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야스다 정원(?安田庭園) 입구이 장소에서 조선인 두 명이 불에 타서 학살당했다.
오민석
정원을 지나, 지금은 사라졌지만 당시 운하를 연결하는 다리가 있었던 장소로 왔다. 다리의 이름은 미쿠라바시(御蔵橋)이다. 사진을 하나 보여주셨는데 그 사진에는 조선인들의 시체가 유기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역시 충격적이었다.
역으로 돌아오자 가토 나오키 선생님은 마지막으로 말씀하셨다.
"지금도 조선인학살에 대해서 기억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고 잊으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를 잊어버리면 언제든 다시 학살이 발생할지도 모릅니다. 조선인을 멸칭하던 불령선인이라는 단어, 조선인을 죽이라는 구호가 학살 90년을 넘어서 2013년에 헤이트 스피치라는 이름으로 다시금 도쿄의 거리에서 울리곤 했습니다. 우리는 인종, 민족으로 사람을 객체, 비인간으로 만드는 것에 저항해야 합니다. 비록 아직 사람을 비인간화하는 메커니즘은 강합니다. 하지만 연대하고 함께하면서 그것에 저항할 수 있습니다. 저처럼 조선인 학살을 말하고 분노하는 일본인들 역시 많아지고 있습니다."이후 일정은 아사쿠사에 가는 것이었는데 아사쿠사 근처에 있었던 학살에 대해서 정리된 자료를 넘겨주셨다. 아사쿠사는 도쿄의 대표적인 관광지이다. 나도 개인적으로 몇 번이고 찾았다. 그곳에도 참혹한 학살이 존재했다.
한편, 아무것도 없이 그저 메일로 안내를 부탁드린 것이었기에 500엔씩 모아서 작지만 강연료를 드리기로 했다. 정말 좋은 시간에 비해 턱없이 모자란 금액이었다. 그 돈을 받으신 선생님은 한일청년평화인권기행에 후원하신다면서 돌려주셨다. 자기 돈이니까 자기가 쓸 수 있다고 하시면서. 돌려주시면서 하신 말씀이 너무 멋있었다. 존경하는 마음이 한 층 더 커졌다.
조선인 학살의 현장을 거니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가토 선생님과 함께 다닐 수 있었다. 책과 현장의 무게는 달랐다. 6명의 일본 친구, 5명의 한국 친구들과 함께 느끼고 공부하는 시간이 너무 소중했다. 내가 일본을 오가고 공부와 교류를 이어가면서 변화했듯이 친구들도 조금씩 변화해갔음을 알 수 있었다.
가토 나오키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비인간화 메커니즘은 정말 강력하다. 민족, 인종, 성별, 장애유무, 섹슈얼리티, 계급으로 사람들은 하나의 속성으로 환원되고, 또 분리된다. 실존성은 박탈당한다. 국가는 이데올로기적 장치를 통해 사람을 국민으로 호명하면서 끊임없이 객체로 만든다. 국민의 탄생은 비국민의 탄생과 같다. 국민은 비국민의 존재로 증명된다. 경계는 굳건해진다. 그리고 국민임을 증명하기 위해서 비국민을 공격해야 한다.
'나'는 끊임없이 내가 조선인이 아님을, 소수자가 아님을 역설해야 한다. 남성에 의한 여성의 멸시도 그렇게 이뤄진다. 여성을 교환하고 성적 대상으로 만들면서 '그'는 남성연대(homosocial)에서 남성으로 인정받게 된다. 조선인 학살은 일부 일본인의 문제가 아니다. 여성혐오도 일부 남성의 문제가 아니다. 국가의 문제이고, 남성연대 전체의 문제이다. 구조의 문제이다.
한 사람은 어떤 민족이나 성별이라는 구분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훨씬 복잡한 존재다. 저항은 인간 존재가 그렇게 단순하지 않음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 복잡성을 폭력적으로 단순화시키는, 다시 말해 비인간화시키는 사회구조와의 싸움이다. 이는 경계를 허물면서 이뤄질 수 있다. 11명의 '사람들'이 국경을 넘어서 마주한 것처럼.
이번 기회는 11명의 사람들이 민족적 경계를 넘어서 사고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이번 경험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국경을 넘는 동료가 되었다. 이런 기회를 주신 가토 나오키 선생님께 정말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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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월 도쿄의 거리에서>의 저자 가토 나오키 선생님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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