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치가와 요시카즈 일본 변호단장(왼쪽에서 2번째)을 비롯한 일본 변호사와 지원단체 관계자들이 태평양전쟁희생자광주유족회 이금주회장님 댁을 찾아, 소송에 참여하고 있는 양금덕 할머니 등 원고들과 재판에 관해 얘기를 나누고 있다.(2005년 7월30일)
안현주
"할머니들을 만난 지가 20여 년 전 환갑 때였는데, 그 사이에 저도 이제 80대 고령의 할아버지가 되어 버렸습니다. (이 싸움이) 오래 걸릴 줄은 알았지만 지금까지 변호단장을 맡고 있을 지 상상도 못했습니다." (우치가와 요시카즈 변호단장)일제강점기 근로정신대로 동원된 피해 할머니들의 일본 소송을 대리하는 등 20여 년 동안 피해자들의 명예회복 활동에 나선 일본 변호사들이 광주지방변호사회로부터 감사패를 받았다.
광주지방변호사회(회장 최병근)은 세계인권선언일에 즈음해 8일 오전 11시 30분 광주지방변호사회관에서 일제강점기 근로정신대 피해 할머니들의 명예회복과 피해구제를 위해 노력해온 공로로 '나고야 미쓰비시 조선여자근로정신대 소송 공동변호단'의 우치가와 요시카즈(79.內河惠一) 변호단장, 이와츠키 고오지(62.岩月浩二) 변호단 사무국장, 하세가와 가즈히로(59.長谷川一裕) 변호사 3인에 대해 각각 감사패를 수여했다.
광주지방변호사회는 "비록 일본소송은 패소하고 말았지만, 법정투쟁의 성과는 한국 소송을 승소로 이끌어 내는 토대가 되었다"며 "인권과 역사정의를 위해 국적을 초월해 펼쳐 온 인류애는 우리에게 깊은 감명과 울림이 되었다"고 이들의 활동을 평가했다.
일본 변호사들과 근로정신대 피해 할머니들의 첫 인연은 2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제강점기 불과 13~14살 어린 나이에 미쓰비시중공업 나고야항공기제작소로 동원돼 갖은 고역을 겪어야 했던 피해 할머니들이, 일본정부와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에 나서기로 하면서다. 1997년 12월이었다.
피해자들의 명예회복에 뜻을 같이한 이들 변호사들은 1998년 3월 준비회의를 거쳐 그해 8월 34명의 변호사들이 참가한 가운데 '공동변호인단'을 결성했다. 단장은 우치가와 요시카즈(內河惠一), 사무국장은 이와츠키 고오지(岩月浩二) 변호사가 맡았다. 그 후 뜻을 같이하는 변호사들이 새로 합류해 모두 44명에 이르렀다.
그해 9월 피해자들의 의견을 청취하기 위해 한국을 처음 방문한 변호단은 이때로부터 길고 긴 싸움에 접어들었다. 변호단은 마침내 1999년 3월 1일 원고 5명의 이름으로 일본정부와 미쓰비시중공업을 피고로 나고야 지방재판소애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한 데 이어, 다음 해인 2000년 12월 원고 3명을 추가로 소송에 합류시켰다.
"환갑 때 시작한 재판이었는데 벌써 20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