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사 사회를 본 방송인 이휘재씨와 함께2005년 11월 28일 저녁 서울 세종호텔 세종홀에서 열린 ‘평화3000 후원의 밤’ 행사에서 축시 <평화 3000은 오늘도 3,000리를 간다>를 낭송했다.
지요하
평양과 묘향산에서 기도하다 그런데 내가 무엇보다도 즐겁게 기억하는 것은 2005년 <평화3000>의 일원 자격으로 평양을 방문한 일이다. 그해 10월 13일 오전 순안공항에 도착하여 평양의 요소요소를 둘러본 다음 저녁에는 능라도에 있는 '5·1경기장'에서 '아리랑' 공연을 관람했다,
그리고 대동강의 양각도 호텔에서 일박했다. 양각도 호텔의 맨 꼭대기 층인 47층은 스카이라운지였다. 전체가 서서히 회전을 하는 식당이었다. 그 회전식당에서 지금은 고인이신 소설가 권태하 선생 등과 함께 맥주를 마셨다.
회전식당이었지만 어느 방향으로든 평양의 야경을 볼 수는 없었다. 평양은 불빛이 없는 도시였다. 사면팔방 어디를 봐도 어둠뿐인 암흑세계였다. 능라도 '5·1경기장'에서 보았던 웅장하고 화려한 '아리랑'' 공연과는 그야말로 대조를 이루는 풍경이었다.
나는 1만여 명이 함께 한 갖가지 형태의 무용과 집단체조, 수만 명이 한 사람처럼 동작하는 스탠드의 현란한 카드섹션들을 떠올리며 한숨을 삼키곤 했다.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장엄하고 화려한 군무(群舞)들은 완벽한 집단성과 조직성의 표징이었다. 공연을 보면서 아름다움에 감탄하면서도 나는 정체 모를 공포감에 몸을 떨곤 했다.
그런데 그 현란함과 대조를 이루는 평양 시내의 이 불빛 없는 풍경은 대체 뭐란 말인가. 공연한 의문과 슬픔에 목울대가 아려서 자꾸 맥주를 마시게 되는 것 같았다.
그때 나는 불빛 없는 평양의 밤을 밝게 만드는 것은 오늘 평양을 방문하고 있는 우리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우리가 더 많이 자주 평양을 방문하고, 남북 교류가 확대되고 빈번해지면 알게 모르게 변화가 생겨나서 불빛 없는 평양의 밤도 밝아지게 되리라는 생각이었다.
다음날 우리 일행은 가을이 물드는 묘향산을 구경했다. 묘향산의 보현사를 둘러보며 석불들 앞에서 기도를 했다. 천주교 신자지만 나는 보현사의 석탑과 석불들 앞에서 묵주를 쥔 채 오래 조국의 평화통일을 갈망하는 기도를 바치곤 했다.
그 뒤 나는 또 한 번 평양을 가려고 했다. <평화3000> 운영진에 또다시 평양에 갈 뜻을 표하기도 했다.
도라산역에서 열차를 타고 파리에 가는 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