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세 일본 변호사가 한국에서 '감사패' 받은 사연

광주지방변호사회, 수십년 간 근로정신대 소송 도운 일본 변호사들에 ‘감사패’ 수여

등록 2017.12.08 16:33수정 2017.12.08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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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치가와 요시카즈 일본 변호단장(왼쪽에서 2번째)을 비롯한 일본 변호사와 지원단체 관계자들이 태평양전쟁희생자광주유족회 이금주회장님 댁을 찾아, 소송에 참여하고 있는 양금덕 할머니 등 원고들과 재판에 관해 얘기를 나누고 있다.(2005년 7월30일)
우치가와 요시카즈 일본 변호단장(왼쪽에서 2번째)을 비롯한 일본 변호사와 지원단체 관계자들이 태평양전쟁희생자광주유족회 이금주회장님 댁을 찾아, 소송에 참여하고 있는 양금덕 할머니 등 원고들과 재판에 관해 얘기를 나누고 있다.(2005년 7월30일)안현주

"할머니들을 만난 지가 20여 년 전 환갑 때였는데, 그 사이에 저도 이제 80대 고령의 할아버지가 되어 버렸습니다. (이 싸움이) 오래 걸릴 줄은 알았지만 지금까지 변호단장을 맡고 있을 지 상상도 못했습니다." (우치가와 요시카즈 변호단장)

일제강점기 근로정신대로 동원된 피해 할머니들의 일본 소송을 대리하는 등 20여 년 동안 피해자들의 명예회복 활동에 나선 일본 변호사들이 광주지방변호사회로부터 감사패를 받았다.

광주지방변호사회(회장 최병근)은 세계인권선언일에 즈음해 8일 오전 11시 30분 광주지방변호사회관에서 일제강점기 근로정신대 피해 할머니들의 명예회복과 피해구제를 위해 노력해온 공로로 '나고야 미쓰비시 조선여자근로정신대 소송 공동변호단'의 우치가와 요시카즈(79.內河惠一) 변호단장, 이와츠키 고오지(62.岩月浩二) 변호단 사무국장, 하세가와 가즈히로(59.長谷川一裕) 변호사 3인에 대해 각각 감사패를 수여했다.

광주지방변호사회는 "비록 일본소송은 패소하고 말았지만, 법정투쟁의 성과는 한국 소송을 승소로 이끌어 내는 토대가 되었다"며 "인권과 역사정의를 위해 국적을 초월해 펼쳐 온 인류애는 우리에게 깊은 감명과 울림이 되었다"고 이들의 활동을 평가했다.

일본 변호사들과 근로정신대 피해 할머니들의 첫 인연은 2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제강점기 불과 13~14살 어린 나이에 미쓰비시중공업 나고야항공기제작소로 동원돼 갖은 고역을 겪어야 했던 피해 할머니들이, 일본정부와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에 나서기로 하면서다. 1997년 12월이었다.

피해자들의 명예회복에 뜻을 같이한 이들 변호사들은 1998년 3월 준비회의를 거쳐 그해 8월 34명의 변호사들이 참가한 가운데 '공동변호인단'을 결성했다. 단장은 우치가와 요시카즈(內河惠一), 사무국장은 이와츠키 고오지(岩月浩二) 변호사가 맡았다. 그 후 뜻을 같이하는 변호사들이 새로 합류해 모두 44명에 이르렀다.

그해 9월 피해자들의 의견을 청취하기 위해 한국을 처음 방문한 변호단은 이때로부터 길고 긴 싸움에 접어들었다. 변호단은 마침내 1999년 3월 1일 원고 5명의 이름으로 일본정부와 미쓰비시중공업을 피고로 나고야 지방재판소애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한 데 이어, 다음 해인 2000년 12월 원고 3명을 추가로 소송에 합류시켰다.


"환갑 때 시작한 재판이었는데 벌써 20년…"

 근로정신대 피해 할머니들이 소장을 접수하기 위해 일본 지원단체와 변호단과 함께 나고야 지방재판소로 향하고 있는 모습(1999년 3월1일)
근로정신대 피해 할머니들이 소장을 접수하기 위해 일본 지원단체와 변호단과 함께 나고야 지방재판소로 향하고 있는 모습(1999년 3월1일)나고야 미쓰비시 조선여자근로정신대 소송 지원회

특이한 것은 법원에 소장을 제출한 날이 3월 1일이라는 것. 여기에는 각별한 뜻이 숨어 있었다. 일제의 폭압을 뚫고 분연히 일어선 3.1 독립정신을 생각하며 싸우자는 뜻에서 일부러 3.1운동 80주년을 맞는 3월 1일에 맞춘 것이다.


하지만 재판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많은 세월이 지난 데다, 피고 측인 일본정부와 미쓰비시 측이 관련 자료의 제공에 협조할 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일본에서의 강제노동으로도 모자라 광복 후에는 '위안부'로 오인 받아 가정 파탄까지 겪은 피해 할머니들이 일본은 오가면서 재판할 만큼 경제적 여력이 있을 리도 없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 나머지 몫은 자발적인 시민들로 구성된 '나고야 소송 지원회'와 '공동변호단'이 질 수밖에 없었다. '나고야 소송 지원회'는 재판 때마다 일본을 방문하는 원고들의 항공료는 물론 교통비, 숙박비 등을 부담해왔고, '변호단'은 '변호단'대로 무료변론을 진행했다. 심지어 인지대 등 재판에 들어가는 기본 실비마저 자신들이 부담하지 않으면 안 됐다.

재판은 1심, 2심을 거쳐 최고재판소까지 장장 10년이란 시간이 소요됐다. 구두변론을 가진 것만 해도 지방재판소 22회, 고등재판소 7회 등 총 29번에 이르는 치열한 법정투쟁이 이어졌다. 이런 과정 동안 '변호단'이 원고들의 의견청취, 자료 조사 등을 위해 한국을 방문한 것만 30차례가 넘었다.

또한 10년 동안 이어진 재판 기간 동안 '변호단' 회의만 무려 126차례였고, 특별히 합숙을 가진 것도 10차례였다. 이런 산고 끝에 법원에 제출한 변론 서류만 수천 페이지(page)에 이른다.

"소송을 시작했을 때만 해도 사실관계에 관한 자료도 부족하고, 이론적 무장도 아직 확립되지 않았었죠. 특히 전후 오랜 시간 할머니들의 입은 정신적 고통을 어떻게 파악해 법적 구성을 할 것인지, 또한 일본군 '위안부'로 오해받을 수밖에 없어 입은 상처와 피해를 법원에 어떻게 호소할지에 대해 변호인단 내에서도 격렬한 논란이 있었습니다. 그러느라 많은 시간이 소요됐고, 더불어 막대한 서면자료가 덧붙여져 갔습니다." (우치가와 요시카즈 변호단장)

 일본에서의 소송 자료를 모은 자료집. 이 책에는 피해자들의 생생한 고통은 물론 진실규명에 나선 변호사들의 고뇌와 땀방울이 고스란히 배어있다.
일본에서의 소송 자료를 모은 자료집. 이 책에는 피해자들의 생생한 고통은 물론 진실규명에 나선 변호사들의 고뇌와 땀방울이 고스란히 배어있다.근로정신대할머니와함께하는시민모임

그러나 결과는 번번이 패소였다. 나고야 지방재판소(2005.2.24.)에 이어, 나고야 고등재판소(2007.5.31.)에서도 패소하고 말았다. 그러나 성과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결론은 패소 판결이지만, 나고야 고등재판소는 '근로정신대 동원은 어린소 녀에 대한 강제연행·강제노동에 해당'하고, '개인의 존엄을 부정하고 정의·공평에 현저하게 반하는 행위'라며 일본정부와 미쓰비시중공업 양자의 불법행위 책임을 모두 인정했습니다. 단, 한일청구권협정이 있기 때문에 재판소가 손해배상을 명령할 수 없다는 것이었죠. 변호단 입장에서는 재판을 통해 얻어낼 수 있는 최대한의 것을 얻어냈다고 평가했죠. 이러기까지 재판 과정에서 변호단원이 한국을 방문한 횟수는 이루 다 셀 수 없습니다." (이와츠키 고오지 사무국장)

이들 변호단이 얼마나 재판에 사력을 다해 왔는지는 재판 자료를 통해서도 생생하게 엿볼 수 있다. 특히, 판결의 오류를 일일이 지적해가며 일본정부와 미쓰비시중공업에 대해 누구보다 통렬히 꾸짖는 대목은 살얼음판에 서 있는 것 같은 작은 전율까지 느껴질 정도다.

일본 소송 자료는 한글로 번역돼 지난해 '법정에 새긴 진실'(2016.선인)이란 이름으로 출판된 바 있다. 현재 소송을 담당하고 있는 이상갑 변호사는 '법정에 새긴 진실' 서평에서 "이 책은 한 사건에 관한 재판자료라기보다는 역사서이자 논문이라고 보는 것이 더 적절하다"며 "하나의 소송서류가 이처럼 역사서로서, 학술적 논문으로서의 요건을 모두 갖출 수 있다는 점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며 높이 평가했다.

사법 구제는 막혔지만... 금요행동과 자료의 힘

 일본 변호사들과 지원단체 관계자들이 재판 원고로 참여했다가 돌아가신 김혜옥 할머니 묘소를 찾기 위해 국립5.18묘지에 들어서고 있다.(2009년 9월 12일)
일본 변호사들과 지원단체 관계자들이 재판 원고로 참여했다가 돌아가신 김혜옥 할머니 묘소를 찾기 위해 국립5.18묘지에 들어서고 있다.(2009년 9월 12일)이국언

결국 2008년 11월 11일 일본 최고재판소마저 원고들의 청구를 외면하면서, 더 이상 일본에서의 사법적 구제의 길은 막히고 말았다.

그러나 변호단의 생각은 달랐다. 법원 판결로서는 비록 패소했지만, 일본정부와 미쓰비시의 불법책임이 명백한 이상, 어떤 식으로든 그 책임을 이행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최고재판소 판결 이후에도 싸움을 포기하지 않고, 법정 밖에서 일본정부와 미쓰비시에 해결을 촉구하는 활동을 멈추지 않았던 이유이다.

그 일환에서 시작된 것이 2007년 7월 20일부터 시작된 '금요행동'(금요 원정 시위)이었다. 미쓰비시가 비겁하게 법원 판결을 핑계로 뒤에 숨을 것이 아니라, 역사적 사실에 근거해 자발적으로 사죄와 배상에 나서라는 것.

이렇게 시작된 '금요행동'은 지난 1일로 400회를 맞았다. 햇수로만 벌써 10년째, 미쓰비시중공업과 공식 교섭이 있었던 2년여를 제외하더라도 만 8년이 넘는 세월이다.

그 사이 한국에서는 일제 강제동원 문제에 대한 큰 변화가 있었다. 2012년 5월 24일 대법원이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소송과 관련, 한일청구권협정과 무관하게 개인청구권은 유효하다며 기존 판결을 뒤집고 일본 기업에 배상책임이 있다고 판시 한 것이다.

이에 힘입어, 2012년 10월 24일 양금덕 할머니 등 미쓰비시로 끌려간 근로정신대 피해자 5명은 미쓰비시를 상대로 광주지방법원에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이어, 2014년 2월 2차 소송, 2015년 5월 3차 소송을 제기하는 등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모두 3건의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이렇게 진행된 한국 소송에서 일본 소송 자료와 경험은 큰 힘이 됐다. 일본 소송에서는 비록 패소했지만, 10년 동안 꼼꼼히 조사한 피해 입증 자료들이 재판에 결정적 힘을 발휘했기 때문이다.

 광주지방법원 승소 판결 후 법정을 나오면서 하세가와 가즈히로 변호사가 승소를 알리는 손글씨를 펼쳐 보이며 기뻐하는 모습.(2013년 11월 1일)
광주지방법원 승소 판결 후 법정을 나오면서 하세가와 가즈히로 변호사가 승소를 알리는 손글씨를 펼쳐 보이며 기뻐하는 모습.(2013년 11월 1일)이국언

그리고 마침내 2013년 11월 1일 광주지방법원에 이어, 2015년 6월 24일 광주고등법원에서도 차례로 승소해, 현재 이 사건은 대법원의 최종 판결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추가로 제기된 2개의 사건 또한 지난 8월 광주지방법원에서 각각 승소해 현재 광주고등법원에서 다투고 있는 중이다.

놀라운 것은 2008년 11월 일본 최고재판소에서 최종 패소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변함없이 연 8~9회에 걸쳐 변호단 회의를 갖고 있다는 점이다. 1998년 변호단 결성으로부터 무려 200회가 넘는다. 이번에 광주지방변호사회로부터 감사패를 받는 세 변호사들이 그 회의의 주축 멤버다.

"비록 일본 사법에서 승리는 이루지 못했지만, 10여 년에 걸친 일본에서의 노력이 한국에서 잘 활용돼 승소 판결에 얼마간이라도 도움이 된 것은 나고야의 변호단으로서도 큰 영광입니다. 인권 옹호를 사명으로 하는 변호사로서, 설사 어떤 어려운 사건에서도 변호사로서 그 노고를 마다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치가와 요시카즈 변호단장)

이제는 노년이 되어버린 우치가와 변호단장. 그를 통해 변호인의 사명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하게 한다.

 광주지방변호사는 8일 근로정신대 할머니들의 일본 소송을 돕는 등 명예회복 활동에 헌신한 일본 변호인단 3명에 대해 감사패를 전달해 격려했다.
광주지방변호사는 8일 근로정신대 할머니들의 일본 소송을 돕는 등 명예회복 활동에 헌신한 일본 변호인단 3명에 대해 감사패를 전달해 격려했다. 근로정신대할머니와함께하는시민모임

#근로정신대 #미쓰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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