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년생 김지영》 조남주, 민음사, 2016
김용근
<82년생 김지영>은 정말 쉽게 쓴 소설이다. 그야말로 술술 읽힌다. 나의 경우, 앉은 자리에서 다 읽을 수 있었다. 그러나 나는 이 책을 읽으며 몇 번이고 다시 앞 페이지로 돌아와야 했다.
아무 생각 없이 읽어나갔던 부분들을 뒤에서 다시 생각해보니 '아무것'도 아닌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그것이 우리 문화에서 너무나도 당연해, 여성에 대한 차별 또는 여성 혐오가 아닐 거라고 생각했던 부분이, 다시 생각해보니 엄연한 여성 혐오였다.
그러므로 만일 저자인 조남주 작가가 그 책에 100개의 혐오 상황을 연출했다고 한다면, 여성으로서의 당사자성이 없어, 감수성이 부족한 남성은 약 20여 개의 혐오 상황만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남성은 자기가 읽어낸 것만이 전부일 거라고 착각해, 어쩌면 "내가 보기엔 그렇게 여성혐오적인 게 많지는 않더라"고 말 할지도 모른다. 또는 내 남성 지인이 그랬던 것처럼 말할지도 모른다.
이런 경우 그 남성은 자신의 감수성이 낮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와 반면 그 이상의 감수성을 가진 사람이라면 저자가 의도한 것 이상의 혐오 상황을 찾아낼 수도 있다. 무릇 예술은 수용자에게서 완성되는 법이니까.
따라서 나는 이 책을 읽으며 내 감수성의 한계를 처절하게 실감했다. 남성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벽이 있는 듯 보였다. 남성인 내가 세상 만사에 굳이 불편함을 느끼려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젠더 권력 문제에서 피해의 당사자(여성)가 아닌 나는, 가만 있으면 무엇이 문제인지 모를 것이고 그러면 나도 모르는 새에 누군가는 내게서 상처를 받을 수도 있으니까. 나는 아무런 문제도 없다고 생각(혹은 착각)한 것이, 사실은 문제가 많은 것일 수도 있으니까. 그러지 않기 위해서, 감수성이 부족한 남성은 누구보다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
정리하자면, 자신의 눈에 어떤 혐오 정서가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그게 없는 게 아니라는 말이다. 다만 본인의 감수성이 부족해 찾아내지 못했을 뿐. <82년생 김지영>은 워낙 좋은 책이긴 하다. 감수성의 확장을 위해 남성들 모두 읽을 필요가 있고, 이미 많은 남성이 그러고 있다.
하지만 그거 하나 읽었다고 땡이 아니다. 거기에서 그친다면 무엇도 나아진 게 없을 것이다. 적어도 이 문제에서라면 남성 본인의 해석이 아니라 여성의 해석을 들을 필요가 있다. 이 문제의 당사자인 '여성'들이 이 책을 어떻게 읽었는지 배워야 한다는 말이다.
남성들은 더 겸손해져야 한다.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없는 게 아니다. 다만 당신의 눈 주위만 어두워, 당신만 못 보고 있을 뿐이다.
82년생 김지영 (인터파크 리커버 특별판)
조남주 지음,
민음사,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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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이런 제목 어때요?>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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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년생 김지영> 별로라는 남자들, 독서 방법이 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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