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회찬 선배님, 그렇게 가셔야 합니까

[추모] 황망하게 가는 걸음 잠시 멈추고 벗들이 따르는 술 한 잔 받으시길

등록 2018.07.25 15:59수정 2018.07.25 15:59
1
원고료로 응원
노회찬 빈소에서 눈물 쏟은 조국 수석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이 24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신촌 세브란스 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의 빈소를 찾아 조문하며 흐느끼고 있다.
노회찬 빈소에서 눈물 쏟은 조국 수석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이 24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신촌 세브란스 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의 빈소를 찾아 조문하며 흐느끼고 있다.공동취재사진

변함없이 하루가 밝았다. 아무렇지도 않은 듯 멀쩡하게 떠오른 태양이 야속하다. 뜨거운 날에 차갑게 식어서 누워있는 그와 맞는 오늘 아침이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다. 계속 훌쩍이는 사람. 장례식장에서는 웃어야 한다면서 엉뚱한 얘기로 분위기를 독려하다가 제풀에 꺾이는 사람. 수십 년 만에 만나서 악수한 손을 쩔쩔 흔들다가 부둥켜안고 말을 잇지 못하는 사람. 음식그릇에 숟가락을 꽂은 채 멍하니 허공만 바라보는 사람. 어딘가 억지스럽게 떠드는 사람. 줄어들지 않는 조문객들의 비통.

마른하늘에 날벼락 같은 비보를 접하고서 생각은 갈피를 놓쳤고 가슴은 뻑뻑하니 숨이 막히는데 서울로 올라가는 고속버스가 제 시간에 출발하고 제 시간에 도착하는 게 갑자기 이상하게 여겨졌다. 횡단보도 빨간 신호등에서 사람들이 나란히 무표정하게 서 있는 모습도, 어디서나 스마트폰에만 열중하며 표정이 제 각각인 사람들도 모두 어색했다. 내겐 현실이 아니었다. 근원도 불확실한 둔탁한 통증이 전신을 휘감았고 그것만이 현실이었다.

 모든 기억과 순간들이 어떤 가정도 통하지 않는 과거가 되었고 회복할 수 없다는 것에 가슴 아프다.
모든 기억과 순간들이 어떤 가정도 통하지 않는 과거가 되었고 회복할 수 없다는 것에 가슴 아프다.전희식

노회찬.
한 번 가면 누구도 돌아올 수 없는 길을 그가 먼저 간 것이 슬프다. 이렇게 사람을 아프게 하고 떠날 인간인 줄 알았다면 그와 보낸 내 시간 일부를 회수했을 것이다. 안타깝다. 믿기지 않는다. 장례식장에서 이런 식으로 만나야 할 줄 알았다면 지난 달 있었던 인민노련동지회 정례 모임에 무리를 해서라도 갔었을 것이다. 전화라도 한 번 더 했을 것이다. 그의 아내 김지선과 통화만 할 게 아니라.

모든 기억과 순간들이 어떤 가정도 통하지 않는 과거가 되었고 회복할 수 없다는 것에 가슴 아프다. 2010년 어느 날이었다. 서울 시장에 출마한 그가 선거일을 앞두고 내가 살고 있는 두메산골 장계에 왔었다. 시골마을의 조촐한 내 출판기념회에 와서 "서울시장 떨어지면 전희식이 때문이다"고 했었다. 작년, 또 다른 나의 출판기념잔치에 온 그가 "전희식이가 왜 정치를 안 하는지 모르겠다"고 했고 나는 "노회찬이 왜 아직 정치를 하는지 모르겠다"고 주고받았다. 이런 그와 마주할 수 없고 유쾌한 그의 입담을 다시 들을 수 없다는 사실에 가슴이 메인다.

노회찬은 내가 몇 다리 건너고 건너서도 도무지 인연이 닿지 않을 사람들과 통했고 모두에게서 사랑받았다. 그의 부친상 때 장례식장에 티브이에서나 보던 연예인들이 와 있어 놀랐었다. 그가 서울 목동의 어느 아파트에 살 때 하룻밤 잔 적이 있는데 밤이 늦어도 꼬박꼬박 귀가했고 농부인 내가 일어나기도 전인 이른 새벽에 집을 나서는 걸 봤다. 용접공 때처럼 부지런했고 의지는 무쇠처럼 단단해 보였다. 누구에게나 공손했고 누구도 험하게 비난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렇다 정치인이기에 앞서 '참 좋은'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의 정치는 사람들에게 청량제가 될 수 있었을 것이다.

 24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의 빈소에 한 시민이 고인의 넋을 기리며 쓴 편지가 놓여 있다.
24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의 빈소에 한 시민이 고인의 넋을 기리며 쓴 편지가 놓여 있다.공동취재사진

2004년이던가. 민주노동당의 비례대표 8번으로 입후보하여 새벽 2시가 넘어 갈 때 3김 시대의 마지막 인물인 김종필을 밀어내고 국회의원이 될 때의 감동을 잊을 수 없다. 그가 도달할 정치 여정의 다음 선택이 늘 궁금했고 활약이 눈부셨으며 그를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그런 그가 죽음으로 전해야 할 말이 무엇이었단 말인가. 죽음으로 지켜야 할 것이 무엇이었단 말인가. 말과 행동, 일상과 과거, 모든 선택과 미래까지 그를 사랑하고 지지했던 월 1만원 후원인의 한 사람으로서 죽음이라는 그의 선택까지 받아들여야 하는 오늘이 너무 슬프다. 아파트 난간에 올라서서 그가 느껴야 했던 절벽과 깜깜함에 가슴 저민다.


귀한 집 자식으로 태어나서 작업복 기름밥도 두려워하지 않았고 감옥살이도 기꺼이 감내하던 그가. 그가 지닌 양심으로는 도저히 지킬 수 없는 정치자금법과 공직선거법의 올가미에 걸려서 몸을 던져야 했던 고뇌의 무게를 감히 가늠할 수 없다. 검찰과 언론의 밥이 되어서 당할 모욕은 견딜 수 있겠으나 스스로를 변명하며 자신의 말을 뒤집어야 하는 자기를 견딜 수 없었을까. 남는 이들에 대한 그의 사랑은 죽음뿐이었는가.

노회찬. 그렇게 가는가. 황망하게 가는 걸음 잠시 멈추고 벗들이 따르는 술 한 잔 받으시길. 사랑합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경남도민일보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노회찬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농(農)을 중심으로 연결과 회복의 삶을 꾸립니다. 생태영성의 길로 나아갑니다. '마음치유농장'을 일굽니다.

행복의 무지개가 가득한 세상을 그립니다. 오마이뉴스 박혜경입니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징역1년·집유2년' 이재명 "이것도 현대사의 한 장면 될 것" '징역1년·집유2년' 이재명 "이것도 현대사의 한 장면 될 것"
  2. 2 수능 도시락으로 미역국 싸 준 엄마입니다 수능 도시락으로 미역국 싸 준 엄마입니다
  3. 3 "나는 폐허 속을 부끄럽게 살고 있다" 경희대 시국선언문 화제 "나는 폐허 속을 부끄럽게 살고 있다" 경희대 시국선언문 화제
  4. 4 미국에 투자한 한국기업들 큰일 났다... 윤 정부, 또 망칠 건가 미국에 투자한 한국기업들 큰일 났다... 윤 정부, 또 망칠 건가
  5. 5 "10만4천원 결제 충분히 인식"... 김혜경 1심 '유죄' 벌금 150만원 "10만4천원 결제 충분히 인식"... 김혜경 1심 '유죄' 벌금 150만원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