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숙 여사가 만난 '라테파파', 한국에서도 보고싶습니다

라테파파의 시대가 오길

등록 2019.06.17 11:32수정 2019.06.17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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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의 일입니다. 지갑이 비었던 저와 친구는 싸게 음식을 먹을 수 있는 노량진에서 만났습니다. 아주 더운 여름날 먼 길을 떠나서 친구와 저녁을 먹었더니 갈증이 심했습니다. 어쩔 수 없이 주변에 있는 패스트푸드 프랜차이즈에 들어가서 음료수를 마시면서 한담을 나누고 있었습니다. 이런저런 얘기도 하고 세상 돌아가는 얘기도 하다가 시간이 흘렀습니다. 사람이 많은 곳이라 저녁이 지난 후에도 가게 안에 사람이 있었습니다.

작은 여자 아이를 데리고 어떤 아이 엄마가 가게에 들어왔습니다. 아이 엄마는 아이를 의자에 앉히고 짐을 테이블 위에 두더니 주문을 하러 떠났습니다. 아이는 방글방글 웃으면서 앉아 있었습니다.

그러나 주문을 하는 사이, 아이가 갑자기 의자에서 일어나서 테이블 사이를 걷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찰나의 순간 바로 넘어지면서 바닥에 떨어졌습니다. 급박하게 일어난 일이었기에 아무도 주변에서 아이를 말리지 못했습니다.

다행히 아이는 다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떨어진 충격으로 크게 울기 시작했고, 울음소리가 커지자 주문을 하러 갔던 아이 엄마가 돌아와서 아이를 일으켜 세웠습니다. 그리고 아이에게 무슨 일이 있었냐고 저와 친구에게 물었습니다. 저희는 아이가 갑자기 뛰어다니다가 넘어졌다고 말했고, 아이 엄마의 얼굴은 일그러졌습니다.

아이 엄마는 아이에게 화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한 순간도 제대로 있지를 못한다며, 아이에게 화를 내는 모습을 보고 아이는 더 크게 울기 시작했습니다. 대화를 하기 힘들 정도로 고성과 울음소리가 커졌습니다. 아이 엄마는 완전히 탈진한 것으로 보였고 아이는 서럽게 울었습니다. 저와 친구는 씁쓸한 감정을 느끼면서 가게 바깥으로 나왔습니다. 그때는 그냥 막연하게 아이가 혼이 나니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남성은 육아휴직 쓰기도 힘든 사회

꽤 오래 전 일이고 지금은 넘어졌던 아이도 커서 초등학교에 들어갔을지 모르겠습니다. 오늘 패스트푸드 프랜차이즈에 들어갔다가 갑자기 이 일이 떠올랐고, 그리고 그때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점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때는 이미 저녁이 지난 시각이었습니다. 저녁을 먹지 못한 아이 엄마는 저녁을 먹기 위해 패스트푸드 프랜차이즈에 들어왔을 터입니다. 노량진 주변에 널린 것이 싸게 먹을 수 있는 음식점인데 굳이 패스트푸드 가게를 고른 것은 다른 음식을 먹을 시간도 없었기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아이를 데리고 들어가면 눈치가 보여서일 수도 있습니다. 더 근본적으로, 아이를 데리고 다녀야 하는 이유는 그 짧은 시간 동안 아이를 맡길 곳도 없고, 혼자 둘 수도 없었기 때문이었겠지요. 그러다 결국 아이에게 화를 내게 된 것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부인인 김정숙 여사는 어제 스웨덴의 스톡홀름에서 '라테파파'들을 만났다고 합니다. '라테파파'는 한 손에는 커피를 들고 한 손으로는 유모차를 끌면서 육아에 적극적인 아버지들을 말합니다. 김정숙 여사의 발언을 살펴보니, 스웨덴의 아버지들은 육아휴직 비율이 75%로, 육아의 공동 주연이며, 육아휴직기간 중 아버지에게 할당된 육아휴직일이 무려 90일이라고 합니다.
 
 문재인 대통령과 북유럽 순방 중인 김정숙 여사가 14일 오후(현지시간) 스웨덴 스톡홀름 훔레고든 공원에서 육아휴직 중인 스웨덴 남성들과 간담회 후 산책하고 있다. '라떼파파'는 남성 육아휴직이 일반적인 스웨덴에서 유모차를 밀면서 커피를 들고가는 아버지를 일컫는다.
문재인 대통령과 북유럽 순방 중인 김정숙 여사가 14일 오후(현지시간) 스웨덴 스톡홀름 훔레고든 공원에서 육아휴직 중인 스웨덴 남성들과 간담회 후 산책하고 있다. '라떼파파'는 남성 육아휴직이 일반적인 스웨덴에서 유모차를 밀면서 커피를 들고가는 아버지를 일컫는다. 연합뉴스
 
한국에도 라테파파가 있을 수 있을까요?


햄버거 주문할 시간도 없는 아이 엄마를 본지 몇 년이 지났지만, 아직 현실은 많이 개선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커피를 마시며 육아에 전념하는 아버지라고 하니 무슨 상상 속의 유니콘 같습니다. 한국의 전체 육아휴직자 중 남성은 10%가량이라고 하니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애당초 남성이 육아휴직을 하는 일도 어렵지만 그냥 성별이 누구든 간에 육아휴직을 하는 일이 어렵습니다.

원칙적으로 만8세, 아이가 초등학교 2학년 이하인 경우에 아빠와 엄마는 육아 휴직을 할 수 있습니다. 고용노동부의 일가정 양립 실태조사(2017)에 따르면, 육아휴직에 대해서는 57%가 알고 있지만, 겨우 3.9%가 육아휴직을 사용합니다. 국가인권위원회의 올해 조사에 따르면, 육아휴직을 사용한 800명 중 20%는 기존 부서에서 다른 부서로의 재배치를 겪었다, 19%는 인사나 승진에 있어 차별을 받았다고 답했다고 합니다. 육아휴직 제도가 도입된 지는 30년이 넘었습니다.

점점 고갈되는 국민연금을 납부할 사람, 일도 해서 경제도 성장시켜야 할 사람, 인프라도 유지해야 할 사람 등 필요한 사람이 많으니 당연히 나라에서는 출산율을 높이고 싶어할 것입니다. 그래도 출산율 걱정하는 뉴스가 수십 개씩 쏟아져도 출산율은 잘 오르지 않습니다.

아이 키우는 일은 과거에 유행한 다마고치(일본에서 개발된 소형 시뮬레이션 게임기) 키우는 일이 아닙니다. 밥만 먹인다고 자라지 않습니다. 누군가는 아이를 돌봐야 합니다. 당연히 부모의 시간과 정서가 소비됩니다. 그때는 잘 몰랐지만, 지금은 넘어진 아이의 엄마도 육아 스트레스가 극심했으니 사람들이 있는 장소에서 화를 냈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성별을 막론하고 부모라면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남성도 자신의 자녀와 친밀한 관계를 가질 시간을 가지는 편이 가족과 안정적인 관계를 형성하는데 중요할 것입니다. 언젠가는 라테파파의 시대가 다가오길 바랍니다.
 
 SBS <아빠의 전쟁>에서 소개된 라테파파
SBS <아빠의 전쟁>에서 소개된 라테파파SBS 영상 캡처
 
#라테파파 #육아 #아이 #양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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