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여해 "포항 지진, 문재인 정부에 대한 하늘의 준엄함 경고”류여해 자유한국당 최고위원(왼쪽)이 17일 오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에 참석해 홍준표 대표의 발언을 경청하고 있다.
이날 류 최고위원은 지난 15일 발생한 5.4의 포항 지진에 대해 "포항 지진은 문재인 정부에 하늘이 주는 경고, 즉 천심이라는 지적이 나온다"고 주장했다.
유성호
포항 지진 이후 마녀사냥이 횡행하고 있다. 지난 15일 경북 포항에 규모 5.4의 지진이 발생했고, 이후 20일 오전 6시 기준 규모 2.0 이상의 여진이 총 58회 이어졌다. 몇 날째 지진이 이어지고 있으니 포항 지역 주민들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 와중에 보수 성향의 목회자와 보수 정당의 최고 위원이 주술적 교의를 설파하며 여론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이들이 설파한 교의는 이랬다.
"문재인 정부에 하늘이 주는 준엄한 경고, 천심이란 지적이 나오고 있다."- 자유한국당 류여해 최고위원, 17일 최고위원회 회의"종교계에 과세 문다 하니까 포항에서 지진이 났다. 어떻게 하나님의 교회에다 세금을 내라 하나. 교인들이 세금 내고 헌금한 거라 이중과세다. 세제 형평성에 안 맞는다."- 영암삼호교회 이형만 목사, 16일 화곡동 성석교회 부흥회대규모 천재지변이 발생하면 사람들은 주술적 교의에 쉽게 빠져들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 같은 주술은 종종 파국적인 결과를 불러온다. 15세기 유럽에서 괴질이 창궐하자 절망에 빠진 민중들이 이 모든 어려움을 마녀 탓으로 돌리며 마녀사냥에 나선 게 대표적인 예다. 류여해 최고위원과 이형만 목사의 발언은 바로 이런 마녀사냥의 문법을 고스란히 답습하고 있다.
주술적 교의의 핵심은 '정치'더욱 심각한 건 이들의 발언이 상당 수준 정치적이라는 점이다. 류 최고위원은 전형적인 자유한국당의 전형적인 트집 잡기를 보여줬다. 류 최고위원은 자신의 발언이 논란을 일으키자 17일 자신의 소셜 미디어에 이렇게 적었다.
"저의 오늘 최고위원 발언을 왜곡해 정치적으로 악용하거나 저를 비난하는 분이 많다. (중략) 제가 그런 말을 했다는 것은 가짜뉴스의 전형이고, 그 가짜뉴스에 당내 일부 인사까지 영향을 받는 것을 보면서 참으로 안타깝다."류 최고위원은 그러면서 "천벌 받는다는 발언 내용은 결단코 없었고, 그런 일부 의견 내지 지적을 전달했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원내 제1야당의 최고위원이 지진 피해복구를 위해 초당적 협력이 필요한 시기에 '일부 의견 내지 지적'을 끌어들여 정부를 공격했다는 비판은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이형만 목사의 발언은 더욱 심각하다. 이 목사는 보수 장로교단인 예장합동 소속 목회자다. 그가 속한 보수 개신교계는 현 정부가 종교인 과세를 2018년 시행하려 하는데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 왔다. 이 목사의 발언엔 보수 개신교계의 심리가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이 목사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더욱 높은 수위의 정치 발언을 이어나갔다.
"이명박 대통령은 적폐 청산 안 했다. (노무현 정부) 적폐 청산하면 비서실장이던 문재인이 가장 큰 책임자다. 역대 대통령비서실장 다 구속됐는데 유일하게 안 된 사람이 문재인이다. 문재인은 문제가 없어서? 아니다. 신하가 주군을 죽음으로 내몰면 신하가 죽어야 한다." (<뉴스앤조이>, 11월 17일 자 보도 재인용)불가항력적인 자연재해 앞에서 인간의 이성 너머에 있을지 모를 초월적 존재를 떠올리는 것 자체는 큰 문제가 없다. 그러나 절대자를 정치적인 목적으로 활용하는 건 이해하기 어렵다. 이런 식의 논리라면 다음과 같은 반론도 가능하다.
최근 지진이 경주, 포항 등 자유한국당의 지지기반인 영남지역에서 빈발했다. 그렇다면 이 지진은 자유한국당에 주는 하늘의 준엄한 경고이자 천벌 아닌가? 그리고 종교인 과세는 박근혜 전 정권 시절 국회문턱을 넘었다. 그렇기에 하나님께서는 1000만 시민으로 하여금 촛불을 들게끔 하셔서 박 전 대통령을 쫓아낸 것 아닌가?
하늘은 편협하지 않다 그리스도교든, 불교든 이 세상의 모든 고등종교가 섬기는 초월적 존재는 편협하지 않다. 특히 보수 개신교는 하느님을 징벌자로 한정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그러나 하느님은 절대 편협한 분이 아니다. 하느님께서는 선한 이에게는 물론 모두가 손가락질하는 악인에게도 똑같이 따사로운 햇살과 맑은 공기를 허락하신다. 징벌적 존재로서 하느님을 이해한다면 절대자 하느님의 속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마침 기독교계 안에서 지진 이후의 마녀사냥 징후에 제동을 거는 목소리가 나왔다. 높은뜻 연합선교회 김동호 목사는 20일 오전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이들의 발언의 문제점을 이렇게 지적했다.
"어떻게 지진난 것 가지고 정부 탓하고 과세 탓하고. 그게 무슨...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죠. 하늘 팔아서 자기 이익 챙기는 사람이잖아요. 사람들 겁주고. 지진이 경고라는 말이나, 참 말이 안 되고. 이런 일이 일어나면 그 지진 때문에 상처받고 고통당하는 사람들에게 집중해서 그들을 어떻게 하면 도울까 하는 생각을 해야지. 무슨 세금을 내니 안 내니 하는 엉뚱한 소리를 하는지 조금 답답해요."우리 사회는 대형참사가 일어날 때마다 툭하면 특정 종교, 특히 보수 개신교계에서 피해자에게 2차 피해를 주는 발언이 불거졌다. 이번 포항 지진에서도 이 같은 공식은 되풀이됐다. 이 지점에서 분명히 지적하는데, 절대자 하느님은 그렇게 가벼운 존재가 아니다.
지금은 지진 피해 당한 포항을 위해 공동체가 나서야 할 시점이다. 다분히 정치적인 목적으로 주술적 교의를 끌어들이는 건 부적절하다. 정부는 지진이 발생하자 수학능력시험 연기라는 초유의 결단을 내렸다. 이런 정부를 공격하고자 '천심' 운운한 건 사악하기까지 하다.
우리 사회가 한 단계 더 성숙하려면 이런 가벼움부터 하루속히 없어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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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김도균 기자입니다. 어둠을 지키는 전선의 초병처럼, 저도 두 눈 부릅뜨고 권력을 감시하는 충실한 'Watchdog'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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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 지진 이후 횡행하는 '마녀사냥', 멈춰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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