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 근교 곳곳에 야자수 농장이 조성돼 있다.
우세린
이곳 임페리얼 카운티는 인구 18만이 채 안 되고 농업이 주 산업이다. 주민 넷 중 하나가 농부다. 1월 한겨울에도 기온이 영상 4~21도로 따뜻해 이모작이 가능하다. 당근과 새싹 채소 알팔파(alfalfa), 트럼프 대통령이 좋아한다는 미국 상추(Lettuce) 등이 재배된다. 1년 농업 생산량이 10억 달러가 넘는데 미 전역에서 소비하는 겨울 채소 대부분이 이곳에서 생산된다.
지하로는 마약, 지상으로는 인신매매
"창 내려 보세요! 당신, 미국 시민권자예요? 어디로 가는 거예요?"
목적지 30km를 남겨 두고 소도시 웨스트몰랜드(Westmorland)에 진입했다. 왕복 2차선 좁은 도로에 미국 국경수비대 검문소가 있어 차를 세웠다. 짙은 녹색 유니폼을 입고 소총을 둘러맨 수비대원이 허리를 숙여 차량 안을 노려봤다. 어디로 가느냐, 미국 시민이냐, 툭 내뱉듯 물었다. 또 다른 수비대원은 잘 빠진 검은색 마약 탐지견을 앞세워 트렁크를 검색했다.
아차! 그때서야 생각났다. 얼마 전 주유소에서 흑인이 몰던 스포츠카가 내 차를 들이받아 차량 번호판이 떨어져 나갔는데 그걸 다시 단다는 걸 깜박했다. 순간 등에 식은 땀이 났다. 미국 합법 체류자지만 겁이 났다.
이민법 세부 사항이 복잡해 가령 심기 안 좋은 국경수비대원이 차량 선팅을 핑계로 붙잡아둔 뒤 먼지털이식으로 조사해 뭐든 트집을 잡아 추방해도 그만이다. 또는 단속됐다는 기록이 남아 미국 체류에 두고두고 문제가 될 수 있다. 이 사람에게 300km 넘게 달려 온천을 간다고 하면 믿기나 할까?
"나는 시민권자는 아니다. 나는 LA에서..."
"그래. 알았어. 그냥 가."
상황을 설명하려는데 말을 툭 자르고 그냥 가란다. 마약 수색견에게 발각된 금지물품도 없고 아시안 부부라서 자세히 추궁하지 않은 듯했다. 히스패닉이나 흑인에게 불심검문은 더 엄격하다.
그 때문에 늘 인종차별 문제로 지적되곤 한다. 그 대신 남쪽에서 북쪽으로 되돌아 올 때는 더 자세히 캐물었다. 어디를 갔냐, 무엇을 했냐, 직업은 무엇이냐 등등. 미국 체류 신분에 작은 문제라도 있으면 굳이 오지 말 것을 추천한다.
국경지대에서는 강력 범죄가 자주 일어난다. 마약 거래를 다룬 범죄 영화 <시카리오>처럼 멕시코 주택 지하 땅굴이나 수로를 통해 미국으로 마약을 들여오다 검거되는 사건이 발생하고 있다. 대형 트럭 화물칸에 이민자를 가득 싣고 국경을 넘다 폭염에 이민자들이 사망하는 일까지, 뜨악할 만한 사건이 잇따라 터지는 지역이다.
갈취한 원주민 땅에 욕심이 범람하다
이곳은 연평균 강우량이 76㎜ 밖에 안 되는 황량한 사막이었다. 그러다 서부개척자들이 들어오면서 운명이 바뀐다. 1849년 금광 개발업자이자 의사인 올리버 워젠크래프트(Oliver M. Wozencraft)가 이주해 온다.
금광 개발에 실패한 그는 이곳에서 미 행정부를 대신해 아메리카 원주민과의 민원을 해결해 주는 무보수 '인디언 에이전트'가 된다. 그 뒤 관련 업무 위원 등으로 임명되는데 하는 일은 원주민 부족과 다양한 계약을 체결해 그들의 땅을 강탈하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