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상연
엄마에게 작업복 좀 챙겨달라며...
"내일 깜박 잊고 작업복 안 챙겨가면 큰일난다. 짤리면 갈데도 없는데"
"왜 갈 데가 없어? 집으로 오면 되지"
"그러게! 집이 있었구나. 하하"
엄마와 눈을 맞추며 웃다가 문득 김명기 시인의 '그런 날 있었는지' 시가 생각났다. 이 시를 왜 기억하느냐면 아버지는 결혼한 뒤로 단 한 번도 집이 싫어 빙 돌아간 적이 없었기 때문에 시를 읽으며 피식 웃었던 일이 있다. 아버지에게 집이란 아내가 있고 두 딸이 있는 언제나 포근하고 편히 쉴 수 있는 그런 공간이었다.
20대 후반, 주말 부부생활을 잠깐 한 적이 있었는데 월요일 출근하려고 눈을 뜨니 네가 아버지 얼굴을 조물락거리고 있더구나. 깜짝 놀라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아빠 도망갈까봐"
그 말을 듣는 순간 가슴은 쿵 내려앉았고 그날로 사표를 던지고 서울로 돌아오는데 고속버스 안에서 바라보는 풍경이 왜 그렇게 멋지던지! 일자리도 안 구하고 사표를 던졌으니 다음날부터 일자리를 구하러 다니는데 충북 음성의 전 직장에서 받던 대접 그대로 받으려니 그게 어디 쉬워야 말이지? 할 수 없이 스스로 월급을 30%나 내리고 과장급에서 평사원으로 일자리를 구했지만 눈곱만치도 후회하지 않았다.
"왜 갈 데가 없어? 집으로 오면 되지."
엄마는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구나. 갈 곳 없다는 아버지의 말은 직장을 새로 구하기가 힘들다는 이야기였지만 엄마도 몰라서 "왜 갈 곳이 없어? 집으로 오면 되지"라고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너도 이제는 결혼을 했지만 너에게도 네 남편에게도 집은 어서 가서 쉬고 싶은 그런 곳이어야지 집으로 돌아가기 싫어 멀리 돌아가든가 내 집이 아닌 듯 그냥 지나쳐버리는 그런 곳이 되어서는 안 된다.
편히 쉬고 싶은 곳, 돌아와서 침대 위에 몸을 던지면 몸과 마음이 편해지는 그런 곳, 세상 모든 사람이 꿈꾸는 집이지만 '그런 날 있었는지' 시에 공감하는 사람이 많은 걸 보면 꼭 그렇지도 않은 모양이다.
어떤 일이 있어도 집은 돌아가고 싶은 곳이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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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날 있었는지
김명기
집으로 돌아가기 싫어
가급적 아주 먼 길을 돌아가 본 적 있는지
그렇게 도착한 집 앞을
내 집이 아닌 듯 그냥 지나쳐 본 적 있는지
길은 마음을 잃어
그런 날은 내가 내가 아닌 것
바람이 불었는지 비가 내렸는지
꽃 핀 날이었는지
검불들이 아무렇게나 거리를 뒹굴고 있었는지
마음을 다 놓쳐버린 길 위에서
들리지도 보이지도 않는 날
숨쉬는 것 조차 성가신 날
흐린 달빛 아래였는지
붉은 가로등 아래였는지
훔치지 않은 눈물이 발등 위로 떨어지고
그 사이 다시 집 앞을 지나치고
당신도 그런 날 있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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