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대 설립자는 박정희에 저항했는데... 황교안 상 준다니

[주장] 황교안 '자랑스런 성균인상' 논란, 동문만의 문제 아냐... '촛불 정신'과 동떨어져

등록 2017.12.21 15:23수정 2017.12.21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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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임식에서 꽃다발 받은 황교안 박근혜 대통령 탄핵 후 권한대행을 지낸 황교안 국무총리가 지난 5월 11일 오후 세종로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열린 이임식에서 꽃다발을 받고 있다.
이임식에서 꽃다발 받은 황교안박근혜 대통령 탄핵 후 권한대행을 지낸 황교안 국무총리가 지난 5월 11일 오후 세종로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열린 이임식에서 꽃다발을 받고 있다.권우성

황교안 전 대통령 권한대행의 '2018 자랑스런 성균인상' 수상을 놓고 연일 논란이 뜨겁다. 이를 반대하는 온라인 서명운동은 4일 만에 3천 명을 돌파했다고 한다(20일 오전 기준).

사실 해당 학교 졸업생인 글쓴이로선, 참으로 황당하고 부끄럽기 짝이 없지만, 한편으로 이 논란을 단순히 한 사립대학 총동창회의 문제로 대수롭게 넘겨 보아선 안 된다는 생각이 든다. 왜냐면 이 논란의 본질은 '촛불항쟁을 둘러싼 기억투쟁'에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촛불을 둘러싼 기억 투쟁이 시작됐다

한국사회에서 동문회, 동창회란, 기본적으로 '잘 나가는 사람'들의 모임이다. 세속적 의미에서 성공한 사람들이 자신의 성공을 '자랑'하고, 서로의 성공을 '확인'하며, 성공한 자들끼리의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장인 것이다. 즉, 동문회란, 사회 각 분야의 '기득권자'들이 학교 동문이라는 연고를 배경으로 형성한 네트워크다. 특히 이른바 상위권 대학일수록 더욱 그렇다.

그렇기에 이런 종류의 모임은 "우리가 남이가"를 외치며 배타적인 성격을 지닐 수밖에 없고, 사회 정의에 대한 관념이 약할 수밖에 없다. 이는 사회적 공공성이 낙후된 한국사회 특유의 현상이기도 하다. 사회적 공공성이 낙후되거나 공적 가치가 부재한 사회에선, 어떤 가치에 입각한 연대보다 이익(기득권) 중심의 패거리가 형성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는 하지만, 이번 성균관대 총동문회의 황교안 수상 결정은 매우 '독보적'이다. 어떻게 이런 결정을 할 수 있었을까라는 의구심이 들 정도로 말이다. 해당 사실이 세간에 알려지면 커다란 논란이 될 것이라는 점을, 성균관대 총동문회 운영진은 정말 몰랐을까?

이에 대한 해답의 열쇠는, 역시 성대동창회보 제452호의 <총동창회, 황교안 전 대통령 권한대행 초청 "위기의 대한민국호 무사귀항...감사합니다">라는 기사에서 찾아볼 수 있다. 해당 기사는 위기의 대한민국을 구해낸 '자랑스런 동문'으로 황교안 전 대통령 권한대행을 추켜세우고 있다.(관련 기사 : 황교안이 대한민국호 구했다? 성대동창회보 황당 기사)


 성균관대 총동창회 홈페이지에 지난 9월 올린 기사 "황교안 전 대통령 권한대행 초청 "위기의 대한민국號 무사귀항...감사합니다"
성균관대 총동창회 홈페이지에 지난 9월 올린 기사 "황교안 전 대통령 권한대행 초청 "위기의 대한민국號 무사귀항...감사합니다"성균관대총동창회

이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와 촛불항쟁을 바라보는 성균관대 총동문회, 더 나아가 우리사회 '기득권자'들의 시선을 그대로 반영한 현상이라 생각한다. 적어도 그들은, 유사 이래 유례없는 최악의 국정농단 사태였던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와 박근혜 정권 부역자들을 향해 분노했던, '평범한 일반시민'들의 정서에 전혀 공감하고 있지 못하는 것 같다.

아니, '공감'은 커녕 촛불항쟁으로 표출된 '민중의 힘'을 '인식'조차 하고 싶어하지 않는 것 아닐까. 그리고 이를 위한 방법으로, 불과 1년 전에 대한 기억을 지금 호도하려 하고 있다. 마치 대한민국이 황교안 덕택에 무사할 수 있었다는 식으로. 일종의 자기 최면이라고나 할까.


그런 점에서 이번 사태는, 촛불항쟁을 둘러싼 '기억투쟁'이 시작됐음을 알리는 상징적 사건이다. 최근 '사법부'에 의해 적폐청산이 제동이 걸리기 시작한 시점에 이와 같은 일이 일어난 것도 몹시 흥미롭다.

논란의 중심에 선 황교안 전 권한대행이 성균관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공안 검사'를 거쳐 훗날 박근혜 정권의 '법무부장관'이 된 인물이라는 점 역시 예사롭지 않다. 우연의 일치일 수 있겠지만, 이러한 사실들을 볼 때 이번 사태를 결코 개별 대학의 맥락에서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사회적 맥락의 사태이며, 기억투쟁에 해당하는 사건인 것이다.

따라서 지금 성균관대 재학생, 졸업생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는 '황교안 수상 반대 서명운동'은, 향후 관심있는 시민 누구나 참여할 수 있도록 그 외연을 확장해야 할 것이다. '촛불항쟁을 둘러싼 기억투쟁'이라는 이 사태의 본질상, 황교안 수상 반대 서명운동이 '그들만의 리그'에 그쳐선 안 될 것이기 때문이다. 만일 그럴 경우, 그것은 촛불항쟁의 가치와 지향을 또 다른 형태로 배반하는 일이 될 것이다.

대학의 사회적 가치, 그리고 심산 김창숙

한편, 이번 사태를 좀 더 다른 맥락에서 성찰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지금 졸업한지 3년이 흘렀지만, 적어도 글쓴이가 겪은 성균관대는, 조선 유학의 맥을 이은 항일해방투사요 반(反)이승만 독재의 선봉장이었던 설립자 심산 김창숙 선생의 삶과 사상이 살아있는 대학이라 보기가 어려웠다.

재벌권력, 언론권력에 스스로 몸을 내준 것은 국내 사립대학(특히 서울권 사립대학)들의 일반적 문제이기도 하지만, 성균관대의 경우 학내에 '삼성'이라는 '성역'이 엄연히 존재했다.'심산관'은 '호암관'이 된지 오래였고, <중앙일보>는 자체 대학평가에서 성균관대를 1위로 보도했다. 삼성을 비판한 시간강사는 잘려나가고, <성대신문> 결호사태에서 보듯 학내 언론 역시 제 역할을 할 수 없었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쓰러진 다음날엔가는, 그가 쓰러져서 병원에 실려가 치료를 받는 과정을 시간대별로 묘사해 설명하는 교내방송이 교내에 울러퍼졌다. 세월호 유족 간담회를 불허하고, 해당 간담회를 추진한 학생들에게 장학금 지급을 거절한 소식은 졸업 이후에 들었지만, 과연 성균관대라면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부끄러운 성균인, 황교안에 대한 총동창회의 ‘자랑스런 성균인상’ 선정에 반대합니다> 연서명
<부끄러운 성균인, 황교안에 대한 총동창회의 ‘자랑스런 성균인상’ 선정에 반대합니다> 연서명구글 독스 캡처

성균관대에서 지금까지 벌어진 이상의 모든 일들은, 다시 한 번 '대학의 사회적 가치'를 묻게 하는 일들이 아닐 수 없다. 과연 우리 사회에서 대학이란 무엇인가? 개인의 출세욕을 충족하기 위한 수단인 것인가? 한국연구재단으로부터 더 많은 연구비를 타내기 위한 경쟁의 장인가? 그도 아니면 교육을 가장해 학생과 학부모의 등골을 쥐어짜는 수탈 기관인가? 학교재단을 가장한 사금고인 것인가?

국내 대학치고 '글로벌'을 내세우지 않는 대학이 없지만, 과연 원어민들을 불러다 영어로 수업하고, 학생들을 학점 경쟁으로 내몰며, 취업률을 내세우면 저절로 글로벌 대학이 되는 것일까? 대체 글로벌 대학의 기준은 무엇인가? 학내에 성역이 존재하는 대학이 글로벌 대학인 것인가?

대학의 사회적 가치에 대한 철학과 제도가 제대로 확립되지 않는다면, 우리시대의 대학에 남는 것은 오직 자본과 권력에 길들여진 '타락'뿐일 것이다. 지금 성균관대의 모습은, 대학이 사회 정의에 뿌리내리지 않을 경우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현상이 아닐까?

성균관대의 현재 모습을, 설립자인 심산 김창숙이 보신다면 과연 어떤 불호령을 내리실까? 심산은 일제의 가혹한 고문으로 장애를 얻고도, 해방 이후 성균관에 또아리를 튼 친일 유림들을 몰아내고 성균관대를 세웠다. 1961년 5.16쿠데타 직후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이 심산의 병실을 찾았을 때, 심산은 끝까지 등을 돌린채 그를 거들떠보지 않았다. 이 모습은 지금도 사진으로 남아 우리에게 진한 울림을 준다.

그는 병상에 누워서도, 박정희가 외친 '혁명'이 실상 4월 민중혁명에 대한 반동적 쿠데타에 지나지 않음을 간파하고, 자신이 병상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행동'으로 이에 저항했던 것이다. 이런 심산의 기개와 통찰력에 비하면, 지금 성균관대와 성균관대 총동문회의 모습은 너무도 초라하지 않은가? 과연 심산이 꿈꾸었던 성균관대와 대학의 모습이 오늘의 이런 모습일까?
#성균관대 #심산 김창숙 #촛불항쟁 #기억투쟁 #성균관대 총동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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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공부하고 있는 시민. 사실에 충실하되, 반역적인 글쓰기. 불여세합(不與世合)을 두려워하지 않기. 부단히 읽고 쓰고 생각하기. 내 삶 속에 있는 우리 시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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