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열한 시 넘어 김치 담그기가 끝났어요. 때깔은 끝내주게 고운데 짜고 질긴 진정 ‘거친 김치’가 탄생했죠.
조혜원
체험이라고 하기엔 정말 많은 일들이 이어지고야 맙니다. 휴식여행이라 해놓고 끝없이 펼쳐지는 일거리에 너무 죄송하기만 했어요. 게다가 거친 푸드들이 소금에 너무 절여진 나머지 소태가 따로 없네요. 이미 엎질러진 물이라 담을 수도 없고. 열심히 자라준 채소들에게 미안해서라도, 정성껏 뽑고 다듬어준 손님들께 죄송해서라도 열심히 마무리를 했답니다.
밤 열한 시 넘어 드디어 김치 담그기가 끝났어요. 때깔만큼은 끝내주게 고운데 짜고 질긴 진정 '거친 김치'가 탄생했죠. 텃밭에 자라는 채소들 바라보며 한여름 열무김치랑 봄무 깍두기 먹을 기대감에 혼자 푹 젖어 있었건만, 아주 푹 익혀서 겨울에나 먹어야 되겠다는 한 언니 말씀이 뒤따르네요.
어느 때보다 힘겨운 노동을 마친 다음 날, 나름 밤에 일찍 누우러 갔던 남자 두 분은 또 일을 하셔요! 고구마밭부터 온 텃밭에 물주고 풀 뽑고. 더구나 설비 기술자인 한 분은 수도꼭지 새로 달아주고, 전기 스위치랑 세면대도 손봐주고, 허름한 상까지 매만져 주니 산골살림이 단박에 훤해졌지 뭐예요.
"이렇게 많이 일하고 가도 되나요?^^"기분은 한껏 좋지만 여지없이 죄송하니 요런 말만 되풀이하고 있네요. 해드릴 수 있는 건 오로지 밥상뿐이니 나물비빔밥과 채소 비빔국수로 이 마음을 대신합니다. 건강 밥상 맛나게 챙겨 먹고는 방화동 휴양림 용소에 올라 한껏 웃고, 쉬고, 물놀이까지 마치고서야 산골 휴식여행은 마무리가 됐어요.
이번 휴식여행 시작 전, 오시는 분들과 단체 카톡방을 열었는데 한 분 한 분 잘 돌아갔노라 알려주고 사진도 올리고 감상까지 남겨주니 함께한 시간이 애틋하게 되살아나 정말 마음이 짠합니다. 다들 삶터로 일터로 돌아가 해야 할 일도 많을 텐데요. 체험이라는 핑계로 제가 했어야 할 산골살림들을 떠넘긴 것만 같아서 다시 또 미안한 마음이 흘러넘쳐요. 그럼에도 또 제게 힘을 주시는 분들.
"살아내느라 힘든 일상에서 조금 비켜서니 다시금 살아갈 힘을 받은 유쾌한 경험이 되었네요.^^"제 이름으로 엮은 책 <이렇게 웃고 살아도 되나>에 담긴 이야기는 처음부터 '살아가는 순간순간을 사랑하며 살고 싶어서' 쓴 글이었어요. 제가 느낀 작은 행복을 한 사람이라도 더 만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출간'이라는 용기도 낼 수 있었고요.
첫 출산에 버금가는 좋은 소식을 같이 나누고, 힘겹게 세상에 나온 '책 아이'가 무럭무럭 자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앞으로도 혼인 잔치 치르듯 책을 알리는 재미난 하루하루를 열어 갈까 해요.
하긴, 축하하고 응원해 주는 분들이 벌써부터 이렇게나 많으니 그 마음들만으로도 이미 대박 백 번은 난 기분이에요. 이제부턴, 이 책 만드느라 베어낸 나무들에게 미안하지 않을 수 있도록 제 스스로 조금씩 퍼뜨릴 길을 찾아보렵니다.
서울 떠날 때 오래 정든 앞집 언니가 준 컵이 있어요. 직접 글씨를 새긴, 세상에 하나뿐인 컵이랍니다. 아는 이 없이 찾아든 산골짜기에서 나를 지키는 수호천사 같기만 했던 '산골짜기 혜원' 컵을 가만히 바라봅니다.
파란 하늘과 햇살로 목욕한 숲이 반기는 삶터. 이곳에서 맞이하는 하루하루가 오늘따라 사무치게 고맙고 행복하게 다가옵니다. 마음속에서 저절로 이런 목소리가 흘러나오네요.
"산골짜기 혜원, 소중한 사람들이 있기에 이렇게 웃고 살아갈 수 있다는 걸 잊지 마. 작은 행복 나누기,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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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쁘게 달려가는 친구들아, 손잡고 같이 가보자~" 산골 휴식여행을 더 많이 알리고자, 따스한 봄 햇살 아래 취나물, 고사리 응원 받으며 나무와 풀, 바람과 새랑 함께 노래했어요. ⓒ 조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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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기타 치며 노래하기를 좋아해요. 자연, 문화, 예술, 여성, 노동에 관심이 있습니다. 산골살이 작은 행복을 담은 책 <이렇게 웃고 살아도 되나>를 펴냈어요.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이런 제목 어때요?>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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