핫도그냐고요? 부들부들 떤다고 '부들'입니다

[고양생태공원 생태보고서] 부들연못에서 깨닫는 자연의 섭리와 위대함

등록 2018.04.22 12:00수정 2018.04.22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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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늦가을 고양생태공원 생태교육센터 앞의 부들 연못
늦가을 고양생태공원 생태교육센터 앞의 부들 연못고양생태공원

고양생태공원 생태교육센터 건물 바로 앞에 열 평이 채 안 되는 연못이 있습니다. 콘크리트로 만든 직사각형 인공연못인데 우리는 이곳을 부들연못이라고 부릅니다. 연못을 부들로 가득 채우기 때문입니다. 부들연못은 셋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나무 데크로 공간을 구분해놨는데 특별한 의미는 없습니다.

지난겨울이 엄청나게 추웠다는 것을 이 부들연못이 통해 확실하게 알았습니다. 고양생태공원이 개장하고 처음으로 부들연못이 바닥까지 꽝꽝 얼었기 때문입니다. 그 전에는 얼어도 연못 표면만 얼었는데 작년에는 바닥까지 얼었습입니다.


그래도 바닥까지 얼어 연못에 사는 물고기들과 참게, 말조개가 얼어 죽을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그 혹독한 추위를 이겨내고 살아남은 말조개가 있어 그 끈질긴 생명력에 놀라기는 했습니다.

부들의 끈질긴 생명력

 참게
참게고양생태공원

다른 해보다 유난히 길었던 겨울이 지나고 얼었던 부들연못이 녹았을 때 연못 안으로 들어가 죽은 물고기들을 건져 어종을 확인한 뒤부터 연못을 들여다보는 시간이 늘었습니다. 미세먼지가 심하지 않고 하늘이 말갛게 갠 날은 괜히 그 앞을 서성였습니다.

다 이유가 있습니다. 부들의 녹색줄기가 올라오기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부들의 녹색줄기들이 연못을 가득 채울 날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녹색줄기가 부들연못을 가득 채우면 계절은 봄을 지나 여름으로 넘어가게 됩니다.

부들은 속이 비다시피 한 줄기 때문에 바람이 불 때마다 부들부들 떠는 것처럼 흔들린다고 해서 부들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합니다. 부들은 연못이나 습지에서 자라는 외떡잎식물로 뿌리줄기가 옆으로 퍼지면서 번식합니다. 그 강한 번식력은 확인할 때마다 깜짝깜짝 놀랄 만큼 대단합니다.


 부들
부들고양생태공원

그렇지만 올해는 은근히 걱정했습니다. 확률은 낮지만 지난겨울의 혹독한 추위를 견디지 못하고 부들 뿌리가 얼어 죽었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연못의 수련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도 수생식물의 끈질긴 생명력에 기대를 걸었습니다. 부들이나 수련이 쉽게 죽을 리가 없다고 믿고 싶었습니다. 올해도 부들이 작년처럼 번성해서 부들연못이 생생하게 살아있다는 것을 보여줄 것이라고 믿고 싶었습니다.


역시, 부들은 그 믿음을 저버리지 않았습니다. 4월이 시작되자 부들연못에는 조금씩 생기가 돌기 시작했습니다. 탁하던 연못 물이 맑아지는 변화가 생긴 것입니다. 그러자 연한 녹색 부들 싹이 조금씩 올라오는 것이 보였습니다. 수련 새싹도 귀여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부들연못에서 다시 한 번 수생식물의 질긴 생명력을 확인한 것입니다. 봄은 생명을 품은 계절이 분명합니다.

부들은 뿌리만 남은 채 연못에서 겨울을 납니다. 봄이 되어 날씨가 풀릴 때를 기다리는 것이죠. 부들은 일단 연못 밖으로 모습을 드러내면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랍니다. 녹색줄기 길이가 점점 높아지는 것을 육안으로 금방금방 확인이 될 정도입니다. 아침에 출근할 때 그 모습을 가장 확실하게 알 수 있습니다. 부들은 밤새도록 잠들지 않고 키 크기 운동만 한 것처럼 쑥쑥 자라 있습니다. 

 부들연못에 부들 새싹이 올라오고 있습니다.
부들연못에 부들 새싹이 올라오고 있습니다.고양생태공원

 부들연못에서 수련의 새싹이 올라오고 있습니다.
부들연못에서 수련의 새싹이 올라오고 있습니다.고양생태공원

부들의 물속 길이는 20센티미터 정도 됩니다. 수면 밖으로 자란 줄기 길이는 120~150센티미터 정도인데, 부들이 다 자라면 부들연못은 녹색으로 덮입니다. 눈을 말갛게 씻어주면서 피로감을 말끔히 사라지게 하는 녹색은 싱그러움 그 자체입니다. 사람들은 녹색에서 가장 안정적인 느낌을 받는다는데, 녹색 부들을 보면 맞는 말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녹색동산이 된 부들연못을 보면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기 때문입니다.

진딧물의 습격

아쉽게 부들연못의 녹색을 즐기는 기간은 그다지 길지 않습니다. 자연은 인간을 위한 관상용으로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녹색을 즐기는 기쁨도 잠시, 봄이 깊어지고 초여름 바람이 살랑거릴 무렵이면 녹색부들은 까맣게 변합니다. 진딧물의 습격 때문입니다.

부들의 성장을  기다렸다는 듯이 진딧물들이 꼬여들어 녹색줄기에 새끼들을 다닥다닥 낳아 줄기가 온통 진딧물로 까맣게 덮여 버립니다. 진딧물은 암컷 혼자 새끼를 낳습니다. 이 새끼들이 자라면 어미와 같은 암컷이 되는 거죠.

 부들연못을 가득 채운 부들
부들연못을 가득 채운 부들고양생태공원

'부들연못은 우리 삶의 터전이야. 어서어서 신나게 새끼를 낳자.' 진딧물들의 우렁찬 합창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은 착각마저 들 정도로 부들연못은 까맣게 변해버렸습니다.

처음 부들연못이 검은색으로 변했을 때, 눈앞이 캄캄했습니다. 저걸 어쩌지? 생태공원이 아닌 일반 공원이라면 방제를 하면 됩니다. 살충제를 뿌리면 진딧물을 순식간에 없앨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공원은 생태공원입니다. 인공 방제는 공원이 위기상황이 아니라면 절대로 사용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웠는데, 진딧물을 잡겠다고 방제를 할 수는 없었습니다. 또 진딧물들도 우리 공원을 삶의 터전으로 삼아 살아가는 생태시민이기도 합니다. 자연에서 살아남기 위해 부들에 필사적으로 붙어 있는 진딧물 새끼들을 약품을 써서 없애면 안 됩니다. 그냥 지켜보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진딧물 새끼가 부들에 붙어 있습니다.
진딧물 새끼가 부들에 붙어 있습니다.고양생태공원

진딧물들이 극성을 부리면 무리지어 찾아오는 손님들이 있습니다. 개미입니다. 진딧물 꼬랑지에서 나오는 단물을 빨아먹으려고 개미들이 신나서 찾아옵니다. 이 때 부들연못은 개미와 진딧물의 공생관계를 확인할 수 있는 학습현장이 됩니다. 그것으로 위안을 삼을 수밖에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저처럼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지는 않습니다. 이 시기에 우리 공원을 찾아온 탐방객들은 부들연못을 보고 징그럽다, 무섭다면서 어떻게든 해결하라고 민원을 제기할 때도 있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진딧물이 사라지게 할 수 있을까요? 고민을 해볼까요? 

재미있는 것은 자연에서 시작된 문제는 자연에서 해결된다는 것입니다. 바로 천적입니다. 자연에는 공생관계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천적관계도 있죠. 그렇다면 진딧물의 천적은 누구일까요?

진딧물사냥꾼으로 불리는 무당벌레입니다. 진딧물이 기승을 부리는 것을 지켜보면서 어떤 대책이 필요할까 고민하는 사이에 무당벌레가 한두 마리씩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사이엔가 진딧물이 창궐한다는 소문을 듣고 무당벌레들이 찾아와 부들 사이에 알을 낳았던 것입니다.

진딧물 사냥꾼 무당벌레

 무당벌레
무당벌레고양생태공원

 무당벌레
무당벌레고양생태공원

'어떻게 무당벌레를 잊고 있었을까? 너희들 이제 싹 다 죽었어.' 무당벌레를 보는 순간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무당벌레는 엄청난 식욕을 갖고 있어서 부들 하나에 매달린 진딧물을 먹어치우는 속도가 엄청나게 빠릅니다. 무당벌레가 진딧물 포식자라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되새김질하게 되는 건 그 때문입니다. 놀라운 반전이죠?

무당벌레의 탄생과 함께 부들은 본래의 녹색을 되찾았습니다. 진딧물은 부들의 성장을 기다리다가 알을 낳았고, 무당벌레는 진딧물들의 산란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만일 무당벌레가 진딧물보다 산란시기가 빠르면 먹이가 없어 생존할 수 없을 것입니다. 적절한 시기에 출현하는 천적은 자연의 균형을 유지하는 주요 요인인 것입니다.

부들연못을 지켜보면서 자연의 섭리와 자연의 위대함을 깨닫습니다. 적절한 균형을 맞추기 위해 천적을 만들어낸 자연을 통해 배워야할 것은 무궁무진합니다.

부들연못을 둘러싼 진딧물과 무당벌레의 전쟁은 매년 되풀이됩니다. 첫해에 자연의 섭리를 깨달은 뒤, 부들이 진딧물들에게 점령당해도 걱정하지 않게 됐습니다. 무당벌레가 알에서 깨어나면 한방에 해결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부들은 6월~7월 사이에 꽃이 핍니다. 부들 열매는 여름에 핫도그 모양으로 달립니다. 길이가 7~10cm 정도의 긴 타원형 모양입니다. 이리보고 저리 보아도 영락없는 핫도그입니다. 볼 때마다 갓 기름에 튀겨 고소한 냄새를 풍기는 핫도그가 생각납니다.

 부들
부들고양생태공원

이 핫도그 안에 씨앗이 들어 있습니다. 부들 열매는 무르익을 대로 무르익으면 저절로 터집니다. 씨는 하얀 솜털 같아서 공중으로 날아오릅니다. 민들레 홀씨처럼 바람을 타고 날아가 번식하는 것입니다. 부들 열매가 터져 하늘로 날아올랐다가 다시 내려오는 모습은 마치 눈이 내리는 것 같습니다. 쉽게 볼 수 없는 멋진 풍경입니다.

부들의 놀라운 번식력 덕분에 부들연못이 부들로 가득 찼고, 우리 공원의 계류에도 부들이 번식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부들연못을 조성했지만, 이제는 부들이 너무 많아져 솎아내야 하는 지경까지 이르렀습니다. 하지만 바람을 타고 우리 공원을 벗어난 부들 씨들이 다른 지역에서 끈질긴 생명을 이어나가고 있을 것이 분명합니다.

부들의 번식력이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부들연못이 부들로만 가득 차지 않는 것 역시 자연의 섭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부들연못에 부들만 있으면 밋밋할 것 같아서 수련 몇 개를 넣었는데, 이들도 질긴 생명력과 함께 왕성한 번식력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너희만으로 부들연못을 채울 수 없지. 우리도 있거든.' 수련들은 아름답고 화려한 꽃을 자랑하면서 부들연못에서 색다른 존재감을 보여줍니다. 이들은 서로가 있기 때문에 생존 경쟁을 하면서 더 놀라운 생명력과 번식력을 보여주고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부들 열매가 농익어 터지면 옆구리가 터진 핫도그가 돼 부들의 아름다움은 사라집니다. 옆구리가 터져 모양이 망가진 부들 열매는 아무리 예쁘게 봐주려고 해도 예쁘지 않습니다. 사람이나 짐승이나 나무나 풀이나 전성기가 지나면 빛이 바라기 마련이죠.

그래도 우리는 부들을 베지 않고 그냥 놔둡니다. 부들은 순수한 녹색을 잃고 선 채로 죽어가지만, 그 부들을 삶의 터전으로 삼고 사는 곤충들이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부들은 존재하는 것만으로 많은 곤충을 먹여 살리고 있습니다.

진딧물과 무당벌레 말고도 부들을 서식지로 삼고 있는 곤충들이 여럿 있습니다. 거미나 사마귀들이 바로 그들인데 알을 낳아 부들에 붙여놓습니다. 그러니 부들이 죽었다고 베어내면, 이들은 삶의 터전을 잃게 됩니다.

자연의 순환

 애어리염낭거미
애어리염낭거미고양생태공원

부들연못에서 빼놓을 수 없는 존재가 하나 있습니다. 애어리염낭거미라는 특이한 이름을 가진 친구입니다. 염낭이라는 이름에서 딱 느낌이 오지요? 주머니라는 뜻입니다. 애어리염낭거미는 부들 잎에 알을 낳은 다음 잎을 둥글게 감싸고 입구를 거미줄로 막습니다. 바깥세상과 완벽하게 차단된 집을 만드는 것이죠. 이게 주머니 모양이라서 염낭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것입니다.

그럼 주머니에 갇힌 어미는 어떻게 될까요? 빠져나올 구멍을 스스로 막아버린 어미는 이곳에서 생을 마감합니다. 자신의 몸을 새끼들의 먹이로 제공하면서.

새끼 거미가 부화하면 주머니 안에서 어미의 몸을 파먹으면서 성장합니다. 성충이 되면 주머니를 빠져나와 어미가 살아간 길을 그대로 따라갑니다. 혼인을 하고 주머니를 만들어 알을 낳고 제 몸을 새끼의 먹이로 제공합니다. 세상에 이런 모성애를 지닌 존재가 몇이나 될까요? 숙연하기도 하고 무섭기도 합니다. 어미의 희생 없이 자손을 번식할 수 없는 애어리염낭거미의 슬픈 운명 때문입니다.

부들은 겨울에 베어냅니다. 매서운 추위가 찾아와 부들연못의 물이 얼기 시작하면 번식을 끝낸 곤충들도 자취를 감춥니다. 저마다 겨울을 나기 좋은 곳으로 떠나는 것이죠. 그 때에 비로소 삶의 주기를 마친 부들을 베어냅니다. 그래야 이듬해 봄에 새로운 부들이 올라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생명을 지닌 것들은 탄생과 번식, 소멸을 반복하면서 존재를 이어갑니다. 그런 자연의 순환을 고양생태공원에서 매 계절마다 매 년마다 직접 보고 느끼면서 체험합니다. 그러면서 고양생태공원이 갖는 의미를 되새깁니다. 이런 공원이 많아져야 한다는 생각도 합니다. 또 자연 앞에서 사람은 한없이 겸손해져야 한다는 생각도 같이 합니다.
#고양생태공원 #부들 #진딧물 #애어리염낭거미 #부들연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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