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지해녀가 내쉰 숨비소리를 듣다

육지해녀협동조합

등록 2018.06.19 06:56수정 2018.06.19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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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육지해녀협동조합 유진호 이사장
육지해녀협동조합 유진호 이사장 오시내

해녀가 물질을 마치고 물 밖으로 올라와 가쁘게 내쉬는 숨소리를 숨비소리라 한다. 바다가 품은, 자연이 만든 귀한 해산물을 채취하기 위해 해녀들은 숨을 참은 채 바닷속을 탐험한다. 우리가 흔히 들었던 '해녀'라는 이름 앞에 '육지'라는 단어가 붙었다. 19세기 말부터 제주를 떠나 경상도, 충청도, 강원도, 전라도 등지로 출가 물질을 나가 생계를 이어 가고 있는 여인들이 바로 육지해녀다. 육지해녀들은 지금은 가쁜 숨비소리를 내쉬며 물질하고 있다. 육지해녀협동조합은 육지해녀가 내쉬는 숨비소리를 담아 사회와 함께 공유하려 한다.

건강한 유통구조로 사회와 소통하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는 말이 꼭 들어맞았다. 육지해녀협동조합을 만나기로 한 날 마침 유성장이 열렸다. 생기 있는 시장 골목을 찬찬히 걸으며 육지해녀협동조합이 운영하는 '엄마가 해녀' 간판을 찾았다. 오래지 않아 흰 바다에서 물질하는 해녀 그림을 만났다.

유성시장 안에 자리한 육지해녀협동조합은 건강한 해산물 유통구조로 해녀와 소비자가 함께 웃는 사회를 만들고자 한다.

"안승현 초대이사장의 어머니가 정말 육지해녀세요. 자연스레 육지해녀의 처우에 관심을 가지게 됐죠. 어떻게 하면 육지해녀들의 처우를 개선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건강한 유통구조로 사회와 함께 소통해 보자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유진호 이사장이 또렷하지만 차분한 목소리로 육지해녀협동조합을 설명했다. 지난 2016년 제주해녀가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으로 등재됐다. 하지만 제주 지역 외에서 활동하는 육지해녀는 같은 해녀임에도 유산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제주해녀가 유산으로 인정받으며 잠수복 등을 지원받는 반면, 육지해녀는 어떠한 지원도 없이 오로지 혼자서 모든 경제적 부담을 떠안는다. 안승현 초대이사장은 어머니의 상황을 보며 의문이 들었다. 이를 사회적 문제로 받아들인 사람 하나둘 모이기 시작했고 그렇게 육지해녀협동조합이 만들어졌다.

"육지해녀의 처우를 개선하는 게 저희 목표입니다. 육지해녀가 채취한 수산물을 구매하고 판로를 개척해 소비자에게 전달하는 일을 하는 거죠. 유통구조에서 발생하는 비용을 줄여 합리적으로 건강한 재료를 소비자에게 전달해 육지해녀와 소비자가 함께 소통하는 특별한 가치를 만들고 싶어요."


육지해녀협동조합은 사업을 통해 얻은 수익으로 해녀들이 고질적으로 겪는 잠수병을 치료하는 병원 협의체 구조를 만들고자 한다. 이와 함께 심리 상담을 진행해 나가는 게 목표다.

 육지해녀협동조합 전복장
육지해녀협동조합 전복장 오시내

엄마가 해녀에요


육지해녀협동조합이 자신 있게 선보이는 수산물은 '비싼 해산물'이라 불리는 자연산 전복이다.

"안승현 초대이사장이 대전에 와서 깜짝 놀랐대요. 어머니가 해녀다 보니 자연산 전복이 흔한 음식이었는데 다른 지역에서는 터무니없는 가격으로 팔리고 있었던 거죠. 사람들이 자연산 전복을 비싼 음식이라며 부담스러워 하는데, 자연산 전복은 해녀가 숨을 참으며 채취한 거예요. 그 노력을 생각하면 결코 비싼 음식이 아니죠. 그런데 유통과정에서 부대비용이 붙다 보니 먹기 부담스러워질 정도로 가격이 높아지고 말았어요. 소비자가 외면하다 보니 해녀들은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요. 그래서 유통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용을 줄여 소비자의 오해를 풀어보자 생각한 거예요."

육지해녀협동조합이 판매하는 전복은 일반 유통 전복보다 2~3만 원 정도 저렴하다. 해녀가 채취한 걸 직접 받아 판매해 유통 비용을 절감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신선도 유지를 위해 오전에 작업한 전복을 바로 발송해 당일에 받아 볼 수 있게 한다. 그렇다 보니 정말 자연산 전복이 맞는지 의심하는 사람도 많다. 그때마다 유진호 이사장은 "엄마가 해녀예요"라고 말한다며 웃어 보였다.

육지해녀협동조합은 발송 외에도 사회적협동조합 품앗이마을 매장에서 수산물을 판매하며 소비자를 만나고 있다. 유통기한이 짧은 수산물의 특징을 고려해 그날 남은 수산물을 관평동에 자리한 복지재단에 기부하며 재고를 순환한다. 소비자에겐 신선한 먹거리만 제공하고 더불어 어려운 이웃과 함께 공존하는 방법이다.

수산물 도소매 외에도 다양한 사업을 진행한다. 건강한 식재료로 생선구이 도시락을 만드는 '엄마가 해녀'도 육지해녀협동조합의 작품이다. 이와 함께 전복장과 새우장 등을 개발해 소비자가 가정에서 육지해녀가 채취한 수산물을 즐길 수 있게 한다. 이를 위해 즉석가공식품 허가도 마친 상태다. 현재는 제조 시설을 구해 더 안정적인 체계를 구축하며 유통과정에 힘을 싣고 있다.

"1인 가구나 신혼부부 같은 경우 가정에서 생선을 조리해 먹기 힘들잖아요. 건강한 음식보다 편의점 도시락을 사 먹는 경우도 많고요. 저렴한 가격에 건강한 해산물 도시락을 판매하면 소비자 입장에서도 부담을 느끼지 않을 것 같았어요. 현재는 배달의민족 어플에도 등록해 간편히 도시락을 즐길 수 있게 하고 있습니다."

 육지해녀협동조합 고등어구이 도시락
육지해녀협동조합 고등어구이 도시락 오시내

구성원, 생산자, 소비자가 공존하다

육지해녀협동조합은 직원과 생산자(해녀), 소비자(가맹점)가 함께하는 다중이해관계자협동조합이다. 현재 충남 태안에 거주하는 해녀 30여 명이 생산자조합으로 함께하고 있다. 또한, 노은동에 자리한 '전복집'은 육지해녀들이 채취한 해산물을 구매하는 소비자조합으로 함께한다.

이들이 협동조합 형식으로 기업을 꾸리게 된 데에는 개인적인 경험이 담겨 있다. 불안정한 노동구조로 많은 사람이 부당해고를 당하거나 임금체불을 겪는 모습을 보며 구성원이 존중받는 건강한 기업 구조를 생각했다. 기업인을 중심으로 운영하는 1인 체제보다 구성원이 자유롭게 의견을 얘기하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도모하는 구조를 만들고 싶었다. 이와 함께 생산자조합, 소비자조합과 결합해 공존하는 사회구조를 만들고 싶었다.

"주는 게 있으면 가는 게 있다. 저희는 이게 이치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이익이 나서 잘살면 사업을 위해 협력한 사람도 잘 살게 되어야 하잖아요. 그렇게 모두가 공존하고 싶어 협동조합으로 회사를 꾸리게 됐어요. 1년 차 협동조합이다 보니 아직은 어려운 부분도 있어요. 항상 기쁜 일만 있는 건 아니지만, 아직은 마냥 즐거워요. 협동조합으로써 도전하고 싶은 일도 많고요."

육지해녀협동조합은 수산물생산이력제 구축에도 욕심을 내고 있다. 어느 지역에 사는 해녀가 채취했는지, 언제 해산물을 채취했는지 등을 바코드에 기록하고, 소비자가 등록된 정보를 어플로 확인하는 시스템이다. 이를 통해 투명한 먹거리 유통 시스템을 구축하면, 방사능 문제 등으로 수산물 구매를 망설이는 소비자도 안전한 제품을 믿고 먹을 수 있다. 더불어 해녀도 수입산이 밀려드는 수산물 시장에서 건강한 먹거리 제공으로 수익을 얻을 수 있다. 이와 함께 육지해녀가 제주해녀와 같이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으로 등록되도록 다양한 홍보 활동을 펼칠 계획이다.

"대전에서 해녀협동조합을 한다는 게 어찌 보면 뜬금없어 보일 수도 있어요. 하지만 대한민국 중심에 자리한 대전이 인프라를 형성하기 가장 좋은 위치라고 생각해요. 해녀들이 합당한 대우를 받고 소비자가 바른 먹거리를 즐기는 사회. 모든 조합원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 만큼 열심히 해 보고 싶어요."

 육지해녀협동조합 조합원
육지해녀협동조합 조합원 오시내

#육지해녀협동조합 #엄마가해녀 #사회적경제연구원 #협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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