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이] 엄마의 '이름'이 뭐였지?

사랑하는 딸에게 부치는 편지 | 2018년 4월 5일

등록 2018.04.05 08:42수정 2018.04.05 0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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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상연


"연미씨"
"……"


더 큰 소리로,

"연미씨"
"지금 나 부른 거야? 내 이름이 연미였어? 내 이름 경화엄마 아니었어?"

딸아, 그동안 아버지와 엄마는 이름도 없이 살았다. 아버지는 경화아빠가, 엄마는 경화엄마가 이름이었다. 자식을 가진 부모 누구나 다 그렇게 살겠지만 이제는 네 엄마 이름을 찾아줘야겠구나.

상연
연미

네게 편지를 쓰면서 꽤 재미있는 걸 발견했는데 좌에서 우로 읽어도 위에서 아래로 읽어도 상연, 연미다. 이렇게 재미난 이름을 우리는 왜 잊고 살았을까? 왜 경화아빠 엄마라는 이름으로 살았을까? 나의 정체성은 어디 가고 딸의 아버지로 불리며 살았을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어 드라마를 보고 있는 엄마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다가 "연미씨~" 하고 불러보았다.


연애할 때 불러보고 처음 불러봤으니 아버지도 어색하지만, 엄마도 어색한지 나중에야 웃음을 빵 터트린다. 이름을 불렀을 때 엄마의 표정을 보며 그동안 딸의 엄마로 살아오느라 자신을 너무 잊고 살아왔구나 하는 것을 느꼈다. 이제는 너도 결혼을 했으니 지금부터라도 엄마의 이름과 인생을 찾아주어야겠다.

엄마의 이름을 불러준 지 한 달, 엄마는 요즈음 신났다. 얼마 전에는 상상도 못 했던 외국 여행 (베트남)을 아버지도 없이 혼자 다녀오고 제주도나 정동진쯤은 "나 내일 정동진 가." 짧게 한마디 던져놓고 훌쩍 일박 여행을 다녀오기도 한다. 그런 엄마를 바라보니 흐뭇하다. 경화엄마가 아닌 '연미'로서의 생활을 아주 자신만만하게 살아가는구나.


이제부터 "연미씨 연미씨" 이름을 불러주어 엄마 나름대로 인생을 즐기며 살아가도록 힘을 북돋워 줄 생각이다. 1955년 현대문학에 발표한 시인 김춘수 선생의 '꽃'이라는 시다. 평소 아버지가 애송하는 시인데 오늘따라 살갑게 다가오는구나.

-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香氣)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의미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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