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다가 이혼할 뻔> 책표지.
정은문고
성격이나 취향이 전혀 다른 두 사람이 한 공간에서 살아간다. 성격이 전혀 다르다보니 책 읽는 취향도 다를 수밖에 없다. 게다가 나이 차도 많다. 그야말로 삐걱거리기 딱 좋다. 이처럼 성격이나 취향이 전혀 다른 둘 사이의 간극을 책으로 좁힐 수 있을까?
<책 읽다가 이혼할 뻔>(정은문고 펴냄)은 일본의 한 부부 작가가 릴레이 형식으로 쓴 서평집이자 독서 에세이다. 성격이 전혀 다른 부부이다 보니 사소한 것으로도 매일 작은 전쟁이 벌어지곤 한다. 이런 부부의 소소한 듯 흥미로운 이야기와 다양한 책을 알아가는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책이다.
남편 '엔조 도'는 일본의 최고 문학상 중 하나인 아쿠타가와상을, 아내 '다나베 세이아'는 일본호러소설대상을 수상한 호러 작가다. 각자 수상한 이력으로 짐작해볼 수 있는 것처럼 개성도 강한 데다가, 전혀 다른 장르의 글을 쓰는 만큼 읽는 책들도 전혀 다르다.
"저는 요괴나 저주 관련 책, 괴담, 르포르타주,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쓴 픽션 소설이나 환상 괴기 작품이 많은 반면 남편은 PC 관련 전문서, 물리나 수학책, 요리나 수예책, 한문이나 역사책, 서양서 등등 보고 있으면 괜히 위 언저리가 콕콕 쑤시는 책만..."(아내)
이처럼 말이다. 게다가 나이차도 10년이다. 이래저래 간극이 있을 수밖에 없는 부부인 것이다. 이런지라 부부는 서재 결혼시키기와 같은 것은 꿈도 꾸지 못한다. 한 공간에 전혀 다른 자기만의 책장을 가지고 있는데, 둘 다 작가이면서도 좀체 상대방의 책에 관심조차 두지 않는다.
그런데 어느 날 밤, 각각 책을 읽던 둘은 '교환독서'에 뜻을 모은다. 서로에게 자신이 읽은 책을 권하고 반드시 읽자는 것. 그런데 그냥 읽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기간을 정해 읽되, 반드시 감상문을 쓰자는 것 등이었다.
그리하여 부부는 '-상대방에게 과제로 권하는 책은 반드시 자신이 읽은 책이어야', '반드시 종이책으로 읽어야', '-구하기 쉬운 책이어야', '-집안에서 감상문 내용을 이야기해서는 안 된다', '마감은 반드시 지켜야'한다 등, 3가지 규칙과 10가지 세칙까지 정한다.
'가끔 부부가 함께하는 이벤트나 집필 의뢰가 들어오지만, 남편이 지금껏 승낙한 적은 한 번도 없다. 이유를 물으면 "부부 만담이 될 것 같아서 싫어", "그냥" 이런 대답이 돌아오곤 했다.(…) 여태껏 나와 함께 하던 일에 거부감이 있던 남편에게 어떤 심경의 변화가 일었는지 나로서는 알 수 없다. 작가인데도 책을 별로 읽지 않는 내 성향을 바꾸고 싶은 건지 아니면 그냥 변덕을 부린 건지. 나는 남편의 마음이 바뀌기 전에 빨리 움직여야겠다 싶어 그날 바로 출판사 겐토샤에 "이런 기획 어떨까요?" 하는 메일을 보냈다. 참고로 겐토샤에 메일을 보낸 이유는 예전에 웹진 <겐토샤>에 올라온 후쿠자와 데쓰조 작가의 연재가 재미있어서였다. 그런데 설마 그 제안이 진짜 현실이 돼 이렇게 첫 번째 연재를 하게 될 줄이야.' - 아내의 첫 번째 연재 중에서.
그동안 심지어는 '내 인생을 바꾼 책'이라고 해도 심드렁한 반응을 보이곤 하던 남편이었다. 그래서 아내는 어쩌면 지극히 사소하게 제안했을지도 모를 남편이 교환독서를 철회하지 못하도록 서둘러 공식적인 연재로 추진해버린다. 이런 과정으로 나온 책이라고 한다.
얼떨결에 남편과의 공식적인 공동 집필에 성공한 아내는 기대를 잔득하며 첫 번째 과제도서로 <불곰 태풍>을 선정한다. 그런데 하필 남편이 '곰이 나를 잡아먹을 듯 노려보는 표지에 대한 거부감 때문에 화제의 책인데도 읽고 싶지 않았던' 그 작품이다.
아내가 이 책을 선정한 이유는 '남편의 고향이 곰이 자주 출현하는 지역이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는 표면적인 이유에 불과하지 않나?' 싶을 정도로 책을 읽어 나가다보면 아내의 의도가 의심스러워지곤 하는 대목들이 자주 나온다.
"나는 심령사진이나 괴담 관련 그림 따위는 보이지 않도록 숨겨둔다. 사람 얼굴이 크게 나온 표지도 안 된다. 밖에서 보는 책은 큰 문제가 안 되지만 집안에서는 책을 뒤집어 놓는다. 결혼 초기에 아내가 그런 표지의 책을 책상 위에 올려놓곤 했는데, 나를 괴롭히려고 일부러 그러는 거라고 의심하기도 했다."(남편) - 32~33쪽.
"이전 연재에서 남편은 표지가 무서운 책이 싫다고 폭로한 바 있다. 그렇다면 내가 아는 한 가장 무서운 표지의 책을 골라야지, 참고로 현재 남편은 아파서 이불 안에서 끙끙거리고 있다. 이런 상태에서 <쿠조>는 또 다른 맛이 있지 않을까."(아내) - 43쪽.
이처럼 말이다. 참고로 <쿠조>는 일본에서 화제가 됐던 공포소설로 커다란 개가 악마개로 변하는 이야기란다. 무서운 표지가 싫다면 무서운 내용은 더욱 싫을 것. 아내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게다가 남편 엔조 도는 병원에서 체중 조절을 권유할 정도로 체중을 조절해야만 하는 상태였다. 그러니 아내가 하필 무서운 곰 책을 선정한 이유가 자못 의심스러운 것이다.
그런데 아내의 의도야 어떻든 남편은 '곰과 함께 살아가다'란 제목으로 곰에 대한 지식을 풀어놓기도 하고, '모두가 대략적인 내용을 아는 산케베쓰 불곰 사건을 소설화한 이 책을 읽으며 소설의 힘에 놀랐다'며 문체까지 들먹이는 등, 아내가 권한 책을 유쾌하게 즐긴 듯한 감상문을 쓴다.
"지금까지 아내와 함께하는 일을 거절해온 데에는 무언가 불합리한 일을 당할 듯하다, 생활과 일이 분리되지 않아 싸움이 날지도 모른다, 상대방의 일까지 떠맡을 것 같다 등등 다양한 이유가 있는데 역시 가장 큰 이유는 "곰이랑 일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였다. 이렇게 말하면 아내는 "그럼 당신은 왜 곰이랑 결혼했는데?"라고 톡 쏘아붙인다. 단순한 질문에 언제나 단순한 대답을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뭐, 이번 일은 서로의 작업이 분리돼 있으니 괜찮을 것 같긴 하다." - 23쪽, 남편의 첫 번째 연재에서.
게다가 이처럼 그동안 부부가 함께해야 하는 것들을 언제나 거절해 온 (아마도 아내는 짐작조차 못한 듯한) 진짜 이유를 밝히기까지 한다. 심지어는 '거실 한복판에 허물처럼 벗겨져 있는 아내의 바지나 복도에 떨어져 있는 아내의 양말 한쪽, 냉장고 속 반찬이 무언가로 도려낸 듯 파여 있는 것...' 등을 보게 되면 '아아, 곰의 습격'이라고 자연스럽게 생각하게 된다는 등의 표현으로 아내의 사생활까지 공개하기도 한다. 그러니 교환독서는 처음부터 작은 전쟁이다.
어떤 글에서 남편은 '결혼과 함께 세상이 사리에 맞지 않고 어수선하며 혼돈으로 가득 차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고백하기도 한다. 그런데 아내 역시 '딱히 크게 서두를 이유가 있지도 않았는데 왜 그렇게 빨리 교제에서 결혼으로 발전했는지는 모르겠다. 이 연재를 시작한 이유는 분명한 반면 남편이 왜 내 남편이 됐는지는 외계인이 기억을 바꿔치기 했나 가끔 의심할 정도로 막연하다'고 고백하기도 한다.
그래서 처음 몇 편의 글들은 독자인 내 스스로 '이런 표현은 아내를 좀 난감하게 하지 않을까?' 걱정되기도 하고, '일본 사람들의 표현 방식인가?' 궁금해지게 하기도 하고, 외줄타기를 보며 느끼는 긴장까지 느끼게 하기도 한다.
호기심을 자극하는 제목이라, 뭣보다 책 읽는 이야기라 궁금했다. '남자 여자 각각 다를 수밖에 없는 어떤 책에 대한 생각이나 책 읽는 이야기 등을 비교해 볼 수 있어서 좋겠다' 지레짐작, 기대하기도 했다. '부부 공동 집필 서평집'이란 책이 가지는 의미 때문에 더욱 읽고 싶은 책이기도 했다. 한편으론 '아무렴 책 읽다가 이혼까지 하겠어? 조금은 오버하는 책 제목인 게지'란 생각도 했지만 말이다.
부부가 교환독서를 시작한 이유는 '상대방을 이해하는데 도움 될까?'였다. 그런데 둘은 처음부터 결혼 생활의 불협화음을 표현하곤 한다. 그래서 걸핏하면 각각의 지인들에게 "요즘 부부 사이 괜찮아?"라는 질문을 받았다고 한다. 그런데 여하간 분명한 것은 '부러운 책 친구, 괜찮은 의도의 책'이라는 것이다. '연재 횟수가 늘어갈수록 부부 사이의 거리가 조금씩 멀어지는 느낌(153쪽)'까지 갔던 부부는 점점 갈수록 책을 매개로 아름다운 결과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부부 중 한 사람은 '자신이 있는 곳에서 좀체 움직이지 않는다. 움직이려고 하지 않는다. 그런데 굳이 움직이게 할 필요가 있을까?'라고 생각한다. 아내가 늘 바라는 것은 '남편과 함께 하는 무엇'이다. 그래서 종이접기를 함께 하자는 특별한 주문까지 한다. 그럼에도 남편은 요지부동. 이런 남편에게 자주 섭섭했던 아내는 '부부니까 무엇이든 함께 해야 한다는 것도 잘못이다'고 생각한다.
아내는 결혼한 지 몇 년이 되었는데도 남편이 커피를 싫어한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 연재를 통해 남편이 커피를 싫어한다는 것이나 남편이 자신의 음식을 싫어하는 진짜 이유를 알게 된다. 남편은 자신의 사소한 것도 모르는 아내를 이해할 수 없다. 그런데 연재를 통해 아내의 무심한 성격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하여 부부는 저마다 다른 표현으로 '부부니까 서로에 대해 모든 것을 알고 있다. 알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부부도 관계를 위한, 서로를 알아가려는 노력을 끊임없이 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식으로 말이다. 그러니 '성격이나 취향이 전혀 다른 부부가 책을 매개로 서로를 알아가고 이해하는 아름다운 과정을 보여주는 책'이란 표현도 책의 한 줄 평으로 적합할 것 같다.
이 책이 또한 흥미로운 것은 남편 번역가와 아내 번역가가 각각 남편과 아내의 분량을 번역했다는 것이다. 그런 만큼 남편과 아내의 생각과 목소리에 더욱 밀착되었을 것이다. 글은 모두 40편. 우리나라에서 이미 출간된 작품일 경우 출판 정보를 실었다.
일본에서만 출간된 책이거나, 글을 이해하는데 필요한 일본의 풍습이나 사건 등이 나올 경우 별도의 설명을 좀 사소하다.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넣고 있다. 그래서 누구나 흥미롭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책 읽다가 이혼할 뻔
엔조 도.다나베 세이아 지음, 박제이.구수영 옮김,
정은문고,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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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이런 제목 어때요?>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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