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아버지, 염쟁이 유씨, 작은딸
조상연
어느 해 겨울 대학로, 아버지보다 먼저 세상을 뜬 아들을 자신이 직접 염을 하며 독백형식으로 이어가는 1인 연극 '염쟁이 유씨'를 함께 보았지. 소극장 맞은편 치킨집에서 맥주를 홀짝이며 네가 그랬어.
"나는 아버지보다 아주 오래 살 거야. 그게 제일 큰 효도 같아. 히~"
아버지가 사람의 주검을 처음 본 게 중학교 2학년 너의 증조할머니 돌아가셨을 때였다. 아버지가 도착했을 때는 이미 염이 끝나서 시신은 못 보았지만, 장례를 마치고 죽음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며 반 년 동안 정신과 치료를 받기도 했다. 남들은 할머니 정 떼려고 그런다지만 아버지는 죽음 그 자체가 무서워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진저리를 치고는 했다.
그 뒤로도 꽤 많은 죽음을 지켜보았는데 딱 한 번 임종을 지켜본 적이 있었다. 아! 숨이 끊어질 듯 말 듯 그 고통의 단말마는 지켜보는 사람이 더 괴로울 지경이었다. 우리는 이렇게 타인의 죽음이라는 간접경험을 통해서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숙명과 같은 죽음을 자신은 비껴갈 것이라며 엄청난 착각을 하는 사람들이 제법 많다.
자신은 물론 삼대를 내려써도 다 못 쓰고 죽을 만큼 많은 것을 가졌으면서 더 욕심을 부리는 사람들이다. 빌딩 아홉 채 가진 사람이 열 채를 못 채웠다며 가난하단다. 자신의 삶이 유한하다는 것을 알면 그렇게까지 욕심을 부릴 이유가 없지 않겠느냐는 게 아버지 생각이다.
살아 있을 때 써야 내 돈이다. 포천에 가면 수만 평짜리 공원이 많은데 그 공원의 임자는 과연 누구일까? 공원의 소유권자로 등기된 사람도 관리인도 진짜 주인은 아니다. 등기상의 주인은 비가 와도 걱정, 눈이 와도 걱정, 직원들 어떻게 하면 월급 적게 줄까 걱정, 단 하루도 걱정 끊일 날이 없다. 공원에서 산책하며 즐기는 네가 바로 진짜 주인이다. 세상은 즐기는 사람이 임자지.
아버지는 가끔 특별한 이유 없이 매일 보아오던 나무나 돌에게서 무심한 흐름 속에 감동으로 다가오는 순간을 자주 경험한다. 녹슨 자전거, 매연에 찌든 빨간 벽돌, 삼거리 커피집 테라스 아래 보도블록을 깨트려가며 질기게 꽃을 피운 민들레, 매일 똑같은 출퇴근길에 마주치는 것들이지만 "언제부터 여기 있었지?" 생생하게 다가오는 순간이 있다.
오막살이 한 채 가진 사람이 스무 층 빌딩 가진 사람과 견주지 않고 넉넉지는 않지만 이만하면 되었다는 만족과 여유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인간 본연의 무심한 마음으로 '그냥' 보아야만 느낄 수 있는 감동이다. 4월의 대학로 마로니에 그늘 아래, 새잎이 돋아나며 헌 잎이 떨어진다. 떨어지는 잎이 굴러가는 모습을 보며 바람의 길을 짐작하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아비 말 잊지 마라. 살아서 써야 내 돈이다. 돈은 쓸 만큼만 벌면 된다. 삶은 짧고 추억은 깊으니 번 만큼 적당히 써가며 살아라. 남들 가지고 있는 것이니 나도 가져야 한다는 생각도 버려라. 남들은 네가 가지고 있는 무형의 것을 더 부러워하는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그들이 부러워하는 무형의 것들은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이 많기 때문이다.
친일파 시인이지만 시인이라 부를 수밖에 없는 노천명 시인의 시 한 편 감상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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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없는 여인이 되어
노천명
어느 조그만 산골로 들어가
나는 이름 없는 여인이 되고 싶소
초가지붕에 박넝쿨 올리고
삼밭엔 오이랑 호박을 놓고
들장미로 울타리를 엮어
마당엔 하늘을 욕심껏 들여놓고
밤이면 실컷 별을 안고
부엉이가 우는 밤도 내사 외롭지 않겠소
기차가 지나가 버리는 마을
놋양푼의 수수엿을 녹여 먹으며
내 좋은 사람과 밤이 늦도록
여우 나는 산골 이야기를 하면
삽살개는 달을 짖고
나는 여왕보다 더 행복하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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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이] 삶은 짧고 추억은 깊으니 돈은 쓸만큼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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