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도르마라이 <열정>
박초롱
모든 것이 완벽해! 책을 집어 들고 푹신한 소파에 몸을 묻었다.
"오전 나절, 장군은 양조장에서 시간을 보냈다. 그는 발표하기 시작한 포도주 통 두 개를 살펴보러, 아침 일찍 포도 재배인과 함께 그곳에 내려갔다."
채 한 장이 넘어가기도 전에 문득 무음으로 바꾼 핸드폰이 생각났다.
'오늘 급하게 연락 올 일이 없었나?''그러고 보니 내일까지 카드뉴스 스토리를 짜달라고 했었는데. 내일 다 할 수 있을까?''축제 파트너들에게 파트너 제안서를 보낸 건 답변이 왔을까?'눈은 소설 속 글자를 더듬고 있었지만 정신은 다른 곳에 가 있었다. 문장과 문장 사이에서 멍하니 넋을 놓고 있기도 했다. 소화되지 않은 단어들이 길을 잃고 머릿속을 헤맸다. 이러다간 간신히 낸 하루의 휴가를 일 걱정으로 날려버릴 수도 있었다. 그간 집중력이 약해진 스스로를 탓하며 다시 소설 속 한 문장 한 문장에 집중했다. 단어 하나하나를 꼭꼭 씹어 삼키려 노력했다.
그런데 어라? 이번엔 음악이 독서를 방해했다. 몰리 버치의 음악은 자신을 들어달라는 듯 <열정>을 비집고 들어왔다. 비 오는 날 창문을 활짝 열어놓고 들으면 좋은 음악이었는데 독서에는 좋지 않은 것 같았다.
결국 음악을 끄고 이미 다 녹아내린 카페라테를 싱크대에 부었다. 핸드폰을 보지 않으려 애쓰며 다시 소파에 앉았다. 소설 속에서는 아직 채 한 계절도 지나지 않고 있었다. 느린 전개가 갑자기 짜증스러웠다.
언제부터 책 한 권 느긋하게 읽기를 힘들어 했는지 모르겠다. 한 문장 한 문장이 지나가는 게 아까워 최대한 천천히 읽던 책도 읽었는데 말이다. 주인공이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면 같이 숨을 죽이던 때가, 책을 덮고 나서 한 생을 다 살아버린 듯 깊은 한숨에 젖었던 때가 생각났다.
산도르 마라이의 필력과 흡입력 있는 스토리 덕분에 나의 산만함에도 결국 그 날 <열정>을 다 읽을 수 있었다. 오랜만에 맛있는 음식을 먹은 것처럼 기분이 좋았다. 핸드폰을 열었지만 나를 긴급하게 찾는 메시지 같은 건 와있지 않았다. 당연한 일이었다. 무엇이 그렇게 불안했을까? 책 한 권을 여유롭게 읽지 못할 정도로?
'그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