을 다 했어?")"치마가 왜 이렇게 짧아?""결혼은 언제 할 거야?""남편 밥은 챙겨주고 나왔어?""여자가 그렇게 드세서 어쩌려고 그래?""남자들은 그런 여자 싫어하는 거 몰라?"
가부장제의 역사와 함께하며 자랑스럽게 여성혐오를 전시하는 이 문장들은 2010년대 중반을 기점으로 '끝판왕'을 만나고야 말았다. 혐오를 담은 무수한 질문들이 하나로 뭉쳐져 더 강력해진 동시에 순식간에 듣는 이의 기운을 모두 앗아갈 정도의 위력을 발휘하는 그 질문 말이다.
이제는 현대의 고전이 되어버린 "너 메갈이야?"라는 질문만큼 나를, 페미니스트를 납작하게 규정하는 말이 있을까. 내 주변에는 사람이 거의 없기 때문에 이 엄청난 질문을 받을 날이 영영 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명성에 걸맞지 않게, 아니 오히려 그 명성만큼이나 노련하게 끝판왕 질문은 매우 일상적인 상황에서 내 앞에 나타났다. 2년 전 추운 겨울, 오랜 친구와 만나 저녁식사를 하고 카페로 이동했다. 가족 얘기, 애인 얘기, 학교 얘기, 회사 얘기... 급습이었다. 친구가 평소 페미니즘에 관심이 없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정말이지 저 질문을 할 것이라고는 단 한 번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날의 대화가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메갈리아'와 관련된 그 어떤 키워드도 등장하지 않았던 것은 확실하다. 흐릿한 기억을 더듬어 보자면, 아마도 친구는 당시 논쟁의 중심에 있던 한 사회 현상에 대한 나의 태도를 보고 '아, 얘 메갈인가?'란 짐작에 당도했던 것 같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 내용은 전혀 '여성혐오' 혹은 '메갈리아'와 상관이 없는 문제였다. 오히려 친구는 그러한 내용과 관련 없(어 보이)는 화제에 '뜬금없이' 여성주의적 관점을 들이댄 나를 보고 그 질문을 떠올렸을 수도 있겠다. 예상치 못한 질문에 당황한 나를 향해 친구는 2차 공격을 감행했다.
"그럼 너도 페미니스트인지 뭔지 그거야?"나는 당연히 그렇다고 대답했지만 순식간에 '페미니스트'도 아닌, '페미니스트인지 뭔지 그것'이 되어버렸다. 심지어 해당 질문의 끝에는 성격을 알 수 없는 작은 웃음소리도 딸려왔다. 당시에는 그 웃음의 의미가 나에 대한 조롱이 아닐 것이라고 애써 정당화했지만, 그것은 페미니즘을 비웃는 것이었고 곧 나를 향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바닥이 마구 울렁거렸다.
여자들은 자꾸 같은 질문, 아니 협박을 당한다. "남자들은 그런 여자 싫어하는 거 몰라?"는 질문이 아니다. "네가 그렇게 행동하면 남자들이 싫어할 거야. 그렇게 되고 싶지 않으면 당장 그만둬!"라는 협박이다. "너 메갈이야?"도 마찬가지다. 여기에서 그렇다고 대답하는 순간 사회는 나에게 어마어마한 낙인을 찍는다. 다른 그 무엇도 필요하지 않다.
'메갈'이라는 두 글자에는 마치 종합선물세트처럼 모든 혐오가 포함되어 있다. 학교에서 '메갈'로 '찍히면' 나대는 여자애가 되고 회사에서는 불편한 여직원이 된다. 여성혐오 혹은 페미니즘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이라면 '남자를 혐오한대'라고 수군대며 나를 무서운 혹은 수상한 여자로 생각하여 기피할 것이고 평소 여성혐오를 열심히 실천하는 사람이라면 '메갈'로 끝나지 않고 뒤에 '년'을 붙여줄 것이다.
그렇다. 인류의 역사와 그 궤를 함께해 온 수많은 여성혐오적 질문들을 '질문'이라고 불러주는 것은 너무나도 관대한 제스처이다. 우리는 이것을 다시 정의해야 한다. 질문이 아니라 협박이다. 메갈처럼, 페미니스트처럼, 너처럼 굴면 남성 중심의 사회에 절대 발붙일 수 없을 것이라는 협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