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까맣게 타고 마른 얼굴의 낯선 나. 올베이로아(Olveiroa)에 도착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고지를 넘어야 했다. 고지에서 한 컷! 그곳에서 처음으로 바다를 봤다.
차노휘
오늘 7시간 동안 34km를 걸었다. 오전 내내 먹구름이 끼고 신선한 바람이 불었다. 구간은 지리산둘레길 '상' 정도 난이도다. 오르막 숲길이 많다. 처음으로 바다를 본 길이다. 산세도 전에 걸었던 곳과 다르다. 제주도 곶자왈처럼 소나무 숲에 고사리가 울창하다. 아마도 바다가 가까워 선지도 모르겠다. 오전 내내 흐리다가 목적지 2시간을 남겨 둔 지점부터 햇살이 내리쬐었다. 눈부신 것만 빼고는 시원했다.
선크림을 바르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냥 뒀다. 얼마나, 탈까 싶었다. 목적지 알베르게에 도착해서 샤워하고 거울을 봤더니 이마가 까맣게 번들거렸다. 선글라스 쓴 부분을 제외한 곳은 더 새까매졌다. 판다의 다른 버전이었다. 집이었다면 멜라닌색소가 생길까 봐 호들갑 떨며 얼굴에 팩을 얹었을 것이다. 거울 속의 나는 실실 거리며 웃고 있었다. 언제 이렇게 타볼까, 라고 하면서.
집에서 입고 온 옷도 한 치수 정도 커졌다. 한 달 내내 빨고 입고 빨고 입고 해서 보풀도 일었다. 며칠만 더 입으면 된다. 다 걷고 나면 살랑살랑 원피스를 사서 입고 빨간 립스틱을 바르고 광장 야외 카페에서 근사하게 타파스(tapas)에 상그리아(sangría)를 마셔볼까? 나는 걷기 시작한 뒤부터 외모에 신경 쓰지 말자고 했으면서도 내 본능은 그렇지 않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