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통위가 불법 음란물 유통 등을 막겠다며 일부 해외 인터넷 사이트를 차단한 방식을 두고 '인터넷 검열' 논란이 일고 있다. (자료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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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수정: 14일 오전 11시]
정부가 도박 및 불법 음란물 유통 등을 막겠다며 해외 인터넷 사이트 차단 방식을 한층 강화하고 나서자 누리꾼들이 '인터넷 검열'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방송통신위원회(아래 방통위)는 지난 11일부터 보안 접속(https)과 우회 접속 방식을 이용하는 불법 도박·음란물 유통 해외 사이트 접속을 막으려고 'SNI(Server Name Indication; 서버 이름 특정) 필드 차단'이라는 새로운 기술을 적용했다.
지금까지는 'URL(인터넷 주소) 차단' 기술을 이용해 이용자가 미리 등록된 불법정보 사이트에 접속하면 자동으로 '불법·유해정보 차단 안내(warning.or.kr)' 페이지로 이동시켰지만, 암호화 방식 보안 프로토콜(https)을 이용해 이를 우회하는 불법정보 사이트가 늘고 있다는 이유다.
하지만 진보네트워크, 오픈넷 등 정보인권 시민단체들과 누리꾼들은 이번 정책이 불법 사이트 차단에 그치지 않고 자칫 패킷 감청처럼 정치사회적 표현의 자유를 가로막는 '인터넷 검열' 빌미가 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아울러 새 방식도 우회하는 방법이 있어 실효성 논란까지 빚어졌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서 진행 중인
'https 차단 정책에 대한 반대 의견'에는 13일 오후 8시 현재 14만 명이 넘는 누리꾼들이 동참했다.
이에 방통위가 12일 오후 "SNI 차단 방식은 암호화되지 않는 영역인 SNI 필드에서 차단 대상 서버를 확인하여 차단하는 방식으로, 통신감청 및 데이터 패킷 감청과는 무관하다"고 밝혔지만 논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다.
SNI 차단 기술이란?
인터넷 웹브라우저 주소입력창에 'www.ohmynews.com'과 같은 호스팅 주소(URL)를 입력하면 'http://www.ohmynews.com'으로 바뀌는데, 여기서 'http(Hypertext Transfer Protocol)'는 웹브라우저와 서버 간에 정보를 주고받을 때 쓰는 규약(프로토콜)을 말한다. 그런데 'http'는 URL 주소와 데이터가 암호화되지 않고 전송되기 때문에, KT, LG유플러스 같은 인터넷서비스제공업체(ISP업체)에서 URL 주소만 알아도 쉽게 사이트 접속을 차단할 수 있다.
하지만 '보안 접속 프로토콜'(https)을 사용하는 인터넷 사이트는 URL 주소와 데이터를 암호화해서 주고 받기 때문에 이 방법을 사용할 수 없었다. 다만 https 보안 접속시에도 'SNI(서버 이름 특정) 필드'에 담긴 '서버 이름(Server Name)'은 암호화되지 않고 전송되는데, 이는 일종의 '보안 허점'이다. 이 허점을 이용해 해당 사이트 접속을 막는 방식이 바로 'SNI 필드 차단' 기술이다.
하지만 누리꾼들의 반감을 사고 있는 부분이 바로 이 보안 허점을 정부가 이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무리 도박 및 음란물 유통을 막기 위해서라고 하더라도, 개인의 프라이버시 보호 역시 지켜져야할 중요한 가치인데, 암호화 방식 프로토콜의 허점을 이용하는 것은 정부가 이를 무시를 넘어 훼손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방통위 "불법정보 사이트 차단에만 활용, 패킷 감청과 무관"
정부에서 새로운 차단 방식 도입을 논의하기 시작한 건 지난 2018년 5월이다. 당시 문화체육관광부와 방통위,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 등은 "접속차단 우회기술을 통한 불법사이트 접속 차단 범위를 확대하겠다"면서 'SNI 필드 차단' 방식 개발에 나섰다. 문체부는 당시 한국저작권보호원에서 관리하는 주요 저작권 침해 사이트 20개 가운데 85%인 17개가 https 방식을 이용해 접속 차단을 우회하고 있다고 밝혔다.
당시에도 누리꾼들이 똑같은 문제를 제기했지만 문체부는 "새로운 접속차단 방식 역시 기존 방식과 마찬가지로 인터넷 주소창의 도메인이나 서비스명 등을 활용해 차단하는 방식으로 통신비밀보호법을 준수하고 있으며, 개인정보 수집도 없다"라고 해명했다. 새로운 방식의 차단 효과 논란에 대해서도 "다른 회피 기술을 사용하는 접속을 100% 차단할 수는 없으나 접속에 불편을 초래하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효과가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권만섭 방통위 이용자정책국 인터넷윤리팀 사무관은 13일 <오마이뉴스>와 통화에서 "민간 독립기구인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서 불법정보 사이트 명단을 제출하면 통신사업자(ISP)가 접속을 차단하기 때문에 정부에서는 이용자 접속 기록도 알 수 없다"면서 "아동 포르노물, 불법촬영물, 불법 도박 등 불법 정보 사이트 접속 차단 목적에만 활용하기 때문에, 수사기관에서 수사 목적으로 진행하는 '데이터 패킷 감청'이나 '인터넷 검열'과는 다르다"라고 선을 그었다.
방통위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서 11일부터 차단한 불법정보 사이트 895건 가운데 776건은 불법 도박, 96건은 불법 음란물 사이트라고 밝혔다.
다만 보안 기술이 강화되면 새로운 차단 방식도 무력화될 수 있다는 지적에 권 사무관은 "새 방식도 기술적 한계는 있지만 보안 접속으로 우회하는 불법 정보 사이트가 늘어나고 있어 계속 방치할 수 없었다"면서 "앞으로 감청 논란이 없는 다른 방식을 연구하고 물리적으로 안되면 사회적 협의를 통해 제도적인 보완 방법도 찾아 보겠다"고 말했다.
전문가들 "패킷 감청은 아니지만 접속 차단 행위 자체가 인터넷 검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