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날 총파업 대회에 참가한 인원이 너무 많아서 핸드폰 카메라로는 다 담을 수도 없었어.
최은경
아, 이 무심함이란. 어제 너에게 그렇게 말해놓고 까맣게 잊었지 뭐야. 갑자기 미안한 마음이 들었어. 좀 더 가까이에서 그분들의 목소리를 듣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 다른 사람도 아니고, 엄마를 대신해 너희들 점심을 책임져 주시는 분들이잖아. 산책을 핑계로 서둘러 광장으로 나갔어. 생각보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나와 있더구나. 오래 있지는 못했지만 기사에서 읽은 그분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어.
- 총파업을 하게 된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인가.
"결국은 차별이다. 임금도, 처우도, 모든 게 차별에 맞물려 있다. 그래서 우리는 임금을 걸고, 아이들에 대한 미안함을 안고 거리로 나왔다. 파업 기간의 임금은 비정규직들에게 있어선 큰 금액이다. 심지어 7월 20일이면 대부분의 학교가 방학을 한다. 우리는 방학에 어떤 임금도 받지 못한다. 방학에, 파업까지 더하면 생활고 또한 심해질 수 있다.
하지만 정말, 하지 않을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학교 안에서, 아이들이 보는 곳에서 우리들을 향한 차별이 만연하다. 처우, 안전, 임금, 모든 곳에서 그렇다. 학교는 '비정규직 종합백화점'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계약직들이 많다.
(중략) 나는 급식실에서 25년을 일했다. 95년도에 입사했는데, 그때 나를 '일용 잡급'이라고 불렸다. 시간이 흘러도 호칭은 여전하다. 아직도 우리에겐 이름이 없다. 이모님, 여사님, 아줌마... 아이들은 이렇게 차등 대우를 받는 우리들을 본다. 평등 사회에 대한 교육을 받는 아이들이 학교 안에서 차별받는 모습을 보는 거다." - 박금자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위원장 스팟 인터뷰 중(http://omn.kr/1jxcd)
너에게 이분들에 대한 이야기를 해줘야겠다고 생각했어. '학교에서 일하는 전체 노동자 중 41%가 비정규직이고 이들은 지난해 정규직 임금의 약 64% 정도를 받았다'는 걸 알고 있었니? 엄마도 미처 몰랐어. 이분들이 일상적인 차별로 고통 받으면서 매일 너희들을 위한 밥을 하고 있다는 걸 말야.
언젠가 어린이집 원장 선생님에게 들은 말이 생각나. '교사의 질이 보육의 질을 높인다'라는. 밥이라고 다를까. 엄마도 유독 피곤한 날은 밥 할 기운도 없어서 차라리 그냥 굶기도 해. 아니면 간편하게 라면으로 때우든가. 그런데 급식노동자들은 그럴 수가 없어.
우선 아파도 대신 근무해줄 사람이 없고, 일하다 다쳐도 제때 치료에 도움을 받기도 어렵다고 해. 또 방학에는 학생들이 나오지 않아 일하지 않으니 월급도 주지 않는다는구나. 생각해봐. 그림책 <엄마의 의자>에 나오는 엄마처럼 가족의 생계를 혼자 책임져야 하는 상황이라면 어떨지 말야.
딸아, 그건 나쁜 게 아니란다
말 나온 김에 이 그림책에 나오는 엄마 이야기를 좀 더 해볼까? 엄마는 하루 종일 식당에서 일을 해. 식당에서 팁을 많이 받은 날은 기분이 좋아서 들어오고, 어떤 때는 너무 지쳐 집에 오자마자 금세 잠이 들기도 하지. 엄마는 늘 발이 아프지만 집에는 '어디 무거운 발을 올려 놓을 데'도 없어서 딱딱한 부엌 의자에 앉아 휴식을 취하곤 했어.
주인공 아이가 투명 유리병에 잔돈을 모으는 건 그 때문이야. '멋있고 아름답고 푹신하고 아늑한 안락의자'를 사기 위해서. 온 가족이 앉아서 쉴 수 있는.
이게 다 1년 전 있었던 화재 때문이잖아. 모든 것이 다 사라졌지. 불과 함께. 하지만 할머니와 엄마 그리고 아이는 이웃의 도움으로 다시 시작할 수 있었어. 엄마가 열심히 일한 덕분에 큰 유리병도 잔돈으로 가득 찼지. 의자를 사러 가는 가족들의 표정이 너무나 행복해 보였어. 마지막 페이지, 푹신한 의자에서 찍은 가족사진을 보고 눈물도 조금 났지.