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가 얼마나 예쁘면" 이 순간, 당신은 가해자다

'한샘 사건'을 둘러싼 말말말... 네 가지 댓글 유형으로 짚어보는 문제점

등록 2017.11.20 13:54수정 2017.11.20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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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일 오전 서울 서초구 한샘 본사 주변이 적막한 모습이다.
5일 오전 서울 서초구 한샘 본사 주변이 적막한 모습이다. 연합뉴스

이른바 '한샘 사건'이라 불리는 연쇄적인 직장 내 성폭력 사건이 '성폭력'에 대한 논쟁에 불을 붙였다. 사건이 폭로된 것은 지난 10월 말이었으나, 사건을 둘러싼 논쟁은 현재진행형이다. 19일 오후 4시 경 발행된 <뉴시스> 기사 '한샘 피해 여성은 왜 성폭행 이후 'ㅎㅎ' 카톡을 보냈나'(링크)는 포털 사이트 '다음'에서 3000개가 넘는 댓글이 달렸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건, 이러한 논쟁이 한국 사회에서 하루이틀 진행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쯤 되면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가 없다. 왜 피해자와 가해자의 이름만 바뀐 듯한 성폭력 사건들이 자꾸 발생하고, 비슷한 반응이 일어날까?

한 가지는 확실히 짚어 두고 가자. 모든 성폭력 사건의 세세한 진상을 밝히는 일은 제3자들의 몫이 아니다. 제3자가 목격하기 어려운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성폭력은 그만큼 진상을 파악하기 어렵다. 사건의 진상을 조사하는 것은 피·가해자 소속집단 내의 조사위원회, 피고소인과 고소인의 변호사, 검찰이 할 일이다. 대신, 제3자가 주목해야 하는 부분은 다른 데에 있다. 이 기사 밑에 달린 네 가지 댓글 유형을 통해 문제를 짚어보자.

[하나] "이상하다. 강간당한 여자가 보낼 메시지는 아닌 것 같다"

가장 전형적인 반응이다. 현재 뉴시스 기사('한샘 피해 여성은 왜 성폭행 이후 'ㅎㅎ' 카톡을 보냈나', 19일 16:03 발행)의 포털 '다음' 베스트 댓글이다. '공감' 버튼이 6520개 눌렸다(20일 자정 기준).

우리 사회는 '강간 피해자'가 어떤 존재라고 생각할까?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명예교수인 조한혜정의 제자 나윤경은 조 교수의 정년 기념 문집에서 1980년대에 조 교수가 "성폭행 당했다고 울고불고할 거 뭐 있나. 미친개에게 물렸다고 생각하면 되지. 통념의 노예가 되지 않아야 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고 밝혔다. 여기엔 많은 가정이 생략돼 있다. 피해자가 이렇게 할 수 있으려면, 모두가 성폭력 피해자를 추가적으로 괴롭게 하는 그 '통념'에 맞서 싸워야 한다.

통념적이고 전형적인 '강간' 피해자란 무엇일까? '강간당한 것은 곧 순결을 잃는 것', '연애와 혼인 시장에서 가치가 떨어진 여자가 되는 것'이라는 시대착오적인 통념이 완전히 없어진 사회라면 강간 피해자는 지금만큼 고통스러워 할까? 그리고, 그런 '전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만이 '진짜' 강간 피해자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로 가득 찬 사회는, 피해자에게 어떤 영향을 줄까?


지갑을 도둑맞은 절도 범죄의 피해자는 피해 사실로 인해 기분이 나쁠지언정 다른 일로 괴로워할 필요가 없다. 즉, 강간을 비롯한 성폭력 피해자들을 더욱 괴롭게 만드는 건 강간 당한 여자를 보는 시선이다. 피해자가 주눅 들고, 슬프고, 끔찍하게 괴로운 상태에 휩싸여야만 피해를 봤다고 인정해 주는 분위기가 문제다. "강간당한 여자라면 저렇게 행동하지 않을 텐데" 같은 말을 보태는 제3자들이 바로 피해를 더 많이, 더 크게 만들어낸다.

[둘] "소수의 미친놈들이니 신경 쓰지 마세요"


성폭력은 '소수의 미친놈'들이 저지르는 일이라고 생각할 때, 두 가지 문제가 생겨난다. 첫 번째, 전형적인 강간 이미지를 벗어난 성폭력에 대한 논의가 사라진다. 두 번째, 전형적인 강간 이미지를 벗어난 성폭력을 당하고 나서, 그것이 성폭력인지를 바로 인지하지 못하게 된다.

"성폭력은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모든 행위"라는 것이 현재 대부분 대학과 기업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반성폭력 교육의 뼈대이고 중론이다. 그런데도 성폭력 피해는 다양하게 조망되지 않고 있다.

사람들의 생각에 큰 영향을 주는 언론, 방송, 출판물 등은 가장 자극적으로 소비될 만한 성폭력 피해를 집중적으로 다루고, '인생이 망가져버린' 여성의 이미지를 적극적으로 퍼트린다. 미디어는 가해자의 이름이 아니라 피해자의 이름으로 성폭력 사건을 명명한다. 사건의 세부사항과 피해자 연령, 직업 같은 정보를 상세히 나열한다. 이런 관점에 익숙해진 '보통 사람들'은 가장 끔찍한 수준의 강간 사건과 피해자의 이미지가 곧 '성폭력'과 '성폭력 피해자'라고 여기게 된다.

'소수의 미친놈'만 성폭력을 저지르는 게 아니라는 것을, 더 다양한 범위의 성폭력도 성폭력임을 확실히 알게 되는 것은 피해자들에게도 좋은 일이다. 실제로 성폭력 피해는 대부분 아는 사람에 의해 일어난다. 직장상사, 동료, 거래처, 친/의부, 형제/자매, 친인척, 선/후배, 데이트 상대, 이웃, 교/강사 등 '아는 사람'이 성폭력을 저지르는 비율이 90%를 넘어간다(2013년 민우회 성폭력상담소). 이러한 사실은 더 잘 알려져야 한다. 그래야 피해 상황에서 내적 갈등이 줄어들고, 더욱 빠르고 단호한 대처가 가능해진다.

 한샘 성폭력 의혹 사건을 전하며 추행 장면을 재연하여 보여준 채널A(11/5)
한샘 성폭력 의혹 사건을 전하며 추행 장면을 재연하여 보여준 채널A(11/5) 민주언론시민연합

[셋] "피해자가 얼마나 예쁘길래 남자 3명이나 저랬냐"

실제로 이번 사건 피해자라는 정보와 함께 여러 사진이 남성들의 카톡방을 떠돌아다녔다. 피해자에 대한 불필요한 정보를 나열해 여론의 관심을 얻는 미디어 재현 방식이 만들어 낸 문제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게 바로 성폭력 피해자들이 겪지 않아도 될 추가적인 괴로움을 겪는 이유이기도 하다.

절도 범죄 피해자를 두고 "얼마나 돈 많게 생겼으면 지갑을 도둑맞았을까?" 같은 얘기가 나온다고 상상해 보자. 사람들이 "그러게 '부티' 나게 생기면 고생이지" 같은 소리를 한다고 상상해 보자. 피해자는 지갑을 도둑맞은 것 이상의 괴로움을 느낄 것이다.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인데, 왜 성폭력 피해자들은 이런 2차 피해를 당해야 할까. 

보다 근본적인 질문을 해 보자. 왜 우리는 뉴스를 통해 다른 시민에게 범죄가 발생한 사실을 알아야 할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그런 사건이 반복적으로 발생된다면 시민 누구나 같은 위험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일을 막기 위해서 사건이 발생하도록 하는 근본적인 구조를 점검하고, 사회적 차원에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보도를 하는 것이다.

또, 범죄를 당한 동료 시민이 피해를 회복하는 과정에서 부당한 일을 겪지 않는지 확인하고, 피해를 회복시키는 시스템이 작동하고 있는지 등을 체크하기 위함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대부분의 성범죄 관련 뉴스들은 그런 방향으로 소비되지 않았다.

단지 '가십거리'로 피해를 소비하라고 뉴스를 만드는가? 그렇다면 뉴스의 존재 가치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일이다. 성폭력 피해자의 '외모'는 완전히 필요 없는 정보다. 그런 걸 궁금해 하는 순간, 당신은 추가 피해가 일어나게 만드는 구조에 동참하는 것이다.

[넷] "여자랑 섹스도 못하겠다, 각서 쓰고 해야겠다"

다른 각도의 질문을 던지고 싶다. 우리의 '연애 문화', 이대로 괜찮을까? 연애할 때 주어지는 전형적인 역할에 대해 생각해 보면, 여기에 가장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여성이 '연애 시장'에서 '팔리는 상품'이 되려면, '여성스러운' 성격을 갖춰야 한다. 강하게 자기주장을 하지 않는 것이다. 좋아도 좋다고 말하지 않고, 싫어도 싫다고 곧이곧대로 표현하지 않는 성격이어야 한다. 남성에게 주어진 역할 역시 한정돼 있다. 애매모호한 표현 방식을 '여성의 것'으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처음엔 '싫다'던 여자도 결국 쟁취해 내는 게 이 사회의 연애 관계에서 남성에게 주어진 역할이다. 이건 하나의 문화다. 이 상황에서, 어떻게 오해가 발생하지 않을 수가 있단 말인가.

더구나 이 사회는 누군가가 연애를 못하면 마치 어딘가 고장이 나 있는 사람인 것처럼 취급한다. 하지만 이런 애매모호한 의사소통법이 당연한 것으로 취급 받는 와중에 연애를 안전하고 건강하게 해 나가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연애를 위한 '작업'이라고 생각했던 무언가가, 혹은 일방에서 연애라고 착각했던 무언가가 쉽게 성폭력이 되고 만다. 사방이 지뢰밭인 셈이다.

"여자와 남자 사이에 친구는 없다"는 고정관념 역시 구조를 더 나쁘게 만들고 있다. 모든 이성 관계를 성적인 관계로 발전될 수 있는 전단계로 취급해 버린다면, '모호한' 의사소통은 거의 모든 이성 간에 일어난다. 그것은 위험하다. 연애 관계도, 섹스도 확실한 동의 후에나 시작하는 것이다. 그 전엔 상대를 '여성'이고 '남성'이 아닌, 하나의 동등한 사람으로 보고 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누구나 좋을 때만 확실히 좋다고 말할 수 있고, 싫으면 확실히 싫다고 말할 수 있는 사회. 누구나 상대에게 '좋다'는 확실한 반응이 돌아왔을 때에만 관계를 진전시키고, '싫다'는 반응이 돌아오면 거기서 바로 멈추는 사회. 이것이 애매모호함에서 발생하는 무수한 성폭력이 근절될 수 있는 사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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