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없이 혼자서 집 밖을 나가본 경험이 많지 않을 때라 그저 혼자서 거리를 걷고 있는 것만으로도 금세 기분이 풀렸다. 신세계가 열리는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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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처음이고, 엄마가 처음인 우리는 그렇게 서툰 서로에게 어떤 남편, 어떤 아내가 되어야하는지 잘 알지 못했다. 싸움 한 번을 안 하며 천생연분이라 믿었던 우리는 육아라는 거대 관문을 통과하며 수없이 싸웠다.
수면 부족, 육체적 피로, 호르몬 변화, 정신적 압박감에 사소한 것도 더 크게 다가오던 때였으니 싸움 거리가 아닌 일도 싸움이 되곤 했다. 그 순간을 견디기 어려워한 남편은 싸움이 한참 진행 중인 시점에서 "그만하고 나중에 다시 이야기 하자"라며 옷을 챙겨 입기 일쑤였다.
어느 날, 나가려는 남편을 향해 외쳤다.
"나가지마! 들어와!"
남편은 황당한 표정으로 날 쳐다봤다. 같은 공간에서 얼굴을 보고 있으면 감정만 더 상하니까 좀 떨어져서 생각할 시간을 가져야 하지 않겠냐는 설명을 덧붙였다.
"그래! 계속 싸우기보다 떨어져 있는 거 좋은 방법인 것 같아. 그런데 왜 항상 당신이 나가? 내가 나갈 거야. 당신이 애랑 집에 있어!"
빛의 속도로 옷을 챙겨 입고 내가 먼저 집을 나갔다. 아이 없이 혼자서 집 밖을 나가본 경험이 많지 않을 때라 그저 혼자서 거리를 걷고 있는 것만으로도 금세 기분이 풀렸다. 신세계가 열리는 기분이었다.
'와. 이 해방감! 이거 완전 좋은데?'
그저 신선한 공기와 자유가 좋아서 싱글벙글 하고 다녔다. 그렇게 나는 가출의 즐거움을 만끽했다. 이후에도 부부싸움은 종종 나홀로 가출의 좋은 구실이 되었다. 집 근처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기도 하고, 도서관에서 좋아하는 책 한 권을 다 읽기도 했다. 어떤 날은 영화 한 편을 보기도 했다.
그렇게 혼자 자유롭게 바깥 공기를 마시고 나면 남편과 어떤 문제로 싸웠는지도 더 이상 생각나지 않았다. 남편이 혼자서 아이를 돌보고 있다는 사실이 통쾌하기도 했지만, 고마운 감정도 들었다.
그러면서 알았다. 내게 필요한 것은 다름 아닌, 집 밖에서 보내는 온전한 나만의 시간이라는 걸. 집안에서 하루 종일 아이와 종종거리며 사는 삶에 지쳤던 거다.
엄마가 되었다는 이유만으로, 아내가 되었다는 이유만으로 집안에서 해야 하는 역할이 넘치고, 그 기대치를 채워가느라 숨이 막혔다. 그런 상황에서 가출은 '나'를 만날 수 있는 가뭄의 단비였다.
가슴이 벅차고 설레는 가출
다가오는 주말에는 누군가의 아내, 엄마, 며느리, 딸이 아닌 '나'로 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결혼한 여성들과 함께 평창으로 1박2일 여행을 떠난다. 결혼 후 처음으로 가족 없이 나 홀로 떠나는 여행이다.
남편이 부부싸움 후 집을 나가던 장면은 큰 교훈을 남겼다. 가출의 유익함을 경험한 나는 계속 진화 중이다. 이 좋은 봄날, 나를 '역할'이 아닌 '존재'로 바라보는 사람들과 저 멀리 강원도로 가출이라니. 생각만으로 가슴이 벅차고 설렌다.
결혼 8년차가 되면서 우리 가족은 4인 가족이 되었고, 성별 역할 구분은 더욱 선명해졌다. 남편은 집 밖에서 일하는 시간이 많아서 집 안에서 쉬고 싶어 하지만, 나는 집 안에서 머무는 시간이 많으니 기회만 있으면 집 밖으로 나가고 싶다.
서로의 삶을 이해하고 상대방의 욕구를 채워주기 위해 노력하면서 부부싸움은 정체기지만, 나는 아마도 계속해서 가출 기회를 호시탐탐 노릴 것이다. 집안에서만, 가족으로만 채울 수 없는 '내 삶'을 놓치고 싶지 않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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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이런 제목 어때요?>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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