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레빗 홀>을 며칠 전 봤다. 애도에 관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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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레빗 홀>을 며칠 전 봤다. 애도에 관한 이야기다. 베카(니콜 키드만)와 하위(아론 에크하트)는 8개월 전 교통사고로 아들을 잃었다. 그날 이후 베카는 주변의 모든 사람들과 벽을 쌓고 살고 있다. 아무렇지 않게 자신을 초대하는 이웃도 부담스럽고, 같은 상처를 가진 부모들의 모임에 나가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위로가 되지 않는다. 내면의 소리는 외면한 채 천국을 운운 하는 사람들이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하위도 이 슬픔을 극복해보려 갖은 노력을 하지만 번번이 베카와 어긋난다. 서로 조심하느라, 더 상처가 날까봐 정작 아들을 잃은 슬픔과 그리움을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한다. 하지만 덮을 수 있는 상처가 아니다. 통과해야 하는 상처다.
베카의 엄마인 냇(다이앤 위스트) 역시 11년 전, 30살의 아들을 잃었다. 엄마와 딸이 모두 아들을 잃은 것이다. 냇은 베카의 슬픔을 누구보다도 잘 알기에 격하게 출렁이는 베카의 감정을 담담히 받아낸다. 아들의 유품을 정리하던 베카는 그 꾸러미들을 바라보며 냇에게 묻는다.
"이 감정이 사라지긴 하나요?"
"아니, 사라지지 않아. 적어도 난 11년 동안 그랬어. 그래도 변해. 슬픔의 무게가 변하는지도 모르지. 어느 순간, 견딜 만해져. 이제 슬픔에서 기어나올 수 있는 거지. 그리고 슬픔의 벽돌을 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거야. 게다가 가끔 잊기도 하고, 어쩌다가 그 슬픔을 찾으면 그 자리에 그대로 있어. 뭐랄까... 마음에 들지 않지만 아들 대신에 존재하는 거야. 그래서 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거지. 이 마음은 절대 사라지지 않아."
슬픔을 마음껏 드러내어 함께 나누고 어루만지고 보살피는 애도의 과정을 묻어두기만 한다면, 마음은 병이 들고 결국 주변과의 관계마저 무너져 버린다. 친구는 물론 가족까지도. 설상가상, 이는 또 다른 비극을 몰고 오기도 한다.
다시 세상 속으로 손을 뻗어보기로 마음 먹은 부부는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한다. 초대에 앞서 어떻게 손님을 맞을 것인지 대화하는 부부는 친구들에게 선물을 준비하고, 요리도 하고, 친구 아이들의 안부도 물어보고, '누구도 불편하지 않게 아무렇지 않은 척 연기하기'로 한다. 그리고 죽은 아들에 대해 물어볼 때까지 기다리자고. 그렇게 하루하루 살아내기.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추억을 가지고 있으며 어떤 사람이었는지 얘기할 수 있도록 고인의 존재에 대해 물어봐주는 것. 상처를 양지바른 곳에 계속 꺼내게 하는 일. 손 잡아주고 물어봐주고 같이 울어주기. 가까운 사람을 잃은 이들에게 우리들이 해야 하는 일이다. 이런 일은 내게도 일어나는 일이니까, 내게도 그들의 품어줌이 필요하니까.
20살이 되었을 아이에게 해주고 싶은 말
맨발의 무용수 이사도라 덩컨은 불의의 사고로 아이 둘을 한꺼번에 잃었다. 아이들이 타고 있던 자동차가 폭우 속에 센 강으로 빠졌기 때문이다. 이 소식을 들은 이사도라는 충격에 눈물조차 흘리지 못했다. 이 사건이 있은 후, 파리 사람들은 아이들의 이름을 부르며 미친 듯이 뛰어다니는 이사도라를 수도 없이 목격했다.
훗날 그는 이때를 회상하며 고통 속에 있는 사람에게 '힘 내'라고 말하는 사람이 가장 싫었다고 했다. 대신 소리 지르고 울라고 말해주는 사람, '아이들에 대해 묻고 함께 울어주는 사람들' 때문에 다시 일어 설 힘을 얻었다고.
아들과 저녁을 먹으며 영화에 관한 이야기, 애도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문득 5년 전, 그 아이가 생각이 났다. 아들도 그 아이 소식을 모른다고 했다. 미안했다. 그때는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던 내가, 이젠 20살이 되었을 아이에게, 아니 청년에게 이제라도 말을 건네고 싶다.
엄마는 어떤 사람이었는지, 엄마한테는 무슨 냄새가 났는지, 엄마가 해준 요리 중 가장 맛있는 건 무엇이었는지, 엄마랑 가장 행복했던 때는 언제였는지. 그리고 그려본다. 청년과 청년의 아버지가 나란히 앉아 슬픔을 감추지 않고 먼저 떠난 엄마에 대해 마음껏 말하는 모습을. 그러고 보니 오늘 날이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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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이런 제목 어때요?>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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