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가는 게 너무 즐겁다는 우리 아들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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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가는 게 너무 즐겁다는 우리 아들 이야기다. 한 달에 한 번 집에 올까 말까고, 금요일 밤늦게 와놓고선 토요일 아침부터 엄마 아빠 무안하게 학교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하는 무심한 녀석이다. 아무리 가족보다 또래가 좋을 나이라지만, 집보다 학교가 더 좋다고 말하는 아이가 부모로서 내심 서운하기까지 하다.
아이는 올해 고1로, 집을 떠나 객지의 한 특성화고등학교에 다니고 있다. 친구들이 지금도 '공부 잘하는 모범생'으로 기억할 만큼 성적도 좋고 학교생활도 원만했지만, 중학교 3학년 여름방학 무렵 일반 인문계고등학교에는 가지 않겠다고 선언해버렸다. 바로 옆 고등학교에 다니는 형들의 일상을 접하면서 자신은 그렇게 3년을 보내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그의 눈에 비친 고등학생들은 '공부하는 기계'였고, '생각 없는 좀비'였다. 등굣길 만나는 형들은 늘 피곤함에 전 모습이었고, 점심시간 급식소에서 줄 설 때도 연신 하품을 해댔다고 떠올렸다. 온종일 교실에 갇혀 책과 씨름하다 보니, 일주일에 한 시간인 체육시간에 운동장에서 뛰어다니는 모습이 흡사 좀비들이 몸부림치는 것처럼 보였다고 했다.
축 처진 어깨와 게슴츠레 퀭한 눈. 그가 고등학생 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모습이다. 고등학교 3년은 오로지 대학에 가기 위한 준비 과정이라는 통념과, 누구라도 견뎌내야 하는 홍역처럼 당연시하는 걸 납득할 수 없다고 했다. 대체 대학이 뭐기에 무쇠솥도 녹인다는 이팔청춘의 시간을 하나같이 저렇게 보내야만 하는지 따져 묻기도 했다.
"'기계'처럼, '좀비'처럼 살고 싶지 않아요. 다시 못 올 고등학교 학창시절, 하고 싶은 것 마음껏 해보고 싶어요. 그러다 보면 적성과 재능도 발견하고 배움에 대한 갈증이 생길 테니, 그때 대학엘 가도 늦지 않을 것 같아요. 어쨌든 대학 진학을 전제로 공부하진 않으려고요."조금 일찍 철이 든 고1 아이는 '일단' 대학 진학을 포기했다. 대학을 거부하겠다는 게 아니라, 나중에 필요를 느낄 때 진학하겠다는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지금 그가 다니는 학교는 최근 몇 년 동안 졸업과 동시에 대학에 진학하는 학생들의 비율이 채 50%를 넘지 않는다고 했다. 대학 진학에 대해 그와 생각을 함께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뜻이라고 해석했다.
그는 학교생활이 즐거움의 연속이라며 자랑을 늘어놓았다. 중학교 시절 틈날 때마다 기타를 가르쳐주겠다고 해도 듣는 시늉조차 않더니만, 언제 그랬냐는 듯 전자기타를 사달라고 떼를 쓰는 지경이 됐다. 뜻 맞는 친구들끼리 밴드를 조직해 점심시간과 방과 후에 동아리방에 모여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연습하는 모양이다. 이따금 식사시간조차 놓칠 때가 있다고 한다.
함께 공을 차는 즐거움도 빼놓을 수 없다. 느닷없이 인문계고등학교에 가지 않겠다고 했을 때, 아마도 축구를 마음껏 할 수 없다는 것 때문일 거라고 여겼을 정도로 내로라하는 축구광이다. 지금껏 스마트폰 사달라는 말을 단 한 번도 꺼낸 적 없어 그나마 다행이었지만, 돈으로만 따지면 계절마다 사서 쟁이는 축구화가 훨씬 더 부담스러웠다.
얼마 전 지역 대표 선발을 위한 대회에 출전하였는데, 승패를 떠나 여느 친구들처럼 인문계고등학교에 진학했더라면 누리지 못했을 호사라면서 뿌듯해했다. 대회 준비를 위해 선배들과 이른 아침부터 모여 함께 연습하고, 경기를 통해 여러 고등학교 친구들을 사귈 수 있어 행복하다고 말했다. 학교 울타리 밖 친구들이 많다는 게 그의 첫손에 꼽는 자랑거리가 됐다.
토론 중심의 수업 방식에도 만족해 했다. 수업시간에 종종 교과서를 잠시 덮어두고, 시사나 고전 등을 소재 삼아 토론을 벌인다는데, 최근에는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의 명저 <월든>을 소재로 대안적 삶에 대한 토론을 벌였단다. 배경 지식이 부족해도 각자 자신의 생각을 스스럼없이 발표하는 친구들의 당당한 모습이 무척 부러웠다고 했다.
당장 책을 구해 읽고 싶게 만든 시간이었다면서, 중학교 때부터 꿈꾸었던 수업이라고 말했다. 어떤 과목이든 친구들과 모둠별로 모여 토론을 준비하는 게 예습이라며, 공책에다 풀고 베끼고 확인하는 그런 과제가 아니어서 좋단다. 여느 학교처럼 수능을 대비했다면 결코 시도할 수 없는 수업이고 과제라면서 스스로 뿌듯해했다.
학교에 가면 항상 즐거운 일이 있다고 생각하니, 딱히 주말이나 휴일을 기다리지도 않는다. 온종일 수업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운동장에 나가 공을 차거나 동아리방에서 악기 연습을 할 수 있다는 생각에 늘 들떠 있는 모습이다. 음악과 체육에 별 관심이 없는 한 친구는 집에 가지 않는 주말이면 종일 도서관에 가서 제집 안방인 양 책과 함께 뒹군다고 한다.
"교육을 다수결로 결정하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